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생각, 죽은 생각

행동하지 않는 아이디어는 쓰레기다

by 루파고

2015년도 일기장을 뒤적이다 무선 드라이기와 무선 고데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은 게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출시된 제품들이 생각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아이디어를 적은 기억이 없다.

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다.

쿨샤 전동칫솔 아이디어는 출시되기 십 년 이상 앞서 생각했던 아이디어다.

웃긴 건 끄적끄적 그려놓은 그림이 쿨샤 전동칫솔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다.

당시 그 아이디어에 좀 더 업그레이드해 두었던 것도 있었다.

그것 역시 최근 제품화되었다.

이렇듯 뒷북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트에는 아직 묵은 아이디어들이 많다.

시간이 흐르면 그것들 역시 누군가의 손을 통해 빛을 볼 것이다.


당연히 소설 소재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냥 가지고만 있다.

문제는 아이디어가 늘어간다는 것이다.

좀 더 열심히 써야 는데 역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고질병이다.


아이디어랍시고 메모할 때는 아마 '죽이는 생각'이라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결국 그 아이디어는 '죽은 생각'이 됐다.

행동에 옮기지 않았으므로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아이디어 중 소설에서 황당한 경우가 있었다.

이것을 두고 대체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2017년 신아출판사에서 출판된 <살인자와의 대화>라는 미스터리 고어 소설이 있다.

소설은 2015년 겨울에 쓴 것 같다.


바로 이 소설이다.

물론 잘 팔린 소설은 아니다.

그런데 영화 <악인전>을 보기 전 포털사이트의 줄거리를 읽다 이상한 글을 보게 됐다.


2017년 6월에 출판된 소설 <살인자와의 대화>와 2019년 5월에 개봉된 영화 <악인전>의 소개문이다.

연쇄살인마에게 잡혔다가 간신히 탈출한 조폭 보스라는 콘셉트가 같다.

다른 게 있다면 현직 형사냐 전직 형사냐이다.

물론 소설과 영화의 내용은 다르니 딴지를 걸 순 없다.

콘셉트를 가져다 쓴 것인지 우연히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의 여부는 도덕성에 맡길 일이다.

나를 자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고, 영화 <악인전>의 시나리오를 쓴 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전체적인 흐름, 구성, 완성도, 소재에 있어 내 소설이 훨씬 더 기발하다.

게다가 그냥 일반적인 스릴러에서 좀 더 심도 있게 다룬 고어 소설이며 연쇄살인과 캐릭터의 관계도가 더 치밀하다.

최근 내 글을 있는 그대로 가져다가 자기 글인 양 쓴 작가도 있던데 나 한 사람에게도 이런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걸 보면 저작권과 관련한 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그림을 무단으로 가져다 상업용 인쇄물로 가져다 쓴 기업도 있었고, 내 사진을 무단으로 가져다 잡지에 실은 출판사도 있었고, 내 글을 조사만 수정해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 작가도 있었다.

인터넷에 내 그림, 글, 사진이 수십만 건에 이를 정도로 널려있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다.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한 경우에는 소송으로 저작권에 합당한 보상을 받은 적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저 내 작품들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자축하고 말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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