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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Oct 04. 2022

85.기장 황금수산에서 대게라면

난 아직도 기장하면 미역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십 년 전쯤 기장이란 곳을 지나갈 때 첫 느낌이 지금도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닷가 공터에는 시커먼 미역이 어마어마하게 널려 있었는데 창문을 내리면 시큼하게 말라가는 미역의 독특한 냄새가 정신을 혼미하게 했었다. 요즘 기장에선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부산의 도심이 확장되자 주거지가 밀리고 밀려 일광신도시까지 들어섰고 바닷가 공터엔 대형 카페와 펜션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기장=미역'의 공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기장이 대게로 유명한 건 모르고 있었다. 윗동네 사람들에겐 '대게=영덕'의 개념이 자리 잡혀 있고 '기장=미역'이란 공식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장으로 대게를 먹으러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땐 그냥 바닷가에 대게 전문점이 있나 보다 하며 따라갔었지만 막상 가서 보니 바닷가엔 온통 대게 전문점들 뿐이었다.



수족관 속 싱싱한 대게를 구경하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를 향해 기어 왔다. 어쩌면 대게가 나를 구경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기본찬이 차려졌다. 여느 횟집과 다를 게 없는 메뉴들이다. 여기에 좀 신박한 게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지만 대게를 먹으러 왔으니 이런 데 눈길을 줄 이유는 없다.



대게 전문점이지만 이렇게 약간의 회를 준다. 애피타이저로 회를 주는 건가?



십여 분이 지나자 드디어 주문한 대게가 상 위에 올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 침을 고이게 했다. 역시 대게는 수율이라던데 여기 대게는 어떨까 싶었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이다. 삐져나온 속살을 보니 살이 여간 빽빽한 게 아닌가 싶다. 일단 대게 전문점이니 찌는 수준이야 따질 것도 없을 거다. 대게는 얼마나 제대로 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른 법이니까.



무슨 대게 촬영하러 온 것도 아닌데 이리저리 접시를 돌려가며 사진을 찍어댔다. 너무 정성을 들여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의 취미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맛집 다니며 글 쓰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소설만 쓰라는 법은 없지 않나?



역시 집게발 안의 살은 아주 찰지다. 그 맛이 사진으로 전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 또 먹고 싶다.

사진을 찍으며 뜯으며 먹으며 마시며 아주 정신이 없다. 아마 삼십 분 정도 대게 살을 먹는 동안 말을 잃었거나 술잔 비우느라 정신을 쏙 빼놨던 것 같다. 게살 빼먹듯이 말이다.



대게 볶음밥. 이것도 정말 별미인데...



진짜 별미는 바로 대게라면이더라. 꽃게라면만 해도 그 시원한 맛에 감동이 주룩주룩인데...

아무튼 라면이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건가?

냉동 꽃게라도 사다가 집에서 꽃게라면 끓여 이 맛과 비교해 봐야겠다. 시원한 국물을 내는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오뎅국에도 꽃게 한 덩어리 넣는 순간 차원이 달라지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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