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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부엌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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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l 08. 2021

이곳은 회사인가, 식당인가? 네 번째 이야기

제주에서 올려준 건비트를 넣어 비트밥을 만들어~

냉장고에서 건비트가 가득 든 봉투를 발견했다. 올봄에 제주에서 올려준 건데 잊고 있었던 거다. 요즘 톳밥, 더덕밥, 강낭콩밥, 완두콩밥 등 안 만들어 먹는 밥이 없는데 비트밥은 난생처음이었다.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싶어 걱정스러웠지만 어쨌거나 비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녀석이니 마음 단단히 묶어 두고 미리 씻어둔 현미 위에 한 움큼 투척했다. 



아뿔싸! 건비트가 물을 만나자 뻘건 비트즙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늘 밥은 망했군!


오늘 처음으로 사고를 치게 생겼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밥이 어떤 색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십수 년 전쯤에 설악산 필례약수를 떠다 밥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땐 철분 때문에 초록색 밥이 되었는데 이건 붉은색 밥이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드디어 밥이 다 됐다는 밥통 아가씨의 안내 멘트를 듣고 부랴부랴 뚜껑을 열었다. 빨리 열어본다고 해서 밥 색깔이 바뀔 리도 없건만 뭔 조바심이었는지 모르겠다. 예상보다는 덜 빨긴 색이었다. 다행인 듯싶었는데 건비트는 수분을 먹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딱딱하진 않겠지만 식감은 어떨지 걱정스러웠다. 네 명만 사무실에서 식사를 하니 다행이었다.



밥이 지어지는 시간, 나는 냉동실에 처박혀 있던 대패삼겹살을 꺼내 고추장김치두루치기를 준비했다. 이걸 뭐 레시피라고 하기도 그런 게 난 요리할 때 간장 몇 스푼, 소금 몇 스푼 이런 개념이 없다. 눈대중으로 대충 어림잡아 양을 조절하는 편이고 추가로 뭘 더 넣거나 하지는 않는 편이다. 오로지 감에 따를 뿐 어떤 매뉴얼 같은 게 없다. 그래도 수준급 음식이 준비되는 걸 보면 다들 신기해한다. 이건 다름 아닌 이십여 년간 전국을 방황하며 식도락을 즐긴 덕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엄마의 요리 솜씨 덕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추장 담뿍 덜어놓고, 참기름과 들기름을 같이 붓는다. 참기름과 들기름은 각기 매력이 있어 꽤 많은 요리에 같이 쓰는 편이다. 제주집에서 올려준 매실청이 단맛의 주인공이었고 냉장고 안에 김 빠진 사이더가 있어 여기에 조금 넣었다. 후추와 간장을 조금 넣고 마지막으로 맛술을 아주 조금만 뿌린 후 깨소금을 적당량 던졌다.

팽이버섯, 파, 양파, 다진 마늘, 청양고추를 넣어 버무리면 기본적인 준비가 끝난 거다.



미리 냉동실에서 꺼네 녹여둔 대패삼겹살을 넣고 열심히 마사지를 한다. 주물럭주물럭, 조몰락조몰락~ 고기가 스트레스 좀 받아야 할 거다. 어쩌면 나의 사랑을 담뿍 담아낸 것인지도 모른다. (변태 아님, 오해 방지용)



강한 불(인덕션임)에 고기가 타지 않게 계속 휘저으며 고기가 익기를 기다린다. 보글보글 거리는 양념장이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상당히 부지런해야 한다. 사실 프라이팬보다는 속이 깊은 웍이 좋은데 사무실에 그것까지는 사다 놓지 않았다. 아마 웍을 갖다 놓는 순간, 나는 마파두부 같은 중국요리까지 시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오븐이 눈에 밟혀 빵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미쳤지. 그 시간에 일이나 하자.



오전에 마트에서 사 온 모둠 야채를 씻어 고추장김치두루치기에 쌈을 싼다. 다들 환호가 터져 나왔다. 식당을 차리자는... 꿈 깨라는... 즐거워서 하는 요리와 일이라서 하는 요리는 차원이 다른 거다.



이건 김해의 거래처 분이 낚시로 잡아 내장을 정리해 냉동시켜 보내준 자연산 우럭이다. 800그램 정도 되는 녀석들인데 매운탕처럼 끓여내 먹었다. 우럭은 어떻게 해서 먹어도 맛있는 녀석이다. 대가리가 너무 커서 안타깝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이건 비비고에서 만든 싸구려 사골을 베이스로 하여 끓인 이른바 사골된장국이다. 여기엔 다진 소고기도 넣었다. 된장국에도 간장 아주 조금 넣어주면 된장국에서 좀 더 깊은 맛이 난다.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자투리 야채들은 몽땅 된장국 안에 투척된다. 이것도 완전 별미로 좋다.





새로운 음식을 해서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나의 즐거움을 누가 알까? 요리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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