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유명 식당이 되는 게 두려워 소개하고 싶지 않았던 현지인 식당
예전에 상원가든을 다닐 때만 해도 <빗맞아도 30년> 시리즈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식당이 언제부터 영업해 왔는지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맛만 있으면 그만이었고 내가 맛집 관련하여 글을 쓰리라곤 생각지도 않았기에 사진조차 촬영하지 않았다. 상원가든은 제주도 모슬포의 진짜 현지인들만의 맛집이다. 인터넷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원가든은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고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어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갈 이유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중독성이 강렬한 곳이다.
정말 몰랐는데 이번에 가보니 'SINCE 1995'라는 표식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이 식당을 다닌 게 기껏 5년 정도 되었는데 꽤나 오래된 곳이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나빠 손가락으로 숫자를 헤아려 보니 26년 됐다. 아쉽지만 4년이 빠지니 30년 시리즈엔 넣을 수 없고...
낚시를 마치고 방문했는데 저녁 무렵이라 건물 뒤로 스러져가는 태양이 구름을 몰아가며 하늘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모처럼 식당 건물 사진 하나 남겨보자 싶었는데 의외로 잘 나왔다.
생갈비 18,000원
양념갈비 17,000원
흑돼지 오겹살 18,000원
가격이 좀 비싸다 싶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유는 바로~
1인분에 300g이다. 절대 비싼 게 아니라는. 그리고 고기 육질과 육즙 꽉 찬 갈빗살을 보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가고 없을 거다.
그런데 현관을 들어서다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상원가든은 워낙 오래되다 보니 건물 안이 온통 돼지 비린내 천지였는데 최근 리모델링을 해서 그런지 돼지 냄새도 나지 않고 좌식이었던 테이블도 입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금은 거북한 냄새였는데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여튼 전체적으로 너무 말끔해졌다. 적응이 안 될 정도로... 반찬이 차려졌는데 자세히 보니 대부분이 식당이 위치한 대정읍에서 출하된 농산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은 양파, 마늘, 감자, 무, 양배추를 많이 키운다. 나도 꽤나 서울로 올려대곤 했었으니 그 품질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함께 방문한 분이 다름 아닌 왕년의 육가공 전문가였기에 내심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했다. 칼질 좀 하시던 분이라 육질을 보면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의 생고기인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우와! 정말 괜찮은데요. 괜찮은 수준이 아닙니다.
야~ 이거, 이런 수준의 신선도는 만나기 어려운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엄청난 만족을 느꼈다. 내가 식당 주인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계산도 그분이 하셨지만 소개하고도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걸 새삼...
어떤 젓갈로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혹시 각재기 아닐까? 아무튼 여기에 고기 찍어 먹으니 고기 맛이 배가했다. 역시 돼지고기는 젓갈에 찍어 먹는 게 갑중 갑인 것 같다. 물론 고기의 참맛을 느끼려면 소금만 찍어 먹는 게 좋긴 하다.
드디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문제는 고기가 익기도 전에 술이 먼저 들어가는 거다. 술꾼은 안주가 좋아서 술을 마신다 하지만 이런 걸 보면 술꾼은 그냥 술이 좋은 거다.
금으로 만든 대파를 이렇게 풍족하게 주시다니. 강남에선 파 한 단에 거의 6,000원 정도 하던데... 요즘 파 값 무서워서 요리에 파를 넣지 못하는 내 심정을 알고는 계시려나.
생갈비가 구워지는 과정을 담아 봤다. 이 영롱한 생갈비의 자태를 보라. 이 어찌 군침이 돌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침이 고이는 걸 보면 뇌는 며칠 전 기억을 잊지 못하는 거다.
역시 이 맛이지! 짭조름한 간이 밴 갈빗살이 아주 맛있다. 질기지도 않고 육즙 가득 머금은 이 맛을 어찌 설명하리오. 지금까지 먹어본 생갈비는 갈비가 아니었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맛보지 않은 자 말을 말라고 장담할 수 있다.
대정읍에서 출하된 양파는 단단하고 달다. 얼마나 맛있는지 회하고도 너무 잘 어울린다. 즐겨 찾는 해녀의 집에 가면 깍둑썰기 된 양파를 내어 주는데 소라회하고 찰떡궁합이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식당이 서울 집 근처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에도 제주돼지로 유명한 식당들이 많지만 가성비는 죽었다 깨어나도 상원가든을 따라갈 수 없다. 둘이서 겨우 2인분밖에 못 먹고 왔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말이다.
역시 한 조각은 끝까지 남는 이상한 법칙이 있다.
낚시하러 갈 게 아니라면 성산 집에서 제주 반대쪽 끝에 있는 모슬포까지 갈 일이 없기에 자주 찾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집 근처에도 꽤 쓸만한 식당이 있긴 한데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잘 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명함 공개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 방문 땐 공개할까 생각했지만 그것만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글도 인터넷을 통해 볼 사람들이라면 인터넷에 검색하는 정도의 노력은 가뿐히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소개한 식당에 가던 말던 자유지만 내 브런치 계정은 광고와 무관한데 색안경 쓰고 보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으니 웃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