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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ug 10. 2021

말복엔 토종닭백숙

사무실에서 밥 해먹기 좋은 날

오늘이 말복이란 걸 안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무실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 이래, 전국에서 팔도 특산물을 조달해서 맛의 향연을 즐기는 요즘, 말복엔 말복 다운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근길에 24시간 운영되는 마트에 들러 거짓말 조금 보태 타조 만한 토종닭 한 마리와 전복 두 팩 그리고 녹두, 찹쌀을 샀다.

음식을 할 땐 언제나 정성을 들이는 편이지만 기껏 이십 분 정도면 뭐든 뚝딱 만드는 편인데 오늘의 요리엔 신경을 바짝 쓰기로 했다. 그래 봐야 십 분 정도 더 투자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다른 요리에 비해 과정이 복잡하여 탕비실을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다.



사무실에 있는 솥이 꽤 큰 편인데도 불구하고 닭을 쑤셔 넣을 수가 없어서 다리 두 개를 잘라야만 했다. 삼십 분 정도 닭을 삶아 노란 기름이 둥둥 뜬 물을 몽땅 쏟아내 버리고 다시 새 물을 넣어 한 시간을 삶았다.



두 번째 삶을 땐, 노린내도 안 나는 맛있는 육질을 위해 몇 가지 비장의 무기를 사용했다. 제주에서 보내준 참다래 넝쿨과 말린 봄쑥, 통마늘 그리고 역시 껍질만 씻어 통째로 제주 양파를 넣었다. 저번에 보내준 두릅 가지는 곰팡이가 피어 버리고 말았다. 덜 말린 탓이다. 이런 게 왜 사무실에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요리를 시작한 후 사무실에 800리터 냉장고를 하나 더 들여놓은 것만 봐도 말이 필요 없다. 지금은 냉장고, 냉동실 몽땅 꽉 차 버린 상태니까.



다시 팔팔 끓인다. 앞으로 장장 한 시간 하고도 삼십 분은 더 끓일 예정.



녹두가 수입산이라 아쉽지만 마트에 파는 게 저것뿐이라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전복과 녹두, 찹쌀을 준비해야 한다. 전복은 이미 손질이 되어 나온 건지 깨끗해서 씻어서 넣기만 하면 된다. 전복 주둥이는 각자 알아서 먹으면서 해결하는 걸로.



카톡에 요리 과정을 올려 두었더니 자기도 백숙이나 끓여야겠다는 분이 있었고 마침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그새 백숙 요리를 시작하며 파를 넣은 사진이 보였다. 그럼 나도 질 수 없지 싶어 냉장고에 미리 손질해둔 대파 한 뭉텅이를 집어 냄비 안에 투척했다. 비주얼이 썩 괜찮아 보인다.



녹두와 찹쌀은 뜨거운 물을 부어 초스피드로 불린다. 11시부터 삼십 분 정도 불려 식사 삼십 분 전에 클라이맥스를 올린다.



육수가 졸아 삼다수를 넣고 더 끓인다.



마지막 핏치를 올릴 시간. 삶은 닭을 꺼낸 후 미리 불려둔 녹두 쌀을 솥 안에 투하.



전복도 솥에 넣어 삶아주시고~



손으로 일일이 찢은 닭의 살코기를 몽땅 투척한다.



녹두가 눌어붙지 않게 차분히 바닥을 휘저으며 녹두와 찹쌀을 익혀간다.



이렇게 하여 각자의 몫을 그릇에 담아내어 준다. 오늘의 요리는 여기까지. 설거지는 내 몫이 아니라 요리의 연장선이 끊어졌지만 이런 한 그릇의 요리를 만들어 놓고 다들 이 맛을 즐기는 걸 보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정말 맛이 있으니 반박할 여지가 없음이다.



말복용 백숙이니 백숙과 딱 어울리는 반찬들을 담아냈다. 봄에 제주에서 담가 보내준 곰취장아찌, 적양파장아찌, 마늘 고추장아찌, 무절임을 올렸고, 지난달 여수에서 공수된 돌산갓김치가 오늘의 반찬이다.



이 한 술의 토종닭백숙을 위해 오늘 무려 장장 세 시간을 끓였다. 내년 말복엔 뭘 해 먹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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