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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n 01. 2021

나를 사랑한 제주

몸이 고달픈 힐링

무려 세 달만에 제주집에 왔다. 뭔 일이 그리 바쁜지 마음은 제주에 있었어도 생각은 온통 일뿐이었다. 이제는 관광객이 아닌 지 오래되어 가끔 제주를 찾는 사람들과는 노는 본새도 많이 틀리다. 내가 가는 곳엔 관광객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이번엔 뭘 하고 놀다 가나 고민스러웠지만 낚싯대 들고 바다에 나가면 그만이다. 폐 속 가득 신선한 오존을 꽉 채워올 수 있고 벵에돔 낚시가 좀 바쁜 축에 속하지만 어쨌든 먼바다 위에 시선을 두면 그 자체가 힐링인 셈이다. 제주에서 나를 만족시키는 힐링은 몸이 피곤하다. 남들처럼 경치 좋은 데서 멍 때리며 지내는 걸 왜 나는 하지 못하는 걸까?



요즘 날씨가 좋아서 바다 어딜 가도 이런 멋진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도로를 달리다 멈춰 선 차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딱히 바쁘지 않으면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고도 남은 여운을 느껴보면 좋다. 이번엔 3박 4일밖에 안 되는 짧은 일정이라 빠듯하게 시간을 쪼개 나름의 방황을 하다 왔는데 일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돌며 만난 멋진 장관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탈 비행기가 제주도에서 김포공항에 내리다 벼락을 맞았다. 기체 점검이 길어져 다른 항공기로 변경되어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시간 일찍 갔으니 무려 3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제주공항에 내리니 공항 근처에서 무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준 지인이 있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겹겹이 되는 순간이었다.



제주집으로 가는 내내 유난히 밝고 커다란 달을 감상했다. 사진으로 남겨볼까 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달과 시골 풍경을 사진에 담아 봤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이젠 어지간한 SLR 못지않다. 제법 예쁘게 나온 것 같다.



공항에서 나오고 보니 9시 50분. 코로나 때문에 식당은 거의 영업 종료 직전이다. 멍청하게 24시간 해장국집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 인지하고 웃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서 끼니를 때우기로 하고 달렸다. 나를 기다리느라 식사도 거른 지인에게 미안함이 중첩됐다.

집에 도착하고 보니 무려 11시가 넘었다. 같이 식사도 하지 못하고 보낸 게 마음에 걸렸으나 너무 늦게 돌아가면 피곤할 것 같기도 해서 혼자 보내드리고 나는 엄마 밥을 얻어먹었다. 만둣국과 전 그리고 비트 물김치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엄마와 잠깐의 수다를 나누고 기절하고 말았다.





남원에 사는 지인과 나는 이틀 동안 낚시를 다니기로 했다. 뱅순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긴 했을까? 우린 무작정 서쪽으로 향했다. 거기서 꽝 치는 일은 거의 없기도 하고 맛집도 많이 있으니까.



산록도로를 타고 대정읍으로 향하는 길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한라산이 예쁘다. 이번엔 날을 잘 잡았는지 날씨가 좋아 자외선이 강하긴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가 나를 관광객 아닌 관광객으로 만들고 말았다. 항상 운전하고 다니다 조수석에 앉아 있으니 눈에 보이는 게 달랐다.


영락리에 있는 즐겨 찾는 포인트에 도착해 낚시 장비를 챙기는데... 아뿔싸! 지인은 낚싯대에 릴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져간 루어대로 낚시를 하기로 하고 억지로 낚시를 시작했는데 잡어가 많아 영 신통치 않았다. 대상어에 따라 채비가 다르기 때문이다. 원래 내가 주로 낚시하던 자리는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먼저 차지하고 낚시를 하고 계셨는데 자리돔 낚시에 한창이었다. 요즘 제주도에 자리돔이 귀하다고 들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자리돔 카드 채비도 없고, 자리돔 잡으려면 오징어를 잘게 썰어 왔어야 했는데 준비된 게 없어서 안타까웠다. 잡어만 득실득실하고 대상어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아 일찍 철수하고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예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 송악산 근처 갯바위 포인트로 옮기기 전 식사를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역시 지나칠 수 없는 맛집인 하르방밀면에서 완전 제주스러운 밀면과 만두로 배를 채웠다.

자리를 옮기면 벵에돔을 잡을 수 있으려나...



상모리는 역시 랜드마크가 많은 곳이다. 멀리 송악산이 웅장하고, 단산도 그에 질세라 멋진 자태를 자랑한다. 멀리 한라산도 한몫한다.



송악산 근처에 있는 이 포인트는 완전 대물 포인트다. 앞으로는 가파도가 넓게 펼쳐져 있다. 관광객 1도 없고 사람도 거의 없는 이 곳에서의 힐링은 매우 색다르다. 그저 파도소리, 새소리만 들리면 좋으련만 마라도와 가파도를 오가는 여객선 엔진 소리가 웅웅 거리는 게 많이 거슬린다.



물색만 봐도 제주바다가 얼마나 깨끗한 지 알 수 있다. 이런 곳에 사는 물고기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멀리 송악산이 보이고 그 뒤로 산방산도 보인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벵에돔 얼굴을 보기 위해 찌를 노려본다.



지인은 락피쉬를 잡을 요량으로 찌낚시에 갯지렁이를 달아 던지고 있다.



복어와 어랭이가 전부다. 복어는 엄청 큰 녀석을 몇 마리 더 잡았지만 독이 있어 먹을 수 없으니 잡으면 방생이다. 어랭이는 말해 무엇하랴. 이 날은 완전히 그냥 제주바다 물멍으로 만족해야 했음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풍랑이 치는 가슴속을 평정시켜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 아닌가?



모슬포엔 관광객이 1도 없는 오래된 식당이 있다. 마침 그 식당이 떠올라 저녁을 먹기로 하고 달려갔다. 역시 현지인 아니면 모르는 곳이라 외지인은 우리가 전부인 것 같았다. 생갈비에 소주 한잔(사실은 두 병)으로 그날의 노동적 힐링을 마무리했다.




엄마가 비파를 따다 놓으셨다. 아들 주겠다고 이런 걸 다 따 오시다니...


비파는 초여름에 익는 과일로 남쪽 지방에만 자란다. 노랗게 잘 익은 비파는 몸에도 좋다더라. 씨가 너무 큰 게 흠이지만 몸에 좋다는데 가릴 게 뭐 있나? 대한민국 사람 중 비파 먹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나도 너무 오랜만에 맛본 과일이라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마당 위엔 톳, 우뭇가사리, 미역이 말려지고 있었다. 이건 그새 말라서 서울로 향하는 내 짐 속으로 들어갈 게 뻔하다.



일찍 나간다고 나왔는데 내 단골 벵에돔 낚시 포인트에 벌써 한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허무함이 밀려왔다. 월척을 낚을 수 있는 매우 좋은 포인트인 데다 멀리 성산일출봉을 보며 힐링할 수 있는 최애 포인트 중 하나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이 대물을 낚아 올리는 걸 구경하며 잔챙이로 손맛을 봐야 했다. 이번에도 제대로 된 벵에돔 회는 먹을 수 없는 걸까?

역시 잔챙이들만 잡아 올리다 밑밥 다 던져주고 우리가 낚시했던 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철수했다.



직접 잡아서 회를 먹을 수 없으니 점심은 가까운 식당에서 물회를 먹기로 했다. 그것도 내가 수 차례 검증했던 식당이다. 칼칼하고 달달한 물회 국물이 아주 시원하다. 게다가 쫄깃한 식감의 생선회는 낚시에 미련이 남아 있던 생각을 조금은 해소시켜 주었던 것 같다. 여긴 게장도 매우 맛나다는...



일찍 낚시 놀이를 마감하고 집으로 기어 들어와 엄마가 해주신 밥을 얻어먹었다. 캬~ 어제 뜯어온 생미역이다! 게다가 언제 집에 입고된 녀석인지 알 수 없는 광어가 찜이 되어 펼쳐졌다. 그 외에도 완전 제주식 식단이 상 위에 펼쳐졌고 내 입은 향연을 느끼며~~





밥 먹고 배 좀 두드리고 나니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면 뭐하나, 뭐라도 해야지. 창고에서 엄마 자전거를 꺼내 안장을 높이고 나름 자전거 복장을 한 후 물통 하나 채워 밖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냥 바닷가로 나가면 어느 쪽으로든 핸들을 돌리겠지 싶었다. 



일단 핸들 돌아가는 대로 달리다 보니 오조리에 도착했다. 갯벌에 어마어마한 관광객들이 보였다. 조개보다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곧 해가 떨어질 시간이라 이곳저곳 달리다 보면 멋진 석양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부풀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았던 거다. 3개월 만에 제주에 온 나를 위한 선물인가?



가끔 낚시하던 오조항에 가서 지미봉 방향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노려보며 해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달리기로 작정했다. 태양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걸까?



종달리 수국길로 접어드니 수국이 피고 있었다. 아직 절정이 아니라 멋진 풍경은 아니었다. 아마 한두 주 후면 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 난 아직 젊어서 그런지 꽃엔 관심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펼치며 다시 페달을 밟았다.



하도해변과 용목개와당이다. 여긴 정말 인근에서 손꼽히는 절경인 곳이다. 제주도민들도 여기서 캠핑을 즐길 정도니까. 도로변에 세워둔 차량들 때문에 자전거 도로를 달릴 수 없어 공도를 타고 달려야만 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해도 이렇게 멋진 사진이 나오는 정도니 직접 보면 어느 정도의 만족을 줄지 모를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조금씨 하도리 쪽으로 향해 간다. 태양은 조금씩 수평선 쪽으로 다가가는 게 아쉽고도 기대되었다. 태양은 조금씩 붉어지고 하늘은 조금씩 푸름을 잃어갔다.



물이 많이 빠져 토끼섬 앞까지 바닥이 드러났다. 이 곳을 그렇게 자주 다녔음에도 바닥이 이렇게 생겼는지 몰랐던 게 신기했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자전거를 바위 위에 세워 두고 한 컷. 누군가 함께였다면 내 사진도 있었을 것을. 다음부터는 삼각대라도 가지고 다녀야 할까 보다.



이렇게 저물어가는 석양 사진을 몇 컷 담았다. 황홀한 일몰은 이번 휴가 아닌 3박 4일의 기간 중 가장 멋진 선물이었다. 바다는 언제나 풍요롭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바랄 게 없는 바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일에 묻혀 살겠지만 단분간 이 사진으로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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