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반이 시작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5인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데 세운 대책이다.
근처에 있는 협력업체는 직원 한 명이 확진되어 비상이 걸린 후로 전 직원이 도시락을 싸 와 함께 식사를 한다고 했다.
우린 코로나가 무서워서라기보다는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다행히 포장을 하지 않던 단골 식당들 대부분이 코로나 때문에 포장을 시작했다.
포장을 하면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양을 좀 많은 편이었다.
식당에서 주는 밥에다 햇반을 좀 더 사면 사무실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러/다/
식당에서 뭔가 사다가 먹는 것도 지쳐가고 있던 차에 난 요리를 하기로 작정했다.
난 예전부터 워낙 요리를 좋아했다.
국내든 해외든 등산을 가면 못해 먹는 음식이 없었다.
라뗀 말이지~ 100리터짜리 배낭에 쌀부터 해서 김치부터 감자, 양파, 당근, 된장, 고추장 등 온갖 양념까지 죄다 가지고 다니며 된장국, 김치찌개는 기본이며 있는 재료만 가지고 뭐든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요리는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다.
냉장고만 열어보면 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준은 되어야 밥 좀 한다는 소릴 들을 수 있다.
10인용 압력밥솥을 샀다.
얼마 지나지 않아 LG전자에 누적된 포인트 약 40만 원을 몽땅 투자해 할인율이 큰 밥통을 구입했다.
무려 10인용이나 되는 대형 사이즈다.
밥통이 생기자 쌀이 생겼고, 김치가 생겼다.
제주도에서 온갖 반찬과 야채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냉장고가 작아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821리터짜리 양문형 대형 냉장고를 주문했고 결국 냉장고 두 개가 꽉 채워졌다.
식당일까? 집일까? 회사일까?
아무튼 햇반에서 시작된 생각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2구짜리 인덕션, 냄비 세트, 웍, 프라이팬, 오븐, 녹즙기, 믹서까지 이젠 집보다 종류가 많아졌다.
그 넓던 탕비실이 좁아졌다.
커피 드립 하는 것도 버거워 선반을 두 개나 매달아 쌓기 시작했다.
요리를 하려고 하니 갖은 오일과 양념이 필요했고 마트에 가서 죄다 쓸어 담아왔다.
그릇, 다양한 밀폐용기 등 하나씩 사다 놓다 보니 이젠 집보다 많은 것 같다.
거의 뭐 신혼살림 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나중에 대충 계산을 하고 보니 지출이 상당했다.
주문 받습니다
첫 요리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동안 뭐라도 만들어 먹은 게 엄청 많은 것 같다. 이렇게 글이라도 쓸 줄 알았다면 요리할 때마다 사진으로 남겨두는 건데 그랬다.
아무튼 무엇보다 여럿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 없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이젠 뭐든 만들어 먹는다.
게다가 주문까지 받는다.
식당을 차리자는 제안이 있으나 그것만큼은 거절이다.
그나저나 내일은 뭘 만드나~~
새로운 요리를 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루에 딱 삼십 분만 신경 쓰면 전 직원이 즐겁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