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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Sep 09. 2021

이곳은 회사인가, 식당인가? 여덟 번째 이야기

영종도 어부에게서 꽃게를 공수하다

추석이 코앞이다. 꽃게도 지난해보다 빨리 시작된 모양이었다. 마침 영종도 어부를 지인으로 둔 직원이 일주일 전부터 조업 일정에 스케줄을 조정했다. 요즘 비가 자주 내려서 조업 일정과 우리 일정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소래포구 같은 데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꽃게지만 아무래도 좀 더 신선한 녀석들을 좀 더 저렴하게 사 올 생각이었던 거다. 마침 추석 선물로 꽃게 만한 게 없으니 적지 않은 양을 구입하기로 한 것이다. 강남 삼성동에서 영종도까지 다녀오는 길은 출퇴근 시간만 피하면 딱히 막힐 일이 없는데 하필 올림픽대로 공사 때문에 두 시간이 넘게 걸려 영종도에 도착하니 선착장에 조업을 마친 선장이 불평 없이 기다려 주었다고 한다.



이게 우리 물량이다. 20kg을 샀으니 적게 산 건 아닌 것 같다. 좀 더 넣었다는 어부의 현실감 있는 서비스 정신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택배를 보내려고 일부러 큰 스티로폼 박스를 몇 개 구입했는데 생각보다 박스가 큰 것 같긴 하다. 어쨌건 최대한 신선하게 보내야 했기에 아이스팩도 다량 준비하고 사무실에서 먹을 물량은 따로 빼 두었다.





간장게장을 만들 생각이었다. 꽃게를 재료로 뭘 만들어 먹을지 생각하니 퍼뜩 떠오른 게 간장게장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유명하다는 집들 다니면서 사 먹기만 해 봤지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는 거다. 난 맛의 기억을 더듬다 말고 인터넷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딱히 다를 게 없었다.



잡내를 잡는 덴 생강 만한 게 없다. 생강, 마늘, 대파, 청양고추, 양파를 미리 준비해놓은 뒤 솥에 간장 1리터를 털어 넣고 물을 1:1로 부었다. 맛술도 적당량 넣고 팔팔 끓인 후 준비해둔 야채들을 몽땅 투척했다. 식초도 한 숟가락 정도 넣어 잡내도 잡았다.

이젠 꽃게만 오면 된다. 다시 업무로 복귀해 꽃게를 기다린다. 두 근 반, 세 근 반...



사무실로 공수된 꽃게들은 비실비실해 보이더니 물이 닿자 파닥이기 시작했다. 아직 팔팔한 게 싱싱함이 느껴졌다. 십수 년 전 꽃게잡이 체험을 하겠다며 어선에 동승했던 기억이 있다. 3월이었던 것 같은데 장갑을 두 겹이나 끼고 고무장갑까지 꼈는데도 어찌나 손이 시린지 고통 그 자체였던 기억이다. 그때 우리가 먹는 꽃게가 결코 비싼 게 아니란 생각을 했었다. 난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이즈가 좋은 꽃게 열 마리를 담았다.



몽땅 수컷이다. 아직은 암게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추석이 지나 10월 중순 정도나 되어야 알이 꽉 찬 암게를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세미로 등껍질과 배 안쪽을 박박 닦고 껍질을 분리하고 배꼽을 뜯어낸 후 양쪽 입도 뜯는다. 마지막으로 게의 허파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다 뜯어낸다.



열 마리를 손질해 놓으니 양이 더 늘어난 것 같다. 이제 어려운 일은 다 끝났다.



탕비실에 마땅한 통이 없어 굴러다니던 김치통에 게를 차곡차곡 쌓았다. 다리 때문에 빈 공간이 많아 쌓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위로 등껍질을 쌓고 보니 한 통이 가득 찼다. 



미리 끓여 식혀둔 간장 육수를 통에 부었다. 그런데 문제는 간장 양이 터무니없이 적다. 다음날 뒤집어주기로 하고 일담 뚜껑을 닫아 냉장고로 이동. 이것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공간이 부족한 냉장고 속 먹거리들의 대이동이 불가피해졌다.



마지막으로 다음날 먹을 꽃게를 건져 냉장고에 넣고, 일부는 얼리기로 했다. 육수 끓일 때 쓸 요량으로 집게 다리는 모두 뜯어 봉투에 담았다. 어묵국에 집게 다리가 들어가면 국물이 일품이다. 요즘엔 마트에서 집게 다리만 따로 모아 파는 걸 사다 써 봤는데 살이 없어 국물 우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퇴근하던 중 갑자기 김치통의 흑역사를 기억해낸 것이다. 아뿔싸! 어쩐지 바닥에 간장이 묻어난다 싶었는데 금이 간 통이라 구석에 처박아둔 녀석이었던 거다. 난 집 앞에 도착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돌려 회사로 돌아갔다. 이게 얼마나 정성을 들인 간장게장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실패할 순 없지.

다행히 간장의 손실이 많지 않았다. 큰 통이 없어 음식들의 용기를 갈아 태운 후 가장 넓은 통 하나를 섭외해 냈다.






다음날, 점심 메뉴는 당연히 꽃게 요리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식수 인원이 달랑 두 명이다. 이거 이러면 섭섭한데...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꽃게. 게다가 꽃게찜을 먹고 싶다 한다. 그렇다고 요리 같지도 않은 꽃게찜만 가지고 만족할 내가 아니다. 된장 베이스의 구수하고 칼칼한 꽃게탕을 맛 보여 주리라.



솥에 물을 붓고 찜기 위해 꽃게 세 마리를 올렸다가 한 마리는 슬쩍 꺼냈다. 아무래도 양이 많을 것 같아서다. 솥 안에 두 마리를 찌기 시작했다. 왼쪽 비포, 오른쪽 애프터. ^^



어릴 때부터 우리 집 꽃게탕은 된장 베이스였다. 다른 집도 그렇게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엄마의 꽃게탕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된장을 크게 한 숟가락 입수시켰다. 단 맛을 내는 게 싫어서 양파를 넣지 않으려다가 마지막에 마음이 흔들려 반쪽 썰어 넣었다.

맛술 조금, 간장 조금, 까나리액젓 조금, 청양고추 담뿍, 파 한 뿌리, 팽이버섯 반쪽, 칼로 으깬 마늘 왕창.

이게 전부다. 그저 팔팔 끓일 뿐. 역시 간은 보지 않는다. 난 내 감각을 믿으니까.



역시 나의 감각은 실패하지 않았다. 게다가 꽤 오래 끓인 덕에 살이 풀어져 꽃게탕 국물과 혼위일체가 된 상태. 이렇게 해서 먹으면 국물은 고소함이 깊은 맛이 기똥차다.

그러고 보니 안면도에서는 묵은지를 넣고 끓인다. 1박 2일에 소개되기 십 년도 전에 그 맛을 봤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각 지역마다 나름의 특색을 가진 요리법이 다양하다.



너무 많이 찌면 살이 퍽퍽해지기 때문에 시간 조절을 잘해야 한다.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꽃게는 이렇게 쪄서 먹기도 하지만 뱃사람들은 소금에 절여서 먹기도 한다. 때론 게를 회로 먹기도 한다. 한창 물질할 땐 그런 것도 참 많이 먹고 다녔는데...



암게가 아니라 뚜껑 안에 먹을 게 별로 없다. 하지만 뒷다리 살은 통통하니 아주 실하다. 고소하고 실한 녀석이 이제 기껏 초입에 선 가을의 풍미를 느끼게 하니 오늘의 점심 식사는 대만족이었다. 안타까운 건 겨우 두 사람만이 이 맛을 봤다는 거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중요한 손님 두 분을 회사로 점심식사 초대를 했다. 간장게장을 맛 보여 드려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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