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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부엌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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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May 27. 2021

이곳은 회사인가, 식당인가? 두 번째 이야기

출장 갈때마다 구입해 온 지역 특산물이 직원 점심식사 요리가 된다

엄마 밥이 그립지 않다

코로나 이후, 어떤 직원도 밖으로 나가서 밥을 먹자는 의견을 내지 않는다. 내가 준비한 집밥 수준의 상차림에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도 부럽지 않게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만병통치약은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지만 매일 달라지는 버라이어티 한 점심시간은 매일매일 기다려지는 상황이다. 매일 새로운 요리를 내놓는 나 역시 하루하루가 즐겁긴 마찬가지다.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이런 즐거움도 없으리라. 아무튼 하루 삼십 분은 나에게 근무 외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난 일이 즐겁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아니지만 워낙 하고 싶은 건 다 하며 살아온 지라 이젠 일 빼곤 딱히 더 하고 싶은 게 없으니 일이 즐거울 수밖에. 그리고 내가 아무리 익스트림한 레저를 섭렵하며 살아왔다지만 일보다 스펙터클하고 익스트림한 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일상 중에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있으니 어찌 더욱 즐겁지 아니할까? 엄마 밥을 잊지 못하는 우리가 엄마 밥을 떠올리지 않게 된 건 엄마 밥처럼 맛있는 집밥 같은 점심식사 때문이지 않을까? 감히 엄마 밥에 비교할 순 없겠지만 식당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준의 정성이 우리 회사 회의 테이블에서 매일 펼쳐지고 있다.


밥상의 연장선, 출장길

우리는 지방 출장을 다녀올 때, 항상 그 지역 특산물을 사 가지고 오는 편이다. 가평에 가면 잣, 천안에 가면 호두과자, 부산에 가면 어묵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 탕비실에서 나의 요리가 시작된 후로 특산물의 종류가 바뀌고 말았다. 게다가 각 지역의 지인들이 보내주는 특산물도 음식으로서의 완제품보다는 식단의 원재료가 될 것들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용대리에서 손꼽히는 황태, 속초 열기와 가자미가 왔다

스노보드에 미쳐있던 시절 횡계에서 러시아 출신 황태를 많이도 먹었다. 산에 미쳐있을 땐, 용대리와 남교리 일대에서 역시 많이도 사다 먹고 얻어먹기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어쨌든 추억이 가득한 용대리 황태는 미시령 터널마저 인기가 시들해져 일부러 가지 않으면 갈 일도 없어진 상황이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황태가 오기 바로 전날엔 속초에서 반건조된 열기와 가자미가 한 박스 날아왔다. 꾸덕꾸덕하게 말려진 두 녀석들을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어 두고 먹을 날만 기다렸다.



여주에서 공수한 현미

집에서도 쌀 소비가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집에서는 깔짝깔짝 댔을 사람들도 먹성이 좋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건 현미를 씻어 물에 불리는 거다. 두세 시간이라도 불려 놔야 찰지고 맛진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제주도에서 공수한 두릅

내가 봄에 제주에 있었다면 두릅 뜯는 재미를 느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봄엔 제주도에 발도 못 붙여봤다. 회사에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이건 제주도민이 되어버린 엄마표 두릅. 산에 가면 많기도 하지만 두릅만큼이나 두릅 뜯는 사람도 많다. 뱀도 많고~ ㅎㅎ



하루 5판 나오는 홍성 마을 출신 오골계란

출장 때 사 온 건 아니다. 지난 주말 홍성이 고향인 친구 녀석이 보고 싶어 연락을 했더니 홍성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는 말에 만사 제치고 낚시에 합류했다가 친구 고향집에서 엄마표 아침밥을 얻어먹고 나오는 길에 마을에서 사 온 것이다. 하루에 다섯 판이 나오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 외엔 먹을 수도 없다는 귀한 녀석인데 이른 시간이라 내가 두 판이나 구입할 수 있었다. 계란의 쫀득거리는 식감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점심시간을 30분 앞두고 드디어 요리를 시작했다. 압력밥솥은 11시 50분으로 예약을 해둔 상태라 바지런히 움직이면 12시엔 식사를 시작할 수 있다. 우선 커피 내리러 탕비실에 갔다가 미리 불려둔 황태의 상태를 점검했다. 물을 잔뜩 머금어 탱탱 불어 터진 황태가 비릿하며 고소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정말 살아있는 것 같지 않나?

왠지 집에서 해 먹던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우선 손으로 물기를 꽉 짜내어 대기시킨 후 냄비에 오뚜기 들기름을 들이부었다. 아끼면 안 된다. 황탯국의 고소한 맛을 담당하는 녀석이니까 말이다. 얼마나 잘 볶아내느냐가 황태의 깊은 맛을 끌어내는 포인트가 된다.



달달달달 볶기 시작한다

들기름을 머금은 황태가 열기에 김을 모락모락 내며 탕비실을 구수함으로 점령할 즘 되면 볶기를 마치고 물을 들이붓는다. 물 양은 인원수에 맞추면 된다. 어차피 건더기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나눠 먹으면 되니까.



황탯국이 되어가는 중

황태 살과 한 몸이 됐다 분리 작업이 시작되면 뽀얀 국물이 먹음직스러워진다. 이제부터가 제대로 요리를 시작할 때다. 다진 마늘을 한 숟가락 듬뿍 투척한다. 한국인에겐 역시 마늘 아닌가! 청양고추, 홍고추, 팽이버섯, 금 같은 대파, 양송이버섯, 양파를 썰어 둔다. (양파는 넣지 말았어야 했다. 국물에서 단맛이 나서 황탯국 본연의 맛이 사라져 버렸다.)



진한 황태 국물이 매력적인 황탯국

두부까지 각을 내서 썰어 투척한다. 순서 같은 건 없다. 어차피 난 대단한 요리사가 아니니까. 그냥 우리 식구들 맛나게 배 불리면 임무는 완수되는 거다.



드디어 가자미구이

프라이팬에 기름을 왕창 두르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자미를 굽기 시작했다. 이 맛을 며칠이나 기다렸다고~ 반 정도만 건조된 가자미는 수분이 많아 기름이 많이 튄다. 프라이팬용 뚜껑이 없어 냄비 뚜껑을 덮어 앞뒤로 노랗게 구웠다. 간자미를 제대로 익히면 지느러미 부분의 뼈는 씹어 먹어도 좋다.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하여 오늘의 밥상이 차려졌다. 이게 1인분이다. 각자 이만큼씩 할당을 받고 바닥을 비워냈다. 이 얼마나 행복한가? 다들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내일을 또 기약하는 수밖에. 그나저나 두 달 정도 밥을 하다 보니 한 바퀴는 다 돈 것 같다. 새로운 재료가 있으면 새로운 요리가 나올 텐데... 누구 출장 안 가십니까?






냉장고를 뒤져보니 제주에서 올라온 말린 비트가 한 봉지 있다. 내일은 비트 밥을 해볼까? 지난번 제주도산 더덕밥도 인기였는데... 이번 주에 제주도 내려갔다 와야 하니 말린 톳과 말린 고사리나 한 봉지씩 가져다 톳밥과 고사리밥을 해봐야겠다. 이번에 내려가면 보말 좀 가져와야 하나... 문어도 좀 잡고, 무늬오징어도 잡고, 내 사랑 벵에돔(벵순이)도 잡아서 말려 가져올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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