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Jun 02. 2022

53.순댓국을 못 먹는다면 바로 이 집! 순대실록

강남고속터미널 호남선 2층에 꽤 오랜 맛집이 있다

어차피 뜨내기손님들이라 맛보다 목이 중요하다는 개념으로...

그래서 터미널 인근 식당들 중에 맛난 곳 없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편견을 깨버린 바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버스터미널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안에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식당 말고도 한 곳이 더 있었던 것 같다.

전라북도 장수시외터미널에서 먹었던 해장국집이 그러하다.

해장국에 달랑 김치 4가지가 나왔는데 배추 묵은지와 생김치, 무 묵은지와 생김치.

정말 우습게 봤었는데 4가지 김치가 전부 뛰어나고 독특한 맛이었다.

어른들에게 들었던 바, 김치 맛있는 집 치고 음식 맛없는 곳 없다고 했던 말을 실감했던 곳이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순대실록은 5~6년 정도 다닌 것 같다.

그땐 반포에 살 때라 처음엔 쇼핑 차 지나는 길에 우연히 간판을 보았고 급히 순댓국이 당겨 맛보게 되었는데 그 후론 줄기차게 다녔던 것 같다.

'우연히'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신세계백화점 후문으로 나와 호남선 대합실 홀 안에 2층으로 올라가는 작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인데 평소 같았으면 일부터 올라갈 이유가 없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호남선 버스를 탈 목적으로 그곳에 체류할 일도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알게 된 순대실록은 반포에 살 땐, 나의 징그러운 맛집 중 하나였다.

사실 반포엔 맛집이 별로 없다.(내가 아는 한) ㅠㅠ





몇 달을 두고 순대실록에 갈 생각을 해 왔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 주차하는 것도 문제였고, 코로나 때문에 대중교통을 기피해왔던 터라 여러 요인들이 내 발목을 잡아버리곤 했다.

이번엔 마침... 지방선거로 공휴일인 데다 매일 만들어 먹던 점심 요리도 귀찮고 해서 오랜만에 외식을 결정하고 20여 분 정도 이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고 다녀왔다.

최근 2년 정도 못 간 터라 이 집이 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인터넷으로 영업 여부를 확인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설마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알 수 없는 믿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작정하고 간 터라 점심시간보다 30분 정도 빨리 움직였다.

보통 점심시간이라 함은 12시 아닌가? ㅋㅋ

역시 건재한 곳, 순대실록.

벌써 일 년 넘게 이 식당에 대해 떠벌여 놓은 적이 있기에 함께 간 동생 녀석의 환상을 깨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내심 있었다.

이 녀석 순댓국 먹는 스타일 또한 내가 전염시켜 놓은 거라 내가 맛있다고 하는 곳이라면 절대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더했다.

메뉴판에 보면 이것저것 많이 있는데 예전에 순대곱창볶음을 한번 시도한 결과 순댓국만 먹기로 했다는... ㅎㅎ

아무튼 그건 취향이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순 없다.



예전엔 이 카피를 못 봤던 걸까?

원래 있었는데 먹는 데 정신이 팔려 못 봤을 수도 있다.

아무튼 '순대실록'이란 네이밍 자체가 상당한 수준의 카피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깊은 뜻이 있었다니 말이다.

'맛있는 시도, 맛있는 기록'

나름 글 쓴다는 내게 팍팍 와닿는 문구 아닌가?



순대실록의 장점 중 특장점은 바로 여기다.

자유롭게 퍼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

보다시피 순댓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이템들 아닌가?

깍두기 김치와 국물, 부추, 청양고추, 양파, 새우젓, 마늘, 쌈장.

들깻가루와 죽염은 테이블에 비치되어 있다.

자리를 잡고 나면 부추와 깍두기를 주는데 그걸 베이스로 몽땅 세팅해 두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몇 번이고 퍼다 먹는데 사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먹어도 너무 많이 먹기 때문이다.



영종도에 가면 해송쌈밥이라는 식당이 있다.

그 식당이 유명해진 이유는 음식도 그렇지만 견과류를 갈아 만든 우렁이쌈장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순대실록의 쌈장 역시 독특하다.

난 개인적으로 쌈장 정도는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식당이 좋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일반 장류에 조금의 정성만 쏟으면 그 식당만의 비기가 될 수도 있는데 너무 정성이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음식은 정성인데...



테이블 위에 모든 아이템을 준비해 놓고 조금만 기다리면 순댓국이 나온다.

음식 특성상 역시 오래 걸릴 일은 아니니까.

육수를 보면 알겠지만 사골 베이스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컬러 아닌가?

순대실록의 순댓국은 바로 이거다.

특자 주문해서 먹으면 바로 술안주다.

냄새를 글로 전달할 수 없어 안타까운데 특유의 돼지 비린내 같은 건 정말 1도 안 난다.

즉, 냄새 때문에 혹은 식감 때문에 순댓국을 먹지 못한다는 사람이라도 도전해 볼만한 식당인 것이다.



국물이 뜨거울 때 부추, 마늘, 청양고추를 담뿍 넣고 들깻가루를 한 움큼 퍼 넣는다.

이번엔 깍두기 국물을 넣는 걸 고민했는데...

사실 급한 마음에 들깻가루를 넣는다는 걸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서 원하는 맛에서 벗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다 해결법이 있으니...



일단 순대와 고깃덩어리를 건져 먹으며 뚝배기 안의 국물 수위를 낮춘다.

밥을 먼저 말아버린 게 실수였다.



육수를 추가로 부탁하니 이렇게 한 그릇 제공해 주셨다.

얼마나 다행인지...

기억해 보니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ㅎㅎ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 쌈장은 순대실록의 신의 한 수다.

싱싱한 양파를 더 맛나게 해서 나 같은 경우, 깍두기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는다.

양파 먹기 바빠서...

이렇게 뚝딱 비워버리고 말았다.

소싯적엔 뚝배기 하나를 못 먹던 난데, 어쩜 이리도 양이 늘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나오는 길에 주변 사진을 찍어봤다.

일부러 찾아가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닌 위치다.

이번에 보니 우리은행 위에 위치하고 있다.

shakeshack 버거 위에.


또 언제나 오려나 모르겠다.

먼 곳은 아닌데 접근성이 문제다.

매거진의 이전글 52.기피하던 돼지국밥을 새로 보게 만든 하오돼지국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