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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n 03. 2021

16.사직동 숙성한우, 사랑의 고기

아직 여기보다 잘하는 곳은 모르겠다

처음 이 식당을 가본 후로 숙성한우의 묘한 매력을 알게 됐다. 퇴근 시간대 강 건너 종로의 사직동까지 가는 길은 만만한 길이 아니다. 그러나 절대 멀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절정의 위치에 오른 숙성한우의 맛이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기 때문이다.



길이 막혀 다른 일행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예약된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이런 웰컴 드링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와인이었을까? 맛도 모르고 다 마셔버린 것 같다.  안에 들어있던 포도는 물어볼 것도 없이 안주가 되어버렸을까? 달달한 맛에 그저 '괜찮군~' 소리만 내었을 뿐이다.



늦게 온 죄로 뭘 주문했는지조차 모르고 맛을 봐야만 했던 그날, 나는 엄청난 두께에 묘한 마블링 띠를 품은 세 덩어리의 한우를 만나고 말았다.

오호라~ 이거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데?



정갈하게 차려진 1인용 접시다. 이거 완전 인스타용으로 사진도 잘 나왔다. 다 먹으면 바로 리필해주는 것도 감사한 일인데 더욱 고마운 건 직접 고기를 구워 준다는 거다. 안 그래도 고기 굽기 귀찮은 요즘 누가 구워주는 식당엘 가면 어찌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것도 이렇게 맛난 고기를 말이다.



땡앤장에서 회식 자리로 자주 찾는다더니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해 보였다. 달랑 고기 몇 덩어리만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맛으로 인정하고 말았다. 육즙이 풍부한 숙성한우의 식감 역시 부드럽고 촉촉했다. 고소한 한우의 육즙이 입안에서 맴도는 것만 같았다.



이 영롱한 컬러를 보라

아니 맛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이런 소고기를 잘못 구워 너무 태우거나 해서 육즙이라도 날아갔다면 엄청 후회했을 것 같다. 말 그대로 기똥차다는 말밖에 뭐가 있으랴? 강남에 자주 가는 한우식당 몇 곳과 비교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야말로 격이 다름을 느꼈다. 하필이면 왜 멀리 사직동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하면 표현이 될까? 가깝기만 하면 아주 자주는 아니더라도 심심치 않게 방문할 것 같은데 말이다.



육즙을 음미하며 잘근잘근 고기를 씹고 있으니 두 번째 선수가 등장했다. 사진으로 보면 작아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번에도 역시 3센티가 훨씬 넘는 엄청난 두께다. 이건 등심이었을까? 먹는데 정신이 팔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씹어대기 시작했다. 고기가 익는 속도가 더디게 느껴졌다.

빨리 익어서 내 입 속으로 들어오란 맛이얏!



세 번째 타자가 등판한 순간 난 숨이 막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체 이건 뭐지? 지금까지 어떤 한우 전문점에 가서도 이런 비주얼은 만난 적이 없었다.

미친 사이즈다! 이걸로 한 대 맞으면 죽을 지도 몰라~

내 주먹 두 개 합친 것 만한 사이즈의 숙성한우. 이건 대체 어느 부위일까? 한우의 신세계를 만난 것 같다. 역시 O앤장이 회식자리로 다니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젠 눈치 볼 것도 없었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니까.



한우된장밥을 먹어보니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식당 차려도 되겠지 싶었다. 한우만 가지고 배를 채우는 건 주머니 사정도 있곤 하니 어느 정도 마음을 다스려야 하지만 이 한우된장밥 덕분에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푸짐하게 들어간 한우 조각들이 지금까지 구워졌던 다양한 부위의 한우들에 비할 바 없지만 나도 모르게 허겁지겁 마신 소주 때문에 피로가 쌓였을 위장을 다스려 주었다.





새로운 맛집을 찾아가면 '이 집 죽인다'는 소리를 연발하곤 했지만 이번만큼은 차원의 다름을 확실히 느꼈다. 친절한 사장님이나 직원분들도 매너 좋고 식사하는 내내 편안한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덕에 모처럼의 회식 자리를 즐겁게 마쳤던 것 같다.

그나저나 언제 또 가나... 회식 또 안 하나 모르겠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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