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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부엌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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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ug 27. 2021

사무실로 식사 초대를 했다 2

먹을 복이 있는 사람이 있다

전날 사무실로 손님을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하고 바로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 집에 가서 후다닥 일을 보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 어릴 땐 퇴근 후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서 회에다 소주 한잔 하고 새벽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와 출근하는 센스를 발휘하던 난데... 이 정도 스케줄은 넉넉하기 그지없었다. 코로나 여파로 제주도 역시 4단계가 발효된 데다 태풍 때문에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려 관광객이 많이 뜸해진 제주행 비행기는 차고 넘쳤다. 왕복 3만 원도 채 들지 않았으니 서울에서 택시 두어 번 탄 것만 못한 가격이었다.



제주로 가는 내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는데 제주 상공은 비교적 구름이 많이 걷힌 상황이었다. 여차저차 일을 보고 성산 집으로 갔더니 내 방에 있던 난에 꽃이 피어 있었다. 역시 난은 사랑과 정성이 있어야 꽃을 피우는 것 같다.



집에서 맥주 한 잔 마시고 기절했다가 새벽 6시에 다시 차를 몰고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새털구름이 하늘을 촘촘히 메우고 있었다.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는데 다시 태풍 영향권에 들 거란 느낌이 들었다.



초스피드로 제주도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티를 내려고 공항에서 사진 한 장 촬영해 봤다. 왠지 엽서 같은 느낌의 사진이다. 일찍 움직여서 그랬을까? 면세점에 들러 이것저것 구입하고 다시 구름을 뚫고 서울로 돌아왔다. 11시에 사무실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어 서둘러야만 했다. 그리하여 사무실 복귀한 시간이 10시 50분. 9호선을 타고 강남까지 정말 빨리도 왔다.




사무실로 오는 길, 점심 대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어떤 메뉴를 준비할까 살짝 고민을 했더니 냉장고에 가득인 열무김치 생각이 났다. 여름엔 열무비빔밥 만한 게 흔치 않지 싶어 그걸로 결정을 했다.

미팅을 마치고 손님 한 분이 급하게 가평으로 돌아가셔야 한다고 하셨는데 마침 낚시를 다녀왔다며 포를 떠 둔 회를 주고 가시겠다는 행복한 소식을 주셨다. 회 잘 뜨지 않느냐며... 오래 알고 지낸 분이라 나에 대해 너무 잘 아시는 분이다. 아무튼 이게 웬 떡인가? 원래 계획했던 열무비빔밥은 급선회하여 회덮밥으로 변경된 것이다. 돌아가신다는 손님을 따라 차 트렁크 아이스박스에 곤히 실려 있던 회 두 덩이를 얻어 들었다. 한 덩이는 참돔, 한 덩이는 얼음돔이었다. 양이 너무 많아 두 녀석을 두고 잠시 선택의 고민에 빠졌는데 결국 참돔에 손이 가고 말았다. 아무래도 익숙한 참돔이 훨씬 나을 거란 생각이었다.



차갑게 보온이 된 회는 갓 잡은 것보다 맛깔스럽게 선도가 유지되어 있었다. 왜 빨리 돌아가야만 한다고 하셨는지 알 것도 같았다.



마침 사무실에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회칼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아주 기가 막히게 칼이 드는 걸 확인하며 얇게 회를 떠서 접시에 가득 담았다. 회덮밥엔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오이와 마늘 아닌가? 냉장고에 남아있던 라오스 오이 2개를 잘게 자르고 단양마늘을 짓이겨 준비해 두고 제주에서 공수해 둔 상추를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잘랐다.



오늘은 내가 없어서 다른 직원이 여주에서 공수한 100% 현미로 밥을 지어 두었는데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져 있었다. 밥 짓는 실력은 나보다 훨씬 나은 듯하다.



현미밥 위에 적당량의 참돔을 얹은 후 사진을 촬영했다. 참돔을 자르느라 손에 온통 기름이어서 세제로 손을 닦아야만 했다. 냉면 그릇이라 아쉽지만 어쩌겠나? 집도 아닌데 그릇을 쟁여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위에 상추, 다진 마늘, 오이를 담뿍 넣었다.



뜨거운 제주 볕에서 빨갛게 익힌 청양고추가 엄청나게 맵고 달다. 청양고추가 요만큼이면 기가 막힌 맛의 조화를 부릴 게 분명하다.



참깨를 뿌리고, 참기름을 붓고,



마지막으로 초고추장을 적당량 부었다. 이제 먹기만 하면 되는 상태가 된 거다. 이 얼마나 간단한 요린가 말이다. 회만 있으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초간단 메뉴다. 이렇게 만드는 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햇반 데워 먹는 것보다 간단하다.



점심시간이면 밥상이 되어버리는 회의용 테이블 위에 올리고 수직 샷을 촬영했다. 영롱한 색의 조화다.



이렇게 하여 기가 막히게 맛난 회덮밥을 초간단 모드로 해결했다.

손님의 극찬이 이어졌는데 어느 횟집 가도 이렇게 맛있는 회덮밥을 먹기는 쉽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만든 건데...

일주일에 한 번은 식사하러 오시겠다는데 어차피 수저 한 세트 더 올리면 될 일이니 아무런 부담이 없다. 나는 대량 생산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이니까!

참고로 난 취사병 출신은 아니다. ㅎㅎ






그나저나 얼음돔이 한 덩이 남았는데 이걸 어쩌나? 오늘도 먹긴 좀 그렇고. 오늘은 저번에 먹고 남은 한우 넣고 사골 만둣국 끓일 생각인데...

이 글 쓰는 건 20분 정도 걸렸다. 밥 하는 게 훨씬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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