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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pr 27. 2021

30년 맛집, 29탄-남산돈까스101번지

돈가스의 비주얼이 맞는 걸까 싶지만

세대 차이겠지만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일명 경양식집이라는 곳엘 다녔던 기억이 있다. 서민의 시각에서 보였던 부잣집의 일명 칼질 문화가 어떻게 그려졌을지는 상상에 맡길 일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난 가사 하나 없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약간은 어둡게 느껴지는 조명이 자아낸 고급스러운 분위기 그럴싸한 곳에서 엉성하게 칼질을 했다. 그땐 정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아들이 자그만 손으로 포크와 칼을 쥐고 힘겹게 자르는 행위를 하는 걸 엄마는 흐뭇하고 재밌게 쳐다보았을 것 같다. 왠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을 것 같은 표정일까? 일상에서 흔히 먹을 수 없는 비싼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를 사주기 위해 어렵게 지갑을 열었을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제는 세상이 너무 좋아져 먹고 싶은 건 얼마든지 쉽게 맛볼 수 있고 양보단 질이 우선시되었지만 불과 이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요즘처럼 헤프게 지갑에 손을 대진 못했다. 서민의 부잣집 코스프레 같은 오래 전의 돈가스는 이제 반찬이나 간단한 술안주로도 올라오는 아주 흔한 일상 속 음식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남산 케이블카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데이트 명소였다. 산쟁이였던 난 아직까지 남산 케이블카를 타본 적이 없다. 왠지 산에 올라가는 행위에 케이블카는 반역 같은 묘한 이질감 같은 게 뚝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집처럼 드나들던 설악산의 케이블카도 선후배들과 등산 목적이 아닌 단풍놀이로 방문했을 때 호기심 때문에 한 번 타본 게 전부였던 걸 보면 케이블카는 나와 연이 잘 닿지 않았던 거다. 그러하니 남산 케이블카에 관심이 없던 내게 남산돈가스의 존재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이번에도 역시 선배님과의 동행으로 이곳 남산돈가스101번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중국대사관 뒤편에 있는 이 길을 몇 번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골목길 같은 느낌을 받고 말았다.

자덕인 내게도 남산은 나름의 이슈가 있는 곳인데......



TV를 안 보는 내게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에 노출되었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출연진조차 모르고 어떤 성격의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언제부터 TV를 안 보게 되었을까? 언젠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을 때울 목적으로 TV를 켜는 일 따윈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없었으니 남산돈까스101번지 같은 식당이 이제야 내게 나타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수 있다.



인테리어를 보니 어지간히 오래된 식당이 아니란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선배님의 맛집은 정말 빗맞아도 30년 이상은 된 곳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사진을 촬영하지 않아 안타까움이 있지만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촬영한 돈가스 사진 한 장이 이 맛의 모든 걸 전달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서울의 돈가스 맛집이라 하면 동네마다 한두 군데씩은 다 있지만 콘푸레이크를 토핑 한 건 여기가 처음이었다. 대개 왕돈가스 등 양으로 승부를 걸거나 하는데 여긴 이게 독특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돈가스만이 가진 별미를 가장 돈가스스럽게 튀겨낸 이 곳이 오랜 맛집으로 손꼽히는 이유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니 주변에 돈가스 전문점이 즐비했다. 다음에 또 이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다른 식당에도 들러 보리라 생각했다. 서울만이 아닌 전국구 30년 이상 된 맛집을 찾아다니는 요즘, 그 많고 많은 식당들은 언제 다 찾아가 보나 싶다. 세월은 흐르고 나이는 먹고 식당 연차도 30년이란 기점에 차오르고 있는 식당들 역시 내 리스트 안에 있으니 말이다.



바로 옆에 중국대사관이 있는데 사드 이후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없었다. 언젠가 다시 또 북적이는 날이 오긴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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