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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l 08. 2021

37.돼지고기를 아트로 승화시킨 신논현역 도호

먹어는 봤나? 돼지고기 스테이크!

이 식당을 알게 된 건 많고 많은 푸드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이자 유명 호텔에서 관련 업무팀을 이끌고 있는 사촌 덕분이다. 나야 뭐 워낙 아는 맛집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인지라 딱히 대단할 것 없는 식당은 건너뛰는데 여긴 정말 첫 방문 때부터 반해서 가끔 찾는 곳이 되었다. 특히 고기 굽는 걸, 동행한 사람들에게 고기 구워주는 걸 좋아하는 내가 고기 굽는 게 지겨울 때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저 고기 구워주는 집이라면 대표적인 프랜차이즈로 하남돼지집도 있고 부산에 고굽납(고기 굽는 남자:조만간 소개할 계획이다)도 아주 괜찮은 식당들이지만 이곳 도호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컬러를 가진 매우 독특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수준 있는 셰프가 돼지고기를 굽는다면 어떤 식으로 나올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면 바로 딱 도호가 그 집이라고 할 수 있다.



간판이 매우 심플하다. 신논현역 이면도로에 자리 잡은 도호는 먹자골목의 아주 붐벼대는 곳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곳이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엔 우연히 지나치다 발견하게 되는 그런 맛집이 아니다. 고기 궈 먹으러 갈 생각으로 여기 들어가면 바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무리 봐도 돼지고기 구워 먹을 분위기와는 많이 동떨어진 인테리어 때문이다. 오히려 그 때문인지 나름 격을 찾아 깔끔한 고깃집을 찾는 여성이라면 매우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금까지 내가 데려간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비슷한 평이 나온 걸 보면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가격인데, 놀라지 마시라.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비싸다고 할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만, 알코올 성 치매가 와서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수저 등을 놓을 수 있게 제공되는 종이에 <도호>라고 크게 적혀 있다. 디자인적 요소가 매력적이다. 한동안 디자인 회사를 운영해와서 그럴까? 이런 걸 보면 좀 더 호감이 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처음에 가면 대체 이건 뭐하는 수작이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말이다. 군대 가면 고체연료를 쓰곤 한다. 요즘엔 모르겠지만. 나야 뭐 산에서 많이 써왔기 때문에 익숙했던 건데 요즘엔 식당에서 약한 열기를 운용하려 고체연료를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걸로 고기를 굽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게 정상 아닌가? 대체 이걸로 무슨 고기를 굽느냔 말이다.



불판이 고체연료 위에 올려졌으니 의심은 더욱 커지고 말았다. 이건 언제까지나 처음 갔을 때 느낌을 기재한 것이다. 그 후로는 전혀 의심할 일이 없었으니까.



포커스가 날아갔는데 야채는 소스가 드레싱 되어 집어 먹을 수 있게 했다. 쌈을 싸 먹는 따위의 행위는 있을 수 없다. 고기 한 점 야채 위에 올려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면 된다. 얼마나 깔끔하고 좋은지 손에 뭐 묻히고 먹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고맙기 그지없다.



드디어 고깃덩어리가 나왔다. 체크무늬가 새겨진 목살은 완전히 익은 상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육즙이 그대로 배어 나온 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초벌구이 된 걸 약한 불어 익혀서 먹는 걸까? 역시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 젓갈이 위에 올려져 있고, 느끼할 것 같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마요네즈 베이스의 소스도 있다. 고기가 올려진 도마도 일반 식당과는 품위가 다른 것도 사실이다.



이게 뭐냐 하면, 개인 플레이트다. 당연히 파채 등 야채는 무한리필이다. 파채의 수준은 이 자체만으로도 요리라 할 수 있다. 나처럼 파채 만드는 데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맛을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고체연료 위에 올려진 돌판 위에서 온기를 유지하는 목살 덩어리들은 언제라도 입 속으로 투입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따뜻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동할 일 아닌가? 너무 타거나 너무 말라 육즙도 빠져버린 목살은 그저 뻑뻑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니까.

누가 뭐라 해도, 뭐니 뭐니 해도... 돼지 목살은 육즙이다.



느끼할 것 같지만 요하게 잘 어울리는 이 환상궁합. 먹어보면 안다.

다음 회식은 이곳에서 해야겠다. 하여튼 이 맛집 소개하는 칼럼을 쓰기 시작한 후로 외식도 잦고 술자리도 끊이지 않으니 큰일이다.

어제는 재방문한 횟집에서 지인을 만나고 말았으니... 코로나로 4인 이상 집합 금지인데, 절대로 약속한 게 아니었다는 점 다시 강조한다. 아무튼 그 양반 하고는 일산에서도 우연히 만나고 했던 걸 보면 맛집 탐색 기능이 너무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또 어디선가 맛집 돌아다니다 만날 일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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