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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l 27. 2021

3박 5일, 제주도 집에서 짧은 여름휴가 2일차

이벤엔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번 휴가 역시 제주도 집으로 가기로 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고, 불과 5일 전에 갑자기 잡은 여름휴가. 2년 전엔 <2일 간 부산 출장-10일 간 말레이시아 출장-20일 간 제주도 여름휴가>를 보내고 여름을 몽땅 날려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휴가라고 할 수도 없는 짧은 기간이다. 어쨌거나 현지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내 눈엔 벵에돔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벼락 휴가 명령이 떨어지자 렌터카 문제로 계획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부쩍 늘어난 관광객 때문에 렌터카 비용이 하루 20만 원을 넘나드는 상황이고 그것도 예약이 쉽지 않았다.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차를 가지고 가는 걸로 마음을 굳혔다. 완도까지 가서 배에 차를 싣고 3시간 내외의 시간 동안 배 안에 꼼짝 못 하고 갇혀 있어야 하는 괴로움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에서 완도까지는 휴게소 등을 포함 5시간 이상 걸리는 여정이다. 그것도 길이 안 막힐 때 이야기지만 말이다.



수요일에 퇴근해서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배는 새벽 2시 30분 출항이다. 안내 문자에는 1시간 30분 전에 차량을 선적하라고 했다. 배에 차를 싣고 다니는 게 초행은 아니라 썩 부담은 없었다. 다만 길이 막히거나 하는 불상사가 날 것을 대비해 한 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게 새벽 1시 정도 된 시간. 나는 혼자 말뚝으로 핸들을 잡았고 주유하는 것을 포함 휴게소에 두 번 멈춰 섰다.

차를 선적한 후 배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2등석을 예매했는데 누워서 갈 수 있는 3등석이 훨씬 2등석 같다. 그게 2등석이라니.... 덴장! 아무튼 허리도 불편해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거의 꼬박 밤을 새우고 있었다.



새벽 4시 59분. 배는 제주에 근접하고 있었다. 허리는 아프고, 잠은 안 오니 이젠 죽을 지경이다. 새벽 5시 정도 도착을 예정하고 있었는데 거의 큰 차이는 없었던 것 같다. 제주항에 배가 닿고 출차를 하니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난 아직 갈 길이 멀다. 성산까지 내내 달려야 하니 말이다.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간부터 차를 몰아 성산을 향했다. 동이 트며 날이 밝아왔지만 정신은 몽롱했다. 서울에서부터 거의 날밤을 새고 제주까지 와서 1시간 가까이 운전을 했다. 집에 도착해 짐을 부리고 아침을 먹고 잠시 자고 싶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던 누구 덕분에 곧장 낚시 장비와 캠핑 용품을 싣고 길을 나서야 했다. 벵에돔 낚시에 입문한 그는 내게 낚시 솜씨를 뽐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



목적지는 세천포구다. 집에서 거기까지는 무려 40분 정도 되는 거리인데 체력이 바닥나다시피 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몸뚱이는 아직 쌩쌩한 듯했다. 어쨌거나 거기까지 가서 일행이 오기 전에 타프를 치고 쉴 공간을 마련해 뒀다.



여기가 낚시할 장소다. 며칠 전 여기서 벵에돔 스무 마리나 잡았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했지만 문제는 제주를 향해 다가오는 태풍 때문에 파도가 높아 낚시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예고되어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벵순이 얼굴이 왜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 피곤한 것도 잊고 낚시에 전념했고, 결과는 예고됐던 대로 나왔다. 잔챙이 잡어들만 낚아 올리기를 반복하던 우리는 이내 낚시 하기를 포기하고 철수하기로 했다.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낚시는 실패했어도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도심에서 찌들었던 때를 벗겨내긴 했으니 성공인 거다. 게다가 피곤함도 날려버렸을 정도로 힐링이 되었으니 자연의 힘이란 대단한 것 같다.


그런 대자연의 선물도 무시한 채 잠들어 있는 이 친구들... ㅎㅎ 바닷바람이 시원하니 잠이 들 만도 하지 싶었다. 그런데 어째 피곤할 일이 없는 현지인은 어쩌자고 잠이 들었을까? 이들을 보니 제주를 제대로 만끽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도 여행 중 하나이니까 말이다.






타프와 릴랙스 체어 등 장비를 접어 차에  싣고 하도리로 향했다. 단골집 중 한 곳인 별방촌이 목적지다. 오늘은 직접 잦아서 먹을 수 없는 데 대한 복수의 의미로 회를 사 먹기로 한 것이다.



요즘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평소에 주던 해산물들 중 다량이 빠져 있었다. 낚시에 실패하고 돌아온 우리에게 이러시면 안 되는데~ ㅎㅎ 어쨌거나 기름진 참돔회, 광어회, 갈치회로 점심 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마당에 자라고 있는 녀석들을 살폈다. 농약이란 걸 아예 쓰지 않는 우리 집 농산물이다. 배나무에 열린 건 올해에도 새와 벌레들 차지가 될 것이다. 작년에 심은 무화과는 꽤 많이도 자라 열매가 풍성하다. 창고 안에는 단호박이 상당량 보였는데 아마 대부분 우리 차에 실려 보낼 거란 예감이 들었다.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가 탐스럽게 익어 바로 하나 따서 먹을까 싶었지만 보나 마나 냉장고 안엔 잘 익은 녀석들이 가득할 게 뻔했기에...





잠시 기절했던 것 같다. 이틀 동안 기껏 한 시간도 못 잤으니 피곤하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다. 완전 핵 꿀잠이었다. 기껏 두 시간 정도 잤던 것 같은데 피곤함이란 온 데 간데 없이 증발해버렸으니 말이다.

저녁 식사는 집에서 엄마 밥을 먹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주려고 메밀 이삭을 주워다 메밀묵까지 쑤어 놓으셨는데  어찌나 고소하고 맛나던지 지금까지 먹었던 메밀묵은 가짜였단 생각이 들었다. 메밀 맛집들 중 최애 하는 몇 곳이 있었는데 당장 엄마의 메밀묵이 맨 위에 랭크되고 말았다. 나는 집에 오면 자주 먹는 옥돔이지만 이번 휴가에 합류한 직장 동료는 우리 집 밥상에 정말 반해버렸다.



메밀묵도 메밀묵이지만 톳 무침은 어떻고? 지난봄 바닷가에서 뜯어온 톳이 이렇게 요리가 되어 상 위에 올려졌다. 완전 건강식 아닌가? 배불리 든든하게 저녁을 해결한 우리는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육지에 코스트코가 있다면 제주도엔 제스코가 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라 한라산 중턱을 향해 달리는 도로가 황홀경이다. 제주 전 지역에 태풍의 영향을 받은 구름이 잔뜩 끼었다. 한라산 주위에 깔린 구름이 산다락과 잘 어울려 보였다. 항상 보는 한라산은 언제 봐도 멋있다.



한라산과 구름이 만들어낸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며 한적한 도로를 달리자니 풍경에 푹 빠져 버렸다. 이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길 바랐지만 어차피 태양은 지는 거니까 이 순간순간에 만족해야 한다.



카트를 밀며 이런저런 식료품을 구입했는데 우리가 성산에서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제스코까지 간 이유는 바로 이 강냉이 때문이다. 이거 한 봉지면 엄마가 동네분들과 나눠 먹어도 한참을 먹을 수 있다는 어르신들의 요긴한 간식인 거다.



오전에 같이 낚시를 했던 남원의 지인께서 말굽버섯을 땄다며 사진을 보내줬다. 사진 말고 버섯을 달라고요! ㅎㅎ 사이즈가 어마 무시하다. 강원도에나 가야 있을 것 같은 대형 말굽버섯이 남원엔 지천이란다. 그래 봤자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띄는 거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제주에서의 첫날을 기념하기 위해 엄마의 냉장고에서 안주거리를 꺼내 21도짜리 한라산 소주 뚜껑을 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녹두빈대떡과 마트에서 사 온 돼지고기 통삼겹 그리고 다시 메밀묵이 첫날 술자리의 안주가 됐다. 이 꿀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요즘 표현으로 개피곤한 몸을 순식간에 녹초로 만들어준 한라산 소주. 그 덕분에 기절했고 다음날 아침 개운하게 기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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