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사진 한 장 올리자 혀에 침이 도는 걸 보면 나의 뇌도 꽤 쓸 만한 것 같긴 하다. 정말 기대 같은 건 아예 없이 찾은 곳이고, 우연히 찾은 맛집인데 일부러 가지 않으면 다시 갈 일이 거의 없을 곳인 게 너무 안타깝다.
수궁회관은 군산에서 새만금을 지나 고창까지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영광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라이딩 코스에 만난 식당이다. 때마침 점심 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었기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만나면 끼니를 때울 생각이었는데 운이 좋았던 건지 이곳을 만나게 된 것이다. 원래는 굴밥 정식을 먹고 싶었는데 굴 철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바지락비빔밥을 추천받았다. 주말이라 그랬을까, 식당 안에는 다른 테이블 하나만 차 있었고 벌건 대낮부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찌나 부럽던지... ㅎㅎ
굴밥정식이라고 저렇게 크게 걸려 있었는데 바지락정식이라니. 안타까웠지만 따지지 않고 먹기로 했다. 어차피 갈 길도 멀고 하니 배가 든든해야 페달도 굴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저녁엔 영광 가서 영광굴비 정식을 먹을 계획이기도 했기에 한 끼 정도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 미덕을...
그런데 테이블 위에 상이 차려지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진으로 보면 그냥 풀떼기 같지만 이거 완전 대찬 음식들이 펼쳐졌다. 누가 시골 아니랄까 봐 양도 푸짐하고 가짓수도 많다. 바지락비빔밥에는 눈도 가지 않았다. 말린 생선이며, 젓갈 등이 완전 어느 한정식 전문점에 가도 이렇게 풍성하고 싱싱한 느낌을 주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냥 건강한 음식들이었다. 초*마을에 가서 한아름 들고 나와 상을 차린다 할지라도 이 정도 수준은 어려울 것 같다.
쪽파 위에 다소곳이 올려진 새싹채소가 싱그러움에 싱그러움을 더했다. 여길 방문했을 때가 봄이어서 그랬을까? 그 아래 깔린 바지락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처음엔 가늠할 수 없었지만 밥을 비비면서 바지락 양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개를 잘못 쓰거나 해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뻘이나 모래가 많이 씹히고 심지어는 악취가 나기도 한다. 모르긴 해도 전문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식당이라면 식재료의 검수부터 철저해야 할 거다. 이 식당이 바로 그런 곳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들은 조개 살에서 씹히는 이물감 때문에 망설이기도 하는 것 같던데, 난 미련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다지 괴념치 않는 편이긴 하다.
사실 바지락비빔밥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녀석이었다. 생선 종류는 알 수 없었지만(물어볼 생각도 못 했음) 바싹 건조된 이 녀석은 주메뉴인 바지락비빔밥의 위상을 가리게 했다. 어촌스럽고 시골스러움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어떤 식당에 가서도 이런 참된 반찬을 본 기억이 없어서다. 조금은 투박해 보이지만 그냥 딱 시골의 비주얼인 것이다. 바삭바삭하고 고소하고 씹는 즐거움도 배가됐다.
누가 봄 아니랄까 봐 아주 매콤 새콤하고 봄의 풍미가 잔뜩 느껴지는 풀떼기가 애피타이저 급이다. 식전에 이걸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고창의 봄이 내 입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라이딩하느라 힘들어서 배가 고프거나 했던 건 아니다. ^^
식초 향이 강한 초고추장 베이스의 상큼한 해초무침은 배가 불러도 한 숟가락 더 먹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었고...
어떤 류의 젓갈인지는 몰라도 근처에 젓갈로 유명한 곳이 워낙 많으니 젓갈이 상차림에서 빠질 리야 없을 거다. 예전 사진들 중 부안의 유명한 젓갈정식 전문점 사진이 있을 텐데...
이렇게 비벼 놓으니 정말 맛깔스럽지 아니한가? 비주얼뿐만 아니다. 속이 꽉 찬 조개 살과 버무려진 야채가 입 속에서 갖은 풍미를 자아낸다. 이걸 나의 봄 나들이 코스 안에 슬쩍 밀어 넣긴 했는데 매년 봄만 되면 왜 그렇게 먹을 것이 많은지 나들이가 하루 이틀 내 끝날 일이 아닌 상황이다.
비포 앤 애프터
아주 신나게 게걸스럽게 먹은 티가 난다. 이 식당이 우리 집 앞에 있으면 좋겠는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