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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n 26. 2021

이곳은 회사인가, 식당인가? 세 번째 이야기

제대로 된오뎅국을끓여보기로 했다

오늘 점심을 뭘 해 먹을까?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게 쌀을 씻어 불려놓는 일이다. 사무실에서 해 먹는 음식들이 집에서보다 건강을 더 챙기는 것 같다. 쌀을 씻으며 오늘의 국거리와 반찬 등을 잠깐 고민해 본다. 어차피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재료들은 전부 내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 훤하다. 가끔 마늘 같은 중요한 것들이 불시에 소진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본다. 장을 보는 것도 은근히 재미난 일탈이다.

코로나 후로 사무실에서 밥을 해서 먹다 보니 원래 쓸만했던 요리 수준이 좀 더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예전에도 간을 거의 보지 않는 편이었는데 어쩜 간을 안 봐도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도정해서 온다던 여주 현미쌀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아침부터 초록마을에 가서 현미쌀을 사다 압력솥에 예약을 걸어 두고 다시 업무 속으로... (오늘은 토요일이다. 우린 주말도 없이 일을 하는 편이다. ^^)



육수를 내기 위해 마트에서 사 왔던 육수용 다시백을 하나 투척하고 냉동실에 소분해 놓았던 꽃게 다리 몇 개를 넣었다. 강원도 출장 때 인제에서 사 온 명품 황태도 적당량 넣었다.



좀 더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 고민하다 냉동 칵테일 새우 세 개를 투척했다. 감칠맛 내는 재료들은 얼추 다 들어간 것 같다.

사진엔 없지만 제주에서 가져온 무를 넣었고, 팽이버섯, 청양고추, 양파가 들어갔다. 양파는 넣지 않았어야 하는데 실수였다. 단 맛이 나는 순간 제대로 된 명품 국물 맛을 버린다.



감칠맛 나는 국물의 1번 선수였던 꽃게 다리는 제 역할을 다 했으니 건져내서 버렸다. 살이라도 빨아먹을까 싶었지만 아쉽지만 어쩌겠나... 그렇게까지 부족하게 살진 않잖아? ^^



육수가 팔팔 끓는다. 이걸 육수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기가 막힌 명품 오뎅국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난 진간장, 국간장, 왜간장 이런 구분을 두지 않는다. 어차피 그 간장이 그 간장인 것 같아서다. 간장은 간장이 가진 딱 그만큼의 맛 정도만 사용한다. 절대 과하게 쓰지 않는 편이다. 간장이 원재료의 맛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파는 마지막으로 넣어야 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파에서 시원한 국물이 배어 나오는 걸 원하기 때문에 조금 앞서 넣는 편이다. 이 선수를 마지막으로 명품 오뎅국의 모든 선재료들이 투입되었다. 이 파 역시 제주도 집에서 직접 키운 녀석이다. 파값이 요동칠 때 제주에서 공수해 손질해 넣어둔 녀석인데 아직까지 탱탱하다. 마트에서 사다 먹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농약을 쓰지 않는 농산물은 상상 외로 신선함이 오래 유지된다.



마지막, 오뎅이다. 이거야 말로 제 때 사다가 제 때 얼려둔 오뎅이다. 오뎅이야 어차피 밀가루 덩어린데 얼려놔도 똑같기만 하더라.



드디어 오뎅을 투척하여 강한 불(인덕션이라 불은 아님)에 좀 더 끓이면 끝! 오뎅이 육수를 빨아먹고 있다. 나쁜 놈! 내가 어찌 생산해 낸 국물인데...



그릇에 담아낸 오뎅에 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오뎅은 후추 맛이라 했던가? 역시 후추를 넣느냐 마느냐 고민했던 게 결과적으로 후회를 낳고 말았다. 넣지 말았어야 했다. 후추가 육수 맛을 해쳤다고 해야 하나?



김치볶음밥을 먹고 싶다는 동료의 말에 불쑥 대답해버린 나는 냉장고에서 얼마 남지 않은 김치를 꺼냈다. 이 김치도 제주도에서 올라온 건데, 바닷물로 절인 명품 김치다. 물론 파는 건 아니다. 며칠 전 먹어보니 아주 제대로 익었던데 김치볶음밥에 쓰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쉰 김치로 해야 맛있는데...



새우김치볶음밥을 하려고 했었는데, 참치김치볶음밥을 먹고 싶다는 동료. 일도 못하는 게 입만 까다로워서 &^%*)@%^&*#^*!$^*!@^*)&))^%



압력솥은 밥이 되는데 2분 남았다고 쓰여 있었다. 이제 밥이 되면 섞어 그릇에 덜어 먹으면 된다. 오늘의 요리는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밥이 다 되었으니 맛있게 먹으라는 밥솥 아가씨의 알림에 솥뚜껑을 열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강낭콩. 저번엔 완두콩도 넣어 밥을 지었는데 오늘 볶음밥을 해먹을 줄 알았다면 아까운 강낭콩을 넣진 않았을 거다. 된장!


<요건 이틀 전에 해먹은 건데 비주얼이 끼깔난다>



솥에서 콩밥을 꺼내 비비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과 후추 그리고 죽염을 넣고 열심히 비빈다.



이렇게 해서 차려낸 1인분 식단. 제주도에서 공수한 여러 가지 반찬들과 함께 오늘도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모두들 나의 요리에 엄지 척!

하루에 딱 삼십 분만 신경 쓰면 몇 안 되는 전 직원이 즐겁다!

다음 주 월요일엔 좀 더 재미난 요리를 선 보여야겠다.

잡채밥? ㅎㅎ





토요일, 사무실에서 점심밥 해 먹고 바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같은 놈이 어디 또 있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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