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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Sep 23. 2021

30년 맛집, 41탄-순대로 유명한 제주도 범일분식

진짜 다름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순대국맛집

어지간 해서는 절대 줄을 서지 않는 내가 줄을 설 수밖에 없게 만든 식당이 나타났다. 인근에 대체할 만한 식당이 없다는 제약이 이유가 될 수 있었겠지만 몇 년이 됐을 지 알 수 없는 <범일분식>이란 간판이 나를 붙들어 놓게 했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목적지인 범일분식이 보였는데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주에서 이렇게까지 줄을 서는 곳이라면 관광객들이나 다니는 음식점일 거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색이 바랜 것인지도 모를 제주 바다의 색깔을 담은 듯한 옅은 비취색 간판에 손으로 직접 오려냈을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서체가 진한 향수를 뿜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전화번호는 또 어떠하며, 오래되어 요즘엔 구경하기도 힘든 구릿빛 알루미늄 샷시로 된 유리문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런데 웃긴 건 분명 남원읍에서 제일 맛있다는 순댓국 맛집이라더니 하필 분식이라는 간판을 쓰고 있었다. 뭔가 사연이 있을 것도 같았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부모님이 하시던 식당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거다. 게다가 이 식당은 한동안 연재를 끊었던 <빗맞아도 30년> 시리즈의 맥을 이어 줄 수 있는 곳이란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내 취향을 직격으로 저격할 수 있는 맛집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메뉴판 사진이나 실내 사진이 없다. 미처 그런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 식당 안엔 좌식 테이블이 서너 개 정도 있고, 입식 테이블 네 개가 전부였기 때문에 타인 시선이 신경 쓰여서다.

어쨌든 정말 협소한 공간이라 줄을 서지 않을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싶었다. 메뉴판엔 순댓국과 순대 등 몇 가지 되지 않는 메뉴가 있었다. 다른 메뉴에는 눈도 가지 않았던 게 이미 옆 테이블에 놓인 순대의 비주얼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른 메뉴는 이미 머릿속에 띄워지지 않았다. 남원읍에 사는 현지인의 소개로 찾은 곳이기에 믿어 의심치 않을 곳이란 것도.

별면엔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의 사인과 명함이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이름을 아는 연예인이라곤 기껏 수십 명도 채 안 되는 내게도 익숙한 연예인 몇 명의 이름이 보였다. 나도 사인 하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지워버리고 말았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이건 뭐 진짜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진짜 제대로 된 수제 순대이다. 돼지 창자라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식감도 그러할진대 냄새도 없고 찰진 순대 속이 기똥차다.

식당 주인은 깻잎 장아찌에 순대를 싸서 먹으라는 설명이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양이 많지 않아 오후 두 시 정도면 영업이 종료된다고 하던데 이걸 보고 나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정말 깻잎 장아찌와 찰떡궁합이다.



순대를 거의 다 먹어갈 즘 되자 드디어 기다리던 순댓국이 상 위에 올려졌다. 아 그런데 이건 참 묘한 구석이 많다. 일단 뚝배기가 작아서 평소 먹던 순댓국에 비해 양이 너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코 적지 않은 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뭐~ 얼마나 가득 넣었는지 들깨 가루가 질퍽일 정도였다. 물론 아주 적절한 질퍽임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순대나 내장들 역시 잡내 없고 깔끔하다. 특히 고소함이 가득한 국물도 그렇고 적절하게 매콤하며 더 뭔가를 첨가할 여지가 없었다.

보통 순댓국집에 가면 다진 양념, 청양고추, 새우젓, 부추, 들깻가루, 후추 등 개인 취향대로 이것저것 양을 조절하게 되는데 여긴 그런 거추장스럽고 실패 확률이 높은 비율 조정이 불필요하다.



이 시가 언제 쓰였는지 알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인터넷을 뒤져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나중으로 미뤄 본다. 


이 시를 그대로 필사해 본다.





<범일분식>

양상보 (서귀포 출생, 시인)


길보다 살짝 낮은 슬레이트 지붕이 있다

간판은 파란 간판 삼십 년째 그 간판

바람결 달랑대지만 지붕을 지켜낸다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그리고 깡통시장

한 청춘 거기 두고 물 건너온 서귀포

할머니 순대백반에 눈물 맛도 배어난다


오직 신앙이라면 고시원에 비는 일

'한 해만 더 한 해만 더' 이골난 생이지만

그 아들 명절에 한 번 코빼기도 안 비친다


문득 아내와 함께 그 식당에 들렀더니

할머닌 세상 뜨고 벽꽂이에 변호사 명함

마침내 좋은 소식이 여길 다녀갔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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