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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부엌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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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Sep 24. 2021

얼린 무화과로 만드는 무화과잼

사무실 옆엔 유명하디 유명한 모 제과점이 있다. 골목길 안에 있는 그곳 주변엔 제과점 빵 봉투를 들고 지나가는 행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달 매출이 얼마나 될지 상상이 안될 정도로 말이다.

얼마 전부터 간식 대용으로 그 제과점에서 식빵과 잼을 사다가 한 조각씩 먹기 시작했는데 빵 가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 주먹보다 작은 잼 한 통이 15,000원이나 하는 걸 먹다가 문득 잼을 만들어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차피 사무실에서 밥도 해서 먹는 판국에 잼 하나 만드는 게 무슨 대수겠냐,는 판단을 했고 즉각 실천에 옮겼다. 기억 속엔 분명 제주도에서 공수해 온 얼린 무화과가 두 봉투나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생 무화과는 올라오자마자 먹어 치웠지만 얼린 무화과를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스럽긴 했었다.

이 녀석의 행선지는 바로 잼, 그 이상의 용도는 없을 것 같았다.

냉동실에서 무화과 한 봉지를 꺼내 상온에서 녹이기 시작했다.



무화과가 어느 정도 녹았다 싶어 탕비실로 향했다. 이제 잼 만들 시간이다.

뭐든 다 여기에다 넣고 끓이는 만능 냄비가 되어버린 커다란 냄비에 무화과를 쓸어 넣었다. 무화과가 담겨 있던 봉투 안에는 진득한 무화과 즙이 흥건했다. 무화과 즙 자체가 잼이나 다름없었다.



인덕션을 켜고 무화과를 으깨기 시작했다. 적당한 사이즈로 뭉개면 과육을 씹는 식감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적중했다.) 당분은 흑설탕을 썼고, 무화과의 절반 정도만 넣었다. 너무 달기만 한 잼을 원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무화과가 어느 정도 으깨어지고 인덕션에 가열되어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난 다양한 향미를 위해 두 가지 허브와 사진엔 없지만 레몬즙을 가미하기로 했다. 냉장고에 있는 제주도 자연산 민트와 유기농 티백을 뜯어 라벤더를 구했다. 즉석이지만 참으로 대견한 아이디어 아닌가? 



바짝 마른 민트는 믹서에 잘게 갈아 뿌리고 라벤더는 그냥 대충 던졌다. 벌레 같다. ㅎㅎ



잼처럼 끈적일 때까지 약불로 십 분 이상 가열했다. 점도가 점점 높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



무화과 씨앗이 과육과 분리되며 위로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이게 제대로 되길 되려나 싶었지만 인내를 가지고 계속 끓인다. 중간중간에 완전히 으깨어지지 못한 무화과 덩어리가 발견되었고, 발견 즉시 사살이다.



거칠어 보이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이 녀석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 정도면 제과점에서 삼십만 원치는 할 양이다. 이제 우린 건강한 잼을 아주 풍족하게 쓸 수 있게 됐다. 이참에 힘입어 남는 과일 가지고 이 잼, 저 잼 만들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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