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선배들의 말을 잘 듣지 않던 사람이다.
선배들이라 함은 학교나 동네 선배가 아니다.
인생의 선배를 말하는 거다.
물론 지금은 선배 말을 잘 듣는다고 단언할 순 없다.
적어도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는 건 안다.
왜 그랬을까?
난 누가 뭐라 하든 나 스스로 너무 잘난 놈이었던 거다.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잘난 놈이 되고 싶은 욕망이 과하다 못해 그렇게 착각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정말 왜 그랬을까?
누구도 나에게 '너 정말 잘 났다'라고 말한 적 없다.
실제 어느 한 구석이라도 뛰어나거나 좀 쓸만한 구석이야 있었겠지만 귀는 꽁 막혀서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잘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다, 어리석다 하지만 그 이상 어리석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난 어리석음에서 벗어났을까?
못난 놈이었던 내가 잘난 놈이 되었을까?
그 뻣뻣하던 나는 이제 조금 느슨해지긴 했다.
어떤 놈이 됐든 간에 그건 내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
타인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좋은 평가를 기대한 건 사실이다.
기대라는 것을 두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난 약 일주일 전 문득 약 26년간 마셨던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선배들이 입이 닳도록 했던 조언을 이제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해야 할까?
나는 내 안의 세상에 둘도 없는 고집 센 놈과 장시간을 두고 타협에 들어갔다.
1년 365일 중 거의 하루도 안 쉬고 마셨던 술을 끊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내 좌우명 중엔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었다.
지금도 담배는 피워본 적이 없지만 술의 유혹엔 무너지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 좋아서 정신줄을 놓을 때까지 마셨던 걸까?
타인의 평가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잘났다고 착각하던 나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 있을까?
나야말로 알코올 중독자가 아닐까?
뭣이 좋아 부모님도 못 알아본다는 망할 낮술을 즐겼을까?
술로 인해 많은 사고를 경험했고 돈도 많이 까먹었다.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을 모아놓고 보니, 술로 인생을 낭비하고서도 술을 끊지 못하는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타협은 긴 줄다리기를 했다.
술에 의존하는 것도 아닌데 술을 끊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이십 대 때 두 달간 술을 완전히 끊은 적이 있었다.
술자리는 피할 수 없어 따라다녔는데 다들 미친 사람들처럼 보였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기본이고 별 이유 없이 소리를 높여 언쟁을 벌이기 일쑤였다.
아무리 즐거운 자리라도 술이 깊을수록 다툼이 생겼다.
맨 정신에 그걸 다 지켜본 나는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나름의 논리를 펼쳐 주장하지만 맨 정신의 내가 볼 땐 유아기 수준의 억지주장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보다 지친 나는 그들의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그 후 약 이십 년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했다.
당시 난 술을 끊겠다고 작정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작정하면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후에도 수 십 혹은 수 백, 어쩌면 그 이상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엔 내 안의 고집 센 놈과 얼추 줄다리기가 끝난 것 같다.
완전히 끊는다는 건 어렵다는 걸 녀석은 인정한 거다.
삶이 고집을 눌러버린 걸까?
술을 끊는 대신 술을 줄이기로 하고 방법론을 제시했다.
맥주 정도의 약한 술만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내 주량이면 맥주 수 천 cc는 맹물이나 마찬가지니 삶에 딱히 영향을 끼칠 것 같지도 않았다.
협상을 마친 나는 스마트폰 스케쥴러를 기록했다.
술시가 가까워지는 매일 6시 30분에 <맥주 외 다른 술은 마시지 않는다>라는 알람이 울리게 세팅해 둔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의지를 선포했다.
아서라, 웃기지 마라, 개가 똥을 참지, 같은 말만 백 번은 했을 거다, 미친 거냐, 어디 아프냐, 하루용이지 등 많은 의견이 있었다.
어제 부로 딱 일주일이 지났다.
술을 줄이니 아침이 개운하고 하루가 길다.
시간을 아껴 쓸 목적으로 술기운에 겨워 힘들어도 어떻게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의 시간을 연장해 쓰기도 했다.
이젠 절주를 한 덕에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하니 여러 모로 좋은 일이 많아졌다.
우선 한동안 멀리 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원래 이상 없었지만 소화도 훨씬 잘 되고 에너지가 넘쳐난다.
신체리듬도 평온해진 듯하고 두뇌회전도 쌩쌩해졌다.
절주를 작정하고 일주일 동안 술자리가 다섯 번 있었지만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고맙게도 주변 사람들도 내 의지를 꺾으려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나를 적응하지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앞으로 나의 이런 의지가 다시 똑하고 부러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내 안의 고집 센 놈과 약속했던 초심이 변질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