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6일차, 말라카(Melaka) 구석구석
계획하지 않은 여행에서의 발견
모처럼 편한 잠을 잔 것 같다.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꿈속을 여행했다.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묘한 밤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부랴부랴 배낭을 꾸렸다.
말라카에 올 때 1박 2일이냐 2박 3일이냐를 고민했었는데 말라카는 며칠씩 머물 만한 곳은 아니라는 판단에 배낭을 메고 여행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아예 짐을 챙겨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걸어서 다닐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깊이 없이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말라카 지도는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호텔 조식은 역시 기대 이하였지만 전 날처럼 쫄쫄 굶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낫지 싶었다.
사진으로 남길 만한 음식이 아니라서 스마트폰 조차 꺼내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까지 뱃속에다 음식물을 쑤셔 넣고 나니 오늘의 여행을 위한 완벽한 준비가 끝난 느낌이 들었다.
호텔 프런트에서 체크아웃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제 느꼈던 익숙함이 바로 와 닿았다.
푹푹 찌는 열기에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들어가 쉬고 싶다는 충동이 나를 유혹하려 들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벌써 체크아웃한 것을. ^^
말라카 강까지 어제 갔던 길로 가지는 않았다.
새로운 길을 걸어야 새로움이 있으니까 말이다.
천천히 걸으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건 제주도에서 3일 동안 해안선을 따라 걸으면서 절실히 느낀 것이다.
제주도는 승용차로 적어도 50바퀴는 돌았을 것이다.
자전거로는 2바퀴를 돌았다.
그것도 시계 방향 한 번, 반시계 방향 한 번.
산록도로를 타고 한라산을 한 바퀴 돌기도 했고 1100 고지 업힐도 두 번이나 했다.
자전거 여행자들은 잘 다니지 않는 내륙 도로 자전거 라이딩도 해봤다.
나중에는 MTB로 올레길 모든 코스를 섭렵할 계획도 세워 두었다.
하지만 어떤 탈 것도 걷기 만큼의 만족도는 주지 못했다.
그만큼 걷는 건 여행에 있어 핵심이나 마찬가지다.
위 사진에 나온 곳은 로컬 식당 같은 곳이다.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그다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침 가는 길목에 이런 곳을 만난 것이다.
호텔에서 조식을 챙겨 먹지 않았다면 이런 식당에서 현지인들과 눈인사를 하며 현지식을 경험해보는 건데 안타까웠다.
5년 전 현지인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먹었던 현지식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관광지 유명 식당보다 친구들이 데려간 곳이 더 맛있었던 이유는 우리나라 관광객 전용 식당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싶다.
제주도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제주를 많이 오간 사람이라 할 지라도 로컬 식당과 관광객 전문 식당의 레벨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아침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끊임없다.
식당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안쪽으로 깊숙하고 매우 넓은 홀을 운영하고 있었다.
잠시 식당을 기웃거리던 나는 식사하는 사람들이 불편해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발길을 옮겼다.
드디어 말라카 중심지로 들어왔다.
<2019 중국 방문의 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의미일 거다.
말레이시아 야시장에 매력을 잃었던 나는 지난밤 말라카 야시장을 애써 외면했다.
어떻게든 나와봤어야 하나 하는 후회스러움이 밀려들긴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냥 어디 가도 볼 수 있는 그냥 야시장 정도였겠지 싶다.
존커 거리 입구다. (JONKER WALK)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황당하긴 하지만 헬스로 유명한 사람의 박물관 같은 게 있었다.
급히 인터넷을 찾아보니 말레이시아에서 한 때 헬스를 붐업시킨 장본인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두리안 아이스크림 전문점도 만났다.
우리 비즈니스 중엔 두리안과 관련된 것도 있어서 눈여겨보는 아이템 중 하나다.
골몰 안쪽으로 게스트하우스들이 보였다.
객실이나 시설은 살펴보지 않았지만 깔끔한 것만 찾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화교들이 많다 보니 사찰도 몇 개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동의 고물(그 고물 아님)을 전시 판매하는 매장이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보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식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물을 눈 앞에 내어주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새끼 냥이 한 녀석이 아침 산책을 나왔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
말라카 강 주변에 오니 어제 왔던 골목을 또 찾아들게 됐다.
어제보다는 한산하긴 하다.
알록달록한 것이 재밌기도 한데 저 그림들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는 생각지 못했다.
어제는 사람이 많아서 그냥 지나쳐버린 네덜란드 광장.
워낙 사람 많고, 줄 서는 곳을 싫어하는 모난 성격 탓이다.
곳곳에 맹그로브 나무가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잠시 앉아 인터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말라카 성당 주변으로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날 너무 게을렀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알찬 여행을 하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꾸지람을 주었다.
옆에는 스태이더스 역사 및 민족학 박물관도 있다.
이곳 시계탑 있는 곳이 말라카의 중심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Dutch Fort, Bandar Hilir, Melaka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유추해보는데 모르긴 해도 적군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겠지 싶다.
저 포문들은 어디를 향했던 것일까?
지금은 Casa del Rio를 향하고 있다.
전날엔 강 건너편 길로 해서 바닷가까지 걸어갔었다.
범선에다 꾸민 해양박물관이다.
약 20년 전 인천을 시작으로 목포, 여수, 부산까지의 경로로 국제범선대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기억이 났다.
벌써 오래전 시절이구나.
러시아 친구들하고 범선 안에 있던 보드카 다 털어 먹고 그것도 모자라 소주 박스로 사다 먹으면서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에 도망 나왔던 적이 있었다.
아무튼 뱃놈들은 술이 세다.
여기서 정말 황당한 일이 있었다.
사람인 줄 몰랐다.
아마도 <캐리비안의 해적> 콘셉트로 안내를 해주는 사람인 듯한데 구석에서 잠시 끽연을 즐기고 있었던 것을 마네킹으로 착각했었다.
완전 리얼 그 자체였다.
ND호텔이란다.
뭐, 설명이 필요 없다.
그냥 사진으로 대신하련다.
해양박물관을 나와서 보니 어제 보았던 웬 굴뚝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이 보였다.
알고 보니 전망대 타워였던 것이다.
타밍 사리 타워 란다.
Menara Taming Sari
내가 어지간하면 이런 거 돈 내고 안 쓰는데 드론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위에서 본 풍경을 상상할 수가 없어 체험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내게는 VR360이 있었다.
동영상 촬영을 하긴 했지만 아직 보지도 못했다. ^^
무려 5천 원 정도 되는 거금? 이었다.
관광객 등쳐 먹는 거 아닌가?
아무튼 드론 대신이라는 생각으로 탑승하여 대기했다.
무려 십 분 이상은 기다린 듯하다.
곧 올라간다는 방송과 함께 타워 기둥을 따라 빙글빙글 돌며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말라카 버드뷰가 펼쳐지고 있었다.
딱히 멋진 풍광은 없었다.
5천 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이상한 걸까?
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좋은 건 딱 하나.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타워에서 내려와 동쪽으로 걸었다.
엄청 큰 나무들이 가득한 공원이 보였다.
비즈니스 파트너가 해준 말이 기억났다.
말레이시아는 열대지방이라 자고 나면 팍팍 자라는 것이 보일 정도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무가 커도 너무 큰 것 아닌가?
저런 나무들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얼마나 운치 있고 멋진가 말이다.
너무 더워서 주변에 있는 쇼핑몰로 들어갔다.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배도 고프고 해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이번만큼은 햄버거로 정했다.
5년 전 쿠알라룸푸르에서 친구들과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소고기 관련 메뉴가 없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이번엔 잘 모르겠다.
그냥 아무거나 시켜서 먹었는데 세트가 21.60링깃이니 우리 돈으로 6300원 꼴이다.
결코 저렴하지 않다.
지난번에 말레이시아 자동차에는 스티커가 덕지덕지하다고 설명한 게 있다.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차는 그래도 양호한 편에 속한다.
대체 어딜 보고 운전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차량 스티커가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티커도 불법부착물에 들어가는 걸로 아는데 말이다.
여기가 어딘지, 거기가 어딘지 모른다.
일단 발길 닿는 데까지 가서 뭐라도 있으면 지도를 보는 거다.
이 곳은 왕궁박물관 옆 유적지다.
위로 올라가면 세인트폴 교회가 있다.
당연히 언덕 위로 올랐다.
오랜 유적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누구 하나 설명해주는 사람 없다.
연인끼리 온 사람들도 많았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여행은 미친 여행이다.
머릿속에 뭘 넣고 가는 걸까?
그냥 말라카 길 익히러 온 걸까?
궁금한 건 많았어도 당장 뭔가 담아갈 게 없었다.
그저 눈으로 익히고 사진에 담을 뿐.
람부탄?
나무에 온통 람부탄이 달렸다.
우리나라에 살구나무 심듯 여긴 람부탄이 이렇게 자란다.
세상에, 이걸 따서 먹기나 하나 모르겠다.
유적지에서 내려오니 또 다른 박물관이 나타났다.
이젠 많이 식상해졌다.
그냥 다 비슷비슷해서.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도 나 같은 생각을 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차라리 이런 식의 경찰서 건축양식이 오히려 이색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네덜란드 광장으로 왔을 때 눈에 띄는 그림지도를 만났다.
헉!
몰랐던 사실인데 말라카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이었다.
무식이 용감이라더니,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던 곳이 그런 곳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