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드디어 벵에돔을 잡았다
제주살이에서 뺄 수 없는 벵에돔 낚시 터득기
가까운 지인들이 아니면 내가 제주에 자주 오가는 것을 두고 제주 출신이라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제주와 인연이 닿았고 제주의 매력에 푹 빠졌을 뿐이다.
물론 이젠 너무 자주 가서 감흥이 떨어지긴 했다.
그래서 가급적 새로운 곳을 찾는 편인데 제주는 지겨울 만하면 새로움을 가져다주어 만족도를 높인다.
육지의 계절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제주의 풍광과 사계절은 묘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겨울이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뀌는 변화무쌍한 날씨도 경이롭다.
눈 쌓인 한라산 백록담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 땐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한창 클라이밍에 빠져 인수봉을 오를 땐, 매주 우이동 21야영장까지 같은 길을 다녔다.
반복된 길이었지만 계절마다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만족이 있었다.
사계절이 있다는 건 정말 복 받은 거다.
제주의 사계절 역시 마찬가지다.
역마살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던 나의 방랑벽을 붙잡아 둔 것이 있다.
바로 낚시라는 취미다.
취미라고 쓰긴 했지만 실력은 허접하기 이를 데 없다.
적어도 제주에서는 내가 하는 낚시를 생활 낚시라고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급에도 들지 못한다.
사진처럼 처음엔 지인에게 받은 민물 배스 전용 낚싯대로 바다낚시를 시작했다.
거의 일 년 넘게 낚시를 다녔어도 손바닥 길이보다 짧은 고등어나 자리돔 정도나 잡던 나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 적이 있다.
바로 옆에서 1.5미터는 되는 부시리를 잡는 모습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십 분 이상 부시리와 씨름하던 낚시꾼의 그 생생함이 아직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후 나는 낚시 다운 낚시를 해보고 싶었다.
함께 낚시를 다닐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혼자 낚시 방법을 습득해야 했다.
동네 낚시방 주인은 나 같은 초보 낚시꾼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난 쓸데도 없고 용도조차 잘 모르는 낚시도구를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벵에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바로 이것이구나' 했다.
몇 시간을 두고 그들이 하는 행위를 지켜보았다.
떡밥을 열심히 던지고 낚시를 던지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하지만 벵에돔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난 인터넷을 뒤져 벵에돔 채비를 구입하고 며칠째 같은 장소로 나갔다.
채비법은 유튜브로 배웠다.
그 후로 난 유튜브를 즐겨보게 됐다.
거의 매일 낚시를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낚시꾼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낚시를 오는 분인데 하반신이 없었다.
난 그분이 하는 행위를 유심히 살폈다.
절제되고 안정적인 몸놀림으로 보아 초고수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내 생각이 옳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세한 찌의 움직임을 보며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어종을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초보인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난 당장에 그분 옆에 자리를 잡고 가르침을 청했다.
무지한 내게 친절하게 벵에돔 낚시법을 설명해주신 그분 덕분에 벵에돔 낚시는 밑밥과의 동조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 후 나는 벵에돔 낚시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포인트를 다른 곳으로 옮긴 나는 벵에돔 낚시의 핵심이라는 밑밥과의 동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말았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벵에돔 낚시의 초보 수준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조류, 수심, 잡어 분리 등의 난제를 풀어야 대물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포인트에서 만난 수십 년 낚시 베테랑 덕분이다.
바로 옆에서 낚시를 하는데 내 낚시를 물어주는 벵에돔은 없어도 그분 낚시에는 줄기차게 걸려 올라왔다.
벵에돔 낚시라도 해서 벵에돔만 잡히는 게 아니었다.
그분 낚시에는 숭어, 잿방어, 쥐치, 따치(독가시치), 졸복, 어랭이, 고등어, 학꽁치 등 지나가는 녀석은 죄다 걸려 올라오는 듯했다.
챔질의 노하우도 있지만 밑밥을 어떻게 만드느냐, 새우와 떡밥을 어떤 식으로 쓰는가 하는 상세한 이슈가 있었다.
그분 같은 경우 크릴새우를 미리 염장해 두어 새우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사용한다.
잡어들의 공격에 좀 더 버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떡밥의 크기도 조류나 수심, 잡어의 유무에 따라 사이즈를 달리 쓰기도 한다.
조류의 상황에 따라 찌의 위치를 달리 하고 조류를 따라 흐르게 밑밥을 던지는 미묘함의 차이를 알려주셨다.
수십 년 노하우가 몇 마디 설명으로 전수되는 건 아니겠지만 이론과 요령에 대해서는 매우 유익한 도움이 된 것이다.
나는 즉시 실천에 옮겼다.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
줄기차게 낚아 올리는 그분과는 달리 내게는 실적이 없었다.
그런 나를 옆에 두고 그분의 한 마디가 이어졌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야.
노력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건 없어.
낚시에도 철학은 있다.
등산에 푹 빠져 살 땐 등산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을 담고 살았다.
인생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거야.
그 말이 험난한 인생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게 했던 것 같다.
이젠 낚시가 가져다준 새로운 철학이 있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말이지만 체험으로 깊이를 더해가는 거다.
벵에돔은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어류다.
육지에서는 그래도 제법 높은 몸값을 자랑한다.
제주에서는 흔하지만 육지에서는 귀한 녀석이다.
벵에돔은 껍질이 맛있는 생선으로 비늘을 벗기고 토치로 껍질을 살짝 구워 회를 뜨면 식감이 더 좋다.
벵에돔 중 긴꼬리벵에돔은 힘도 좋고 육질도 좋다.
벵에돔은 아주 예쁘게 생긴 녀석으로 한반도 남쪽 지역과 제주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벵에돔 낚시는 주의보가 걸리기 전날과 직후가 잘 된다.
초보 낚시꾼이라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벵에돔의 방생 규정은 없으나 23cm 이하는 놓아주는 암묵적 동의가 있다고 한다.
벵에돔은 회로 먹어도 맛있고 반건조 후 기름에 튀겨 먹는 것도 좋다.
벵에돔은 입질 후 물속으로 물고 들어가는 습성이 있다.
바늘을 2개 쓰면 2마리씩 잡히기도 한다.
낚시의 가장 큰 묘미는 아름다운 제주를 장시간 한껏 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의외로 내가 기대했던 것 같은 깊은 생각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벵에돔은 귀찮을 정도로 부지런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