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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pr 19. 2021

30년 맛집, 25탄-1974년부터 명가춘천막국수

수준의 다름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요즘 들어 업무에 치여 소설은커녕 짤막한 글 쓰는 데 정신을 줄 여유 조차 없었다. 맛집 찾아다니는 건 당연히 모두 올 스톱된 상황. 그런데 이번 춘천 출장 때 춘천의 유명한 막국수 맛집인 명가춘천막국수에 다녀올 수 있었다. 춘천 소양강 처녀상 바로 뒷골목에 위치한 이 식당은 무려 1974년에 오픈한 보기 드문 맛집이다.

오래전 나는 그 골목을 춘천시 업무 관계자들과 몇 번을 드나들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을 여태 몰랐다는 게 의아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워낙 줄을 서는 식당이다 보니 지역 주민들은 식사 시간대를 피해 가면 갔지 붐비는 시간은 피한다고 하니 그들이 나를 데리고 갔을 리가 없다.


로드바이크를 타는 나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춘천엘 다녀왔고, 춘천에서 끼니를 때운 적이 많이 있었는데 이 곳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다음에 자전거 타고 춘천 갈 땐, 무조건 이 곳에 다시 들러 보리라 작정했다.


어쨌든 이번에도 역시 선배님의 추억 맛집이었는데 역시 옛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임에는 분명했다.



다행히 차량 이동이 많지 않아 식당 앞에 주차를 하고 간판 사진을 촬영했다. 간판이야 몇 번을 바꿨을지 알 순 없지만 1974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전통 깊은 식당이라는 건 예감할 수 있었다.



유명한 식당에 가면 뻔한 방송 사진이 걸려 있는데 여긴 특이하게 식당의 역사가 기록된 액자가 눈에 띄었다. 맛있게 먹는 방법도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고 나같이 세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알 만한 유명인사들의 사인도 더러 있었다.



이 집의 역사는 양은 주전자 하나로 설명이 된다. 어릴 적 기억 속을 후벼 내도 잘 떠오를 것 같지 않은 오래된 양은 주전자는 명가춘천막국수와 함께 해 온 산증인인 것이다. 주전자 안에는 메밀을 끓인 육수가 담겨 있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찬찬히 메밀을 음미하면 된다.



막국수 두 개와 보쌈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게 가지 찬이 상 위에 준비됐다.

열무김치가 눈에 띄는데 뿌리를 잘라내고 줄기만 쓰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뿌리를 자르지 않고 김치를 담그는 강원도의 특색이 녹아 있었다. 동치미에서 갓 꺼냈을 백김치는 새콤한 맛이 반찬보다는 애피타이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등 뒤의 가구 위에 놓인 상패, 감사패 등을 살폈다.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별의별 상을 다 수상했구나 싶었다.



여기 보쌈은 완전히 독특하다. 영어로는 ESPECIALLY라고 하면 될까? 독특하고 특이하고 당연히 만족도는 최상이다. 정말 오랜만에 <빗맞아도 30년> 시리즈를 꼭 써야겠다는 의미심장한 충동을 느꼈을 정도니까 말이다.

보쌈 위에 솔방울 하나가 올려져 있는 게 독특하다 싶었는데 잘 보니 확실히 다른 음식이다.

판 아래로는 약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고체연료를 쓰는 걸까? 구멍 숭숭 난 찜 판 위에는 소나무 가지가 깔려 있었다. 이게 뭔 조화인가? 이색적이라는 데서 이미 관심이 뿜뿜이다.

맛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건 정말 맛보지 않으면 그 식감을 알 수 없다. 살코기만 있는 부분만 먹어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식감이란~



막국수 그릇이 놓인다. 고민할 것도 없이 막국수에 동치미 국물을 부어 비빈다. 식초나 겨자 같은 건 넣지 않는다. 기호에 따라 동치미 국물의 양을 조절하면 된다. 정말 깔끔함 그 자체다. 새콤 달콤 매콤한 소스가 일품이다. 적당히 들어간 들깨가루가 맛을 배가시킨다. 진짜 시골 참기름이 들어가 고소함이 더해진다. 그것도 모자라 식감 좋은 사과까지 곁들였다. 덤으로 메밀묵 한 장이 올려져 있다. 고소함의 극치다!




톡톡 끊어지는 메밀 면발을 맛보면 이게 진짜 메밀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메밀국수 맛집을 워낙 찾아다닌 터라 명가춘천막국수의 메밀 면발의 수준을 인정하지 않은 수 없다. 진정 맛집이다. 곱빼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보쌈에 곱빼기를 먹으라 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전히 식탐에 의한 것이었다.



보쌈과 함께 메밀면을 씹는 건 기본 아닌가? 어울리지 않을 상이한 두 음식의 묘한 조화랄까?

아무튼 정신없이 흡입하기를 얼마가 지났을까? 드디어 소나무 가지가 보이고 한두 조각 남은 보쌈이 누구 차지가 될 것인지 운명의 갈림길 위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보쌈과 함께 나온 버섯무침은 다른 곳에서는 본 적 없는 춘천명가막국수의 비장의 무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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