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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pr 23. 2021

30년 맛집, 28탄-촌티작렬 안성고삼묵밥

안성 국도를 지나갈 땐 무조건 들러 갈 수밖에 없는 곳

안성고삼묵밥 이 식당은 무려 이 년 전 용인 출장길에 들렀던 곳이다. 세월에 눌린 스마트폰 속 수많은 사진들 구석에 있던 이 사진들을 찾아낸 건 며칠 전 안성의 안일옥 방문기를 쓰다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사진을 어렵게 찾아내고 보니 그 어느 곳보다 시골스러운 정취를 새삼 느끼는 중이다. <국밥>이라고 쓰인 간판은 하얗게 바래 버렸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서 무디게도 버텨냈을지 가히 짐작해 볼만도 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장작으로 담을 세운 것도 정겹지만 황토 아궁이에 가마솥을 올린 것도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요즘 도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장독대들을 보노라니 어린 시절 시골집에 가면 볼 수 있었던 기억도 났다. 귀찮게 하는 나를 피해 지붕 위로 도망간 아기 고양이를 잡겠다며 장독 위에 올라갔다가 와장창 깨 먹고 어쩔 줄 몰라하던 기억도 났다. 그땐 정말 외할머니에게 엄청 꾸중을 들을 줄 알았는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시던 외할머니의 표정이 생생하다.



무쇠 가마솥이었다면 좀 더 좋았으련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다. 아궁이에 나무를 때 도토리묵을 쑤는 장소인 거다. 식당 입구에 이게 펼쳐져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안성고삼묵밥의 도토리묵의 진정성과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삼묵밥 식당 옆엔 이렇게 마을장터도 있고 한옥을 그대로 살린 예쁜 카페도 있다. 까다로운 척하는 편도 아닌데 어지간히 제대로 하는 곳이 아니면 커피를 사서 마시지 않는 내겐 카페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정도로 끝나 버렸지만 식사 후 커피 한잔 즐기는 여유를 가져보면 좋겠다.



시래기를 삶는 모습도 보였다. 건강에 좋지 않은 플라스틱 고무대야를 쓰는 건 보기에 좋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아직도 사람들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해물질의 심각성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을.



휴무가 없다는 안내판이 있었는데 테두리를 도토리로 장식한 게 매우 독특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 구석구석 도토리 아닌 것이 없어 보였다. 대부분 주변 환경에서 가져온 나무 조각 등으로 꾸며진 인테리어가 제멋대로인 듯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게 그냥 시골 풍취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오랜 고택을 그저 자유분방한 콘셉트로 꾸며진 공간들 자체가 슬쩍슬쩍 흘겨 볼만한 것들이다.



나는 가끔 절주 혹은 단주도 해봤는데 애주가인 나는 결국 술을 멀리 하지 못했다. 출장길만 아니라면 작정을 하고 막걸리를 주문했을 것 같았다. 하긴, 선배님에게 핸들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절대 그럴 수도 없었겠지만......



아무튼 여기저기 도토리다. 막걸리를 부르는 양은 주전자가 끊임없이 나를 꼬드기고 있었다. 막걸리 한잔~



묵밥집에서 묵밥만 먹고 갈 순 없는 노릇이지. 도토리 빈대떡은 도토리가 가진 최고의 고소함을 그대로 담아냈다. 고삼묵밥은 말 그대로 시골맛이다. 옛맛 그대로라고 하기엔 내 나이가 그렇게까지 많은 편은 아니니 과한 표현인 것 같지만 어쨌거나 막걸리를 거르고 가기엔 유혹이 강하다.




카메라 렌즈에 뭐가 끼었는지 사진이 흐려 아쉽지만 맛은 제대로 전해진 것 같다. 묵밥은 말 그대로 도토리묵에 밥을 말아먹는 거다. 시큼한 시골 김치 국물에 시골 참기름이 둥둥 뜬 고삼묵밥 한 그릇은 거대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도토리묵이 가진 진정한 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흔히 맛볼 수 없는 고소함을 느낄 거라고 장담한다.



찬은 뭐, 별 거 없지만 그냥 시골스러운 김치가 이 집의 매력인 것 같다.



벽면에 가족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모르긴 해도 이 집에서 몇 대가 나고 자랐을 것 같다. 이런 시골집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중이라는 걸 생각하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후 시골의 풍경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식당 밖으로 나오는 길, 나뭇가지로 얽힌 담이 매력적이어서 사진을 한 장 더 남겨 보았다. 근처 지날 일 있으면 또 방문하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도통 이 근처를 지날 일이 다시 안 생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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