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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pr 22. 2021

30년 맛집, 27탄-100년을 훌쩍 넘긴 안일옥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안성의 안일옥을 다녀오다

부산에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침 주말이라 길도 막히는 상황이었는데 선배님은 안성으로 차를 돌리자고 했다. 난 벌써 눈치를 챈 상황이었다. 분명히 생각지도 못한 식당으로 나를 끌고 갈 것이란 것을 말이다. 그런데, 아 그런데 말이다. 진정 언젠가 어떤 매체를 통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곳, 안일옥을 찾아간 것이다.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드디어 오게 된 걸 실감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안성과는 연이 잘 닿지 않아 안성 인근의 맛집들은 잘 모르는 내게 안일옥은 자그만 선물과도 같았다.

6.25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부산 지역을 제외하면 100년 넘은 식당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 안성 이 곳엔 무려 100년을 훌쩍 넘겨 버린 안일옥이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던지......

입구부터 느껴지는 오래된 한옥의 모습. '안성' 하면 '안성맞춤' 혹은 '안성탕면' 정도가 연상되는데 그날 이후 내겐 '안일옥'이 하나 더 추가됐다.



식당 문을 여고 들어서면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들이 눈길을 끈다. 백 년이라는 세월이 구석구석 안 묻어 있는 곳이 없으리라.

강남에 '백 년 갈 식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하는 식당을 본 적이 있는데 실제 이렇게 백 년이 넘은 식당과는 뭐가 달라도 충분히 다를 거란 생각을 하게 됐다.



안일옥 식당 구조가 매우 독특하다. 식당 입구는 아마도 대문이었을 것 같고, 현재 홀로 운영되는 공간은 마당이었을 것이다. 안채가 식당 룸으로 운영되는 것일 테고, 사랑채 정도가 주방으로 쓰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와 본채 위로는 지붕을 씌워 한 채의 집처럼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흔히 볼 수 없는 묘한 구조인 건 사실이다.



주문을 하며 메뉴판을 살펴봤는데 가격대가 착한 편이다. 너무 강남 물가에 적응되어 그런 걸까?



기본 찬은 이 정도이다. 역시 식당의 맛은 김치에서 판가름 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데, 방금 무친 것 같은 겉절이와 깍두기 김치가 맛깔스럽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겨 버렸지만 고추장도 직접 만드는 곳이겠지 싶다. 설마 백 년 넘은 식당이 저런 기초적인 장을 사다 쓸 것 같진 않았으니까.



오래된 사진들이 담긴 액자 하나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백 년의 역사를 수십 장의 사진 속에 오롯이 담아낸 걸 알 수 있었다.



우린 홀에서 식사를 했기 때문에 안채 안에 마련된 좌식 테이블이 궁금해 슬쩍 들여다봤다. 진품 가품을 떠나 다양한 도자기들이 대수롭지 않게 전시되어 있는데 적어도 백 년은 넘긴 녀석들도 있을 것이다. 서까래 사이로 회칠이 됐을 황토일 것으로 예상되는 지붕이 꽤 지나가버린 추억을 소환하고 있었는데 천정형 선풍기는 엉뚱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안일옥의 (특)설렁탕이 나왔다. 양지살이 수북이 쌓인 안일옥의 설렁탕엔 볶은 죽염으로 간을 본다. 기름기 하나 없는 맑은 설렁탕은 그야말로 백 년의 내공이 담긴 심오함이 돋보였다. 퍽퍽하지 않고 쫄깃하며 양지와 소머리의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설렁탕 속 수육은 이틀 내내 운전하며 다녔던 나의 심신을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집 근처였다면 소주 한 잔 곁들였을 게 분명했다. 아쉽고도 아쉬웠다. 다음엔 안성에 숙소를 잡아 두고 다른 메뉴들을 섭렵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을 정도니까. 볶은 죽염은 좀 퍼 오고 싶었다.



난 TV를 거의 안 보기 때문에 '3대 천왕'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전에 어떤 방송에서도 안일옥을 본 적이 없다. 기억을 더듬더듬 더듬어 보았지만 대체 어디서 주워듣고 안일옥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튼 기억 구석에 박혀 있었던 안일옥의 설렁탕을 드디어 경험하게 됐으니 만족감은 이미 극대화되어 있었다.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다시 찾아올 그 날을 위해 바이바이 포토 한 장을 남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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