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지 말자,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욕심을 버릴 수 없다
난 절대 독서광이 아니다.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열혈적이지는 않다. 어떤 무언가에 꽂히면 죽기 살기로 파고드는 아주 더러운 습관이 문제지만 기억력이 좋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잘 잊어버린다. 가끔은 그게 더 좋을 때도 있다. 이를테면 감정적인 다툼이 일어날 때 상대가 뭔가 잘못한 게 맞는데 정확하게 그게 뭔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툼의 수위를 낮추는 데 한몫한다. 물론 다툼의 패자가 되어야만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아무튼 나는 독서에 꽂히면 밤낮없이 책을 읽는다. 동시에 두세 권을 읽는 경우도 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책을 읽는 거다. 그렇게 하면 질리지 않고 쭉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할 때 여러 관심 장르의 책을 구입하곤 한다.
오늘 역시 그랬다. 건축학에 살짝 관심이 생긴 요즘 건축 관련 서적 코너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쪽 전공이 아닌 내겐 어려운 단어까지 꾸역꾸역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긴 싫다. 그런데 오늘 서점에서 마주친 몇 권의 책이 새로움에 두려운 나를 슬쩍 잡아끌었다.
몸살 때문에 이틀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나는 운동 삼아 무작정 걷다가 서점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방향을 잡았다. 10시도 안 되어 도착한 논현동 교보문고에는 나보다 일찍 들어온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 오랜만에 한적한 사점을 둘러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이 모두 내 책이면 얼마나 좋을까? 서점에 가면 항상 하는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 오늘까지 소유욕이 강하게 끌어올랐다. 되지도 않을 욕심을 떨쳐낸 나는 서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구입할 책을 정해놓고 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내 쇼핑 스타일대로 우선 한 바퀴 돌고 시작하는 것이다.
우연히 건축 관련 책을 보다 관심이 끌어 오른 나는 건축학 관련 서적이 꽂힌 곳으로 이동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면서 다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게다가 다 사고 싶어 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난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읽고 싶은 책은 무조건 사서 보는 게 원칙이다. 물론 지인 집이나 사무실에서 맘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강탈해오는 방법을 강행하기도 한다. 책 자체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거다.
문제는 이 책장을 보며 강박증 같은 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많은 책들을 언제 다 읽나 하는 걱정인 것이다. 알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많이 읽고 싶은데 읽지 못하는 건 스스로의 문제라는 걸 이미 수 차례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잊은 것인가? 게으르지 말자고, 게으르면 시간을 좀 먹는다고, 게으름은 후회만 낳는다고 나를 그토록 다그쳤음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더 자겠다며 스스로 타협하고, 더 놀겠다며 변명하고, 더 쉬겠다며 둘러대며 버린 그 많은 시간들을 이젠 주워 담을 수가 없는데...... 나는 또 같은 패턴의 후회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잊어버리는 그놈의 문제점을 언제까지 안고 살아야 할까? 저놈의 책들을 머릿속에 쑤셔 박아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왜 지식에 대한 욕망은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내 안의 뭔가 잔뜩 꼬여있는 게 분명하다. 난 긴 한숨을 푹 내쉬고 끓어오르는 욕심을 꾸욱 누른 후 한 바퀴 돌며 눈에 넣어 두었던 책을 몇 권 들고 나왔다.
그렇게 들고 나온 책이 바로 이 녀석들이다. 이 중에서 박완서 작가님의 <그 산에 정말 거기 있었을까> 이 책이 제일 읽고 싶었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먹었을까>에서 느꼈던 감동이 지금까지 남아있어서 그랬는지 1초의 고민도 없이 책을 집어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제일 먼저 연 책은 <우리가 알아야 할 도시디자인 101>이다. 이 작은 책이 16,000원이라는 것이 나를 두렵게 하였기 때문이다. 부디 후회 없기를.
그나저나 내 소설들은 언제쯤 이런 책들 수준에 합류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