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다
무계획이 계획이었던 나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우연히 알게 된 말라카 리버(말라카 강)를 따라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갑자기 계획한 것 치고는 꽤 만족스러운 목표였다.
구글 지도를 열어 강이 어디까지 연결되었는지 확인했다.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상류로 되짚어 가는데 터미널에서 호텔까지 걸어서 오던 길에 만났던 물길이 생각났다.
바로 그 물길이 말라카 리버였다는 것을 왜 인지하지 못했던 걸까?
그렇다면 그 위치까지는 강을 따라 걸어가면 되겠다.
강은 정말 구불구불했다.
어쩌자고 그렇게 생겼을까 싶을 정도였다.
강을 따라 올라가면 어떤 풍경이 이어질까?
강변은 관광중심지처럼 제대로 정비되어 있을까?
가다가 강도를 만나는 건 아니겠지?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일단 행동으로 옮겨야 모든 상상은 현실이 된다.
나는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았다.
강변 왼쪽 길 위에도 오른쪽 길 위에도 햇볕이 작렬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서울에서 짐을 꾸리며 챙겨 갈까 말까 고민했던 사파리 모자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잘 쓰지도 않는 선글라스도 꺼내 쓰고 도보여행 준비를 마쳤다.
배낭이 무겁긴 하지만 그 정도는 내 팔자엔 아무것도 아니다.
오전에 지나쳤을 땐 만나지 못했던 버스킹.
그새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곡 듣고 가려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그와 미소만 나누고 발길을 재촉했다.
강변길로 접어들자마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맹그로브 나무로 만든 재밌는 화분을 발견했다.
어지간한 예술작품보다 훨씬 감각적이었다.
가능하다면 가져가고 싶었다.
강 상류로 갈수록 번잡함이 줄어들었다.
당연히 관광객도 줄어들었다.
걷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강변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유네스코 지정 도시니 이 정도는 기본이겠지.
강변 옆으로 게스트하우스도 종종 보였는데 카페나 식당은 현저하게 줄었다.
중간중간 인도교가 있어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여러 번 횡단하며 걸었다.
강물은 탁하지만 그와 어울려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민가도 보였다.
사진을 촬영하지 않은 게 아쉽지만 웨딩사진을 찍는 예비부부도 보였다.
벤치 위에는 도마뱀 한 마리가 나를 경계한 듯 꼼짝도 않고 앉아 있더니 사진 몇 컷 촬영하자 도망치고 말았다.
어느 호텔 앞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리본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었다.
강변에는 맹그로브 나무뿌리가 수면을 뚫고 올라와 하늘로 향하고 있다.
대개 알록달록한 채색을 잘하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말레이시아에는 다채색의 건물을 자주 볼 수 있다.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보다 꽃이 많고 일 년 내내 화려한 색채를 접하기 때문에 그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도 꽃무늬 문양도 흔하다.
특히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아주 편한 웃음을 선사한다.
우리는 뭐가 그렇게 무뚝뚝할까?
서양인들도 한국사람들의 굳은 표정에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고 한다.
나만 해도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 외국인이 던진 미소에 불편한 표정으로 답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무뚝뚝한 민족일까?
도시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상류로 갈수록 강도 넓어졌다.
굽이진 곳이어서 그랬을까?
역시 꽃으로 장식된 오색 찬란한 꽃터널을 걸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화사함이란 나에게 어울릴 수 있을까?
상류로 가면 갈수록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관광지는 도시로, 도시는 자연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사람은 거의 볼 수 없고 높은 건물도 눈에 띄지 않았다.
맹그로브 나무는 흔히 보였고 강변길은 나무로 뒤덮였다.
밀림을 걷는 느낌이 드는 구간도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특장점 중 하나는 과일음료가 저렴하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캔 하나에 500원도 안 했던 것 같다.
유람선 터미널이라고 나와있긴 한데, 여기가 끝 지점 부근인 것 같았다.
이제 내가 목표로 했던 말라카 리버를 따라가는 길은 곧 끝이 보일 것이다.
행사 때 쓰는 카누인 것 같다.
예전에 라오스에서도 카누 대회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문화가 아닐까 싶다.
말레이시아 전통은 아닌 것 같다.
중국색이......
양철로 된 집이다.
뒤쪽 아파트 등 신식 건물과 비교하면 극과 극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말레이시아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하다.
부정부패는 국민을 병들게 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레이시아도 오랜 부진을 이겨내고 부국으로 성장하기를.
이 곳을 마지막으로 말라카 리버와는 인사를 나눠야 한다.
약 3시간 정도 걸어온 것 같다.
중간에 급똥 때문에 쇼핑몰에서 해우소를 찾아 헤맨 것 빼면 약 2시간 30분 정도는 걷지 않았나 싶다.
시간 개념 없이 이동했던 터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져갔던 가민을 켜던 스마트폰 스트라바를 켜던 했었어야 하는데 역시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더위를 먹었던 게 아닌가 하는......
어제 터미널에서 나올 때 건넜던 육교다.
육교 옆으로는 역시 대추야자가 아무렇게나 달려있었다.
그런데 정말 저거 대추야자 맞는 걸까?
터미널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터져 나온 건.
이제 살겠네~
더위는 저만치 갔다.
정말 살 것만 같았다.
버스표를 끊고 보니 2시간은 남았다.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 멍청하게 있는 건 싫고 해서 터미널 조사에 나섰다.
그러다 우연찮게 재밌는 걸 발견했다.
유인 짐 보관소와 유인 유료 화장실
어릴 때 20원, 30원 내고 이용하던 공중화장실이 기억났다. ^^
다시 추억 여행이다.
버스가 아주 강렬하다.
IMPACT가 있다.
타기도 겁나는 아주 강한 느낌이 퐉!
이게 바로 말레이시아 컬러구나.
이슬람.
음~
그나저나 이번엔 털쟁이가 없기를......
TBS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은 KOMUTER 열차를 탔다.
숙소는 오는 길에 인터넷으로 마구잡이로 잡았는데 왠지 불안한 기분이 지워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은 배터리 5% 이하로 떨어졌고 오는 길에 구입을 망설였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현격하게 떨어지는 품질 때문이었다.
가격은 국내와 비슷한데 퀄리티는 완전 기대 이하였던 것이다.
이상하게 보조배터리는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스마트폰 없이 어떻게 숙소를 찾아간단 말인가?
불안함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다.
말레이시아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KOMUTER를 타러 가는 길목에 좌판을 깔고 보조배터리 등을 파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거의 2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주고 구입하고 말았다.
역시 돈이 아깝지만 지금은 전기값을 주고 샀다고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한 거다.
부킷 빈탕으로 갔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문제는 여기서 또 발생했다.
가격만 보고 별생각 없이 예약한 Regalia Hotel 은 호텔이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Residence 도 아니다.
민박집도 아니고 이거 설명하기 참 난감한 곳이었다.
인피니티 풀이 있다는 설명에 제대로 된 호텔인 줄 알았더니...
아무튼 민박 스타일 레지던스 호텔이라고 하면 좀 낫겠다.
원룸 형태의 숙소다.
어지간한 호텔보다는 넓은데 쿠알라룸푸르 외곽이니 이 정도 하는 게 정상인지도 모르겠다.
아파트에 레지던스가 형성되어 있다.
프런트를 찾아 들어가니 거긴 다른 호텔이란다.
멘붕에 멘붕이 연속이다.
거기는 Higher Regalia Hotel 프런트라고.
당신이 원하는 곳은 B구역으로 가보라 하더라.
그곳에 가니 복도에 달랑 책상 하나 놓고 영업하는 사람이 있었다.
눈치껏 보니 그것도 접객 관련한 상담만 하는 사람이고 객실은 각개로 운영되는 듯했다.
인천국제공항 국제업무단지에 있는 레지던스 호텔과 비슷한 운영 스타일인 모양이다.
아무튼 너무 피곤해서 다 필요 없다 싶었는데 먼저 간 곳은 방 2개짜리 객실에 샤워실, 화장실은 공용이고 게스스트하우스처럼 방만 따로 사용하는 곳이란다.
이건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다른 객실 없냐 물었더니 돈을 더 달란다.
애초,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생면부지의 외국인과 샤워실, 화장실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불편함이라.
나는 약간의 비용을 더 지불하고 객실을 옮겼다.
다른 호텔로 옮길 정도로 여분의 정신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내 스마트폰과 비슷한 체력이었던 것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쿠알라룸푸르의 야경이 나를 맞아주고 있었다.
모든 수고로움이 한 번에 벗겨지고 없었다.
오늘도 역시 먹은 게 시원찮았는데 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이곳에 2박 예약했으니 어쨌거나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
당장 식당을 찾아야 했다.
건물 엘리베이터는 각 구역마다 3기씩 운영되고 있으나 고층인데 비해 너무 적은 편이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 10분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파트 공용으로 운영하는 수영장이 하나 더 있었다.
인피니티 풀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할 게 분명했다.
간신히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배가 고픈 걸 하늘이 아셨는지 로비에 말레이시아 식당이 보였다.
그냥 아무거나 시켜 먹었다.
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배는 차지 않았다.
이것만 먹고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밤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행히 로비층에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었다.
맥주 몇 캔과 불닭볶음면 비슷한 라면과 땅콩 안주, 귤, 청포도 등을 사다 놓고 맥주캔을 땄다.
그 경쾌한 소리.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갑자기 인피니티 풀 구경은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은 그다지 즐겨하지 않기에 관심은 없고 그저 어떤 식으로 운영되나 볼 일이었다.
헉!
구멍가게 수준이다.
생각했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나마 bar가 맘에 들었지만 혼자 마실 일도 아니고 그냥 방에서 쿠알라룸푸르 야경이나 보면서 맥주나 마셔야겠다 생각했다.
오늘 밤 나의 동반자.
칼스버그와 맛없는 말레이시아 귤.
청포도는 다음날 먹기로 하고 오늘은 이걸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