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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l 27. 2021

3박 5일, 제주도 집에서 짧은 여름휴가 3일차

표선 바닷가에서 바비큐 그리고 꽝 된 야간한치 낚시

제주에서의 첫날밤은 적당한 음주 덕에 꿀잠을 잤다. 아침밥 대신 엄마가 제주에서 수확한 각종 곡물과 견과류를 갈아 만든 선식을 후르릅 마시고 집을 나섰다. 완전 강행군이다. 쉴 틈을 주지 않는 나의 스케줄에 몸이 고단할 법도 한데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려고들 한다. 제주를 제주스럽게 즐기려면 사람들이 별로 없는 멋진 곳으로 다녀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관광객들 다니는 곳엔 얼씬도 않는 편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가급적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려 한적한 곳만 찾아다녔다. 청정 제주였던 이곳도 이젠 코로나로 몸살을 겪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리꽃이 한창이다. 귤도 제법 커졌고 이제 몇 달 후면 노지 귤도 노랗게 익어갈 거다. 9월 하반기 정도 되면 새콤달콤한 청귤 맛도 볼 수 있다.



가끔 낚시하러 다니는 큰엉이다. 그런데 의외로 차가 별로 없다. 금호리조트는 새로 생긴 좋은 숙박지들이 많아 경쟁력에 있어 예전만 못하다. 큰엉 경승지라 불리는 이곳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주차장을 벗어나 산책로를 따라간다.



잘 꾸며진 산책로이지만 짧은 게 안타깝다. 혼자 낚시 다닐 땐 이 산책로를 걸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여럿이 오니 이런 기회도 생기는구나 싶었다. 연인끼리 오면 좋은 코스 같기도 하다.



중간에 이런 곳도 있다. 역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너무 웅장하다. 저 안에 벵에돔이 많이 들어있을 텐데...



큰엉의 명소다. 한반도 모양의~ 여기서 기념촬영을 많이 한다. 나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사진 몇 장 남겨왔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들 하니까.



먼바다를 배경으로 주변 사진을 몇 컷 담아봤다. 날이 궂은 덕에 그리 덥지 않은 제주의 여름이다. 구름이 없었다면 뙤약볕에 숨이 컥컥 막혔을 게 분명하다.






낚시를 갈까 생각했지만 시원한 날씨 덕에 바닷가 바비큐를 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어차피 낚시도 잘 안 되는데 멋진 추억 하나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서다. 가끔 제주도에 지인과 함께 올 때면 이렇게 바닷가에서 고기를 구워주곤 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그날의 추억이 생생하다고들 했다. 사실 그걸 알고 해주는 걸 알기는 할까 모르겠다. 정말 임팩트 있는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집엔 캠핑 장비가 준비되어 있고 차에도 항상 바비큐를 할 수 있을 정도는 항상 싣고 다니는 편이다.



제주도에 왔으니 제주맥주를 마셔줘야지? 전엔 본 적 없던 제주 거멍 에일이란 걸 팔길래 몇 캔 집어왔다. 난 맛을 못 봤는데 다들 맛있다고들 하는 거 보니 맛이 있긴 한가보다.



나는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하고, 현지인은 보말을 주우러 바다로 나갔다. 한주먹 정도면 라면에 넣고 끓일 정도는 나온다. 어차피 국물 낼 목적으로 넣는 거니까 많은 양도 필요 없다. 게다가 오늘의 주목적은 서울에서 공수해 온 1++ 한우 채끝 아닌가? 그것도 3kg나 되는 꽤 많은 양이다. 이걸 4명이 먹어야 하니 어지간한 먹성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무튼 한우로 배를 채워주기로 작정하고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마침 현지인은 정육 계통에 일가견이 있는 분으로서... 캠핑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식칼로 고기를 썬다. 숯불에 구워야 하니 최대한 가늘게... 프라이팬이 구우면 두껍게 잘라도 된다며... 하지만 내 경험상 두꺼우면 두꺼운 대로 굽는 방법이 다 있다.



바람이 꽤 강하게 불고 있었는데 오히려 화로에 산소 공급이 잘 되어 불이 적당하게 피어오르기 좋은 환경이었다. 멀리 바닷가를 보며 고기를 굽노라니 이런 운치가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채끝살에서 뿜어 나오는 향이 식욕을 불러왔다. 옆에 선 야자나무를 배경으로 채끝 한 컷.



무려 세 시간 동안 고기를 굽고, 담소를 나누고, 풍경을 감상하고, 추억을 쌓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현재를 누린 것이다. 태풍 덕에 시원해진 대기가 짜증 한 푼어치 없게 해 줬고, 습도 또한 높지 않아 진짜 피서온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여름휴가 한번 제대로 온 것 같다.



고기가 질려갈 때쯤 되자, 모두 칼칼한 맛의 라면이 당겼는지 만장일치로 라면을 추대했고 다시 숯불을 태워 보말을 삶은 후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숯불이라 물이 좀 늦게 끓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방법이 없는 고로...

물이 끓기 시작할 무렵 스프를 넣고 팔팔 끓인 후 남은 채끝 두 덩어리를 몽땅 털어 넣었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은 후 면을 넣고 삶는데 불이 약해 면이 익는 속도가 너무 더뎠다. 이러다 귀한 라면을 실패하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로...



마지막으로 삶은 보말을 면 위에 올리고 팔팔 끓였다.



들어는 봤나? 지구 상엔 없던 한우채끝보말라면이다. 멀리 표선 해비치가 보인다.





이렇게 먹고 나니 해가 질 무렵이 되고 있었다. 이젠 해창 때를 노려볼 시간이다. 벵순이들이 해창 때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낚시는 틀린 거다. 우린 각자 흩어져 집에서 낚시 장비를 챙겨 내가 즐겨 찾는 성산일출봉 아래 포인트로 향했다. 


그러나 해가 지도록 바늘에 물려 오는 녀석은 없었다. 벵에돔 낚시에서 한치 낚시로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옆에서는 에깅으로 한치도 잡고 무늬오징어도 낚아 올리는데 우린 팔운동만 실컷 하고 온 것 같다.

낚시꾼의 고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왕 시작한 한치 낚시인데 한 마리라도 잡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던 우리는 무려 밤 12시가 넘어서 제주시로 향했다.





도두항이다. 토요일 새벽인데 사람이 엄청 많다. 하지만 고기를 낚아 올리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역시 꽝인가 싶었다.



멀리 한치 낚싯배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과연 저들은 얼마나 잡아 올리고 있을까? 아무튼 잡히는 것도 없고 배는 고파서 편의점에서 사발면 하나씩 흡입한 후 다시 집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시간이 새벽 3시 정도 됐다. 엄청난 강행군이다. 노는 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걸 새삼 느낀 하루다.

이번 휴가는 그야말로 고된 휴가다. 휴가가 맞긴 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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