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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Sep 02. 2021

이곳은 회사인가, 식당인가? 일곱 번째 이야기

제주에서 공수된 미니족발로 돼지족탕을 끓이다

이젠 사무실에서 별 걸 다 만들어 먹는다. 요즘은 밖에 나가도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 어제만 해도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간단하게 소주 한잔 걸치려 역삼동 일대를 누비고 다녔는데 역시 당기는 음식이 없었다. 식탐이 별로 없는 편이라 더 심한 것 같다.

이번 요리는 장장 이틀에 걸쳐 조리했다. 처음 해보는 음식이지만 어차피 삶는 건 아무것도 아닌 과정이라 별로 고민되는 건 없었다. 그런데 내가 돼지족탕이란 걸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돼지족탕이라는 요리를 들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별일이다.



제주도에서 미니족발과 껍데기가 무더기로 날아왔다. 냉동실 안에 쑤셔 넣으니 양이 만만치 않다. 열심히 비운다고 비웠는데 역시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에 이런 가정용 대형 냉장고가 있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코로나 때문에 밥을 해서 먹기 시작한 후로 냉장고를 두 개나 구입했는데 두 개 전부 꽉 차 있다는 건 더 웃긴 일이다.



미니족발은 한 팩에 4개다. 작은 발 두 개, 큰 발 두 개인 걸 보니 돼지 한 마리의 다리가 담겨온 듯하다. 가격표를 보니 발 하나에 3천 원 꼴인 거다. 너무 싼 거 아닌가?



돼지고기를 삶는 건 수육 만드는 것과 딱히 다를 게 없을 것이니 항상 쓰는 참다래 넝쿨을 투척했다. 그런데 바닥에 남아있던 나무 부스러기가 몽땅 투입되고 말았다. ㅎㅎ

어차피 한 번 끓인 후 물을 버리고 재탕할 것이라 문제 될 건 없다.



단양에서 공수된 통마늘 한 뿌리 쪼개 던져 넣고 팔팔 끓이기 시작했다. 도중에 구수한 맛이 날까 싶어 여름에 강원도에서 공수했던 옥수수를 삶으며 모아 둔 옥수수수염도 한 뭉치 던져 넣었다. 그리하여 무려 한 시간 하고도 삼십 분을 끓였다.



옥수수수염이 덕지덕지 붙은 미니족발을 도마 위에 건져 두고 족발 끓인 물을 몽땅 버렸다. 족발 껍질을 보니 아직 푹 익으려면 한참 멀었다. 식당에서 사 먹을 땐 몰랐지만 족발을 삶은 데 걸리는 시간이 상당할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인덕션으로 조리하는 거라 화력이 약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삶은 족발을 넣고 물을 가득 채운 후 다시 삶기 시작했다. 냄비가 작아 돼지 발가락이 자꾸 수면 위로 튀어나오는데 어떻게 테트리스 전법을 써도 방법이 없었다.



한 시간 정도 끓여 족발을 건져 보니 꽤나 물렁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순 없어 퇴근할 때까지 끓여 보기로 했다. 아주 살이 녹아내릴 때까지 삶을 생각이다.






돼지족탕 끓이기 시작한 지 이틀쨰 되는 날이다. 출근하자마자 냄비를 보니 기름이 굳어 딱딱해져 있었다.

수면 위에 보니 돼지기름이 한가득이다. 거의 1 센티는 되는 것 같았다. 국자로 모두 떠낸 후에 다음 순서가 진행되어야 했다.

기름 건지기 전후 사진이 없다. 어쨌든 기름을 다 건져내고 다시 팔팔 끓이기 시작했다. 오늘 점심엔 이걸 먹어야 하니까 말이다. 마침 쿠팡 프레시로 주문해둔 생강도 도착해 있었다. 잘생긴 생강을 하나 꺼내 얇게 송송 썰어 넣었다.



삼십 분 정도 삶은 후 족발을 들어 봤다. 흐물흐물하게 흘러내리는 껍데기가 야들야들하다. 입에 침이 고였다. 쫀득한 콜라겐이 육수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도마 위에 건더기를 몽땅 건져내고 수직 샷 한 컷 촬영해 봤다. 물에 불어 양이 상당하다. 조금 식힌 후에 뼈와 살을 분리해야 한다.



체에 잔여물을 걸러낸 후 다시 냄비에 쏟아부었다. 국물이 뽀얗다. 완전 사골 국물 같다.



발라낸 뼈만 해도 엄청난 양이다. 비닐장갑을 끼고 분해작업을 했는데 지금도 엄지손가락이 얼얼하다. 내 손가락도 익어버린 것 같다.



발라낸 살이 이 정도인데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상황이다. 이건 완전 술안주인데. ㅎㅎ



이번엔 삼다수를 가득 붓고 끓인다. 이제 본격 요리가 시작된 거다. 커피도 그렇지만 모든 요리는 물맛이 중요하다.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생수로 라면을 끓여보면 차이를 안다.



삼십 분 정도 끓인 후에 보니 또 기름이 한가득이다. 어쩜 끓여도 끓여도 한도 끝도 없이 기름이 나오는 걸까? 누가 이기나 보자 싶은 각오로 기름을 떠내고 다시 삶아댄다.



그렇게 두 차례 기름을 건져 내니 뽀얀 육수만 남았다. 돼지기름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잘 삶아졌나 궁금해서 고깃덩어리를 건져내 보니 몽땅 풀어져 야들야들했다. 잘게 찢어놓은 껍데기를 하나 건져 맛을 보니 식감이 예술이다. 흐느적흐느적. ㅎㅎ 치아가 불편한 노인도 쉽게 드실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내가 하려던 게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이제 마지막 단계다. 준비된 무가 없어 근처 마트에서 하나 사다 토막을 내서 투척하고 파를 송송 썰어 준비해 두었다.



무는 완전히 익어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냄비 주변으로 돼지기름 잔여분이 끼어 있었다. 담백한 육수의 맛을 지켜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국자질을~



이건 나의 비장의 무기, 다진 양념이다. 청양 고춧가루에 다진 마늘을 넣고 간장 조금, 후추 조금 넣은 후 베이스 오일로 아보카도 오일을 사용했다. 초록마을에서 사 온 비싼 오일인데 여기다 쓸 줄은 몰랐다. 샐러드를 안 해 먹으니 이런 용도로라도 쓰는 수밖에. 생각난 김에 다음엔 샐러드나 해봐야겠다.



회의용 테이블에 돼지족탕을 올리고 마지막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이젠 우리 회사 누구도 내가 이렇게 요리하면서 사진 찍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진들은 내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올라가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엔 브런치에 연재 아닌 연재를 시작한 <이곳은 회사인가, 식당인가?> 시리즈를 다들 반기는 분위기다.



나의 비장의 무기 다진 양념, 이건 오늘 완전 대박 아이템이었다. 이렇게까지 맛있을 줄이야. ^^



흠냥~ 어찌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돼지 비린내 1도 안 나는 담백한 돼지족탕. 이거 어디 가서 장사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100% 현미밥만 먹는다. 도정해서 가져온 현미밥이 얼마나 찰지고 맛있는지 모른다. 돼지족탕은 빨리 밥을 말아먹으라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약간 걸쭉한 느낌의 국물에 찰진 현미밥이 얼마나 멋진 궁합으로 작용할까?



짜잔! 절대 적은 양이 아니었다. 밥 먹고 이 글 쓰는 삼십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혀 꺼질 생각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당연히 바닥을 비웠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그것도 처음 만들어본 요리인 돼지족탕은 완전 성공적인 요리가 됐다. 장장 이틀 동안 조리된 이 요리는 오늘도 속 든든하게 만들어 주고 말았다. 너무 든든해서 탈이 됐지만... ^^






자주 해서 먹기엔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인 게 문제인데 다음에 이걸 또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들통을 사야만 한다. 작은 냄비에 이런 요리를 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다. 탕비실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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