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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l 04. 2022

54.소스로 승부한 쌀국수, 부산 초읍동 월남면반

정말 오랜만에 만난 제대로 된 쌀국수

이 식당은 원래 가보려고 했던 추어탕 맛집이 휴무일이라 허무함을 머금고 발견한 맛집이다. 난 누구보다 쌀국수를 좋아하는 편이다. 게다가 특히 숙주를 너무 좋아하는 데다 쌀국수와 숙주의 조합을 특히 좋아한다.

웃기는 얘기지만 귀찮아서 자가 폐업한 서래마을의 오랜 단골집 이상 되는 곳을 만나기가 워낙 어려웠는데 정말 오랜만에 맘에 쏙 드는 식당을 그것도 부산의 구석진 동네에서 만난 건 그야말로 하늘의 뜻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이다.

아직은 적지만 프랜차이즈로 성공가도에 있는 모 쌀국수 전문점에도 몇 번 가봤지만 절대 월남면반에 미치지 못한다고 자신할 정도. 아무튼 이런 식으로 우연히 맛집을 찾을 때면 어찌나 반가운지... ㅎㅎ



아무런 정보 없이 찾은 곳이라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예쁘장한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았다. 11시 30분 정도 된 시간이라 아직 손님은 많지 않았는데 우리가 들어선 후로 아저씨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게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테리어를 봐서는 여자들이 주로 찾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쌀국수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메뉴 선정하는 건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미처 메뉴판을 찍어 놓을 생각은 못 했는데 아무튼 이건 1번 메뉴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월남면옥이었던 것 같다.



숙주를 좋아하는 난 주문하면서 '너무 많이 주셔도 됩니다'라고 했고 적당한 양이 나왔다. 더 필요하면 더 주겠다고는 했는데 함께 간 사람들은 숙주를 내게 전부 양보했다. ^^



숙주를 몽땅 털어 넣고 휘휘 저어 뜨거운 국물에 숙주가 익기를 기다렸다. 평소 하던 대로 소스를 넣으려고 의례 보이던 큰 소스통 두 가지를 찾았는데 뭔가 좀 이상한 것들이 보였다.



왼쪽 건 베트남 고춧가루, 오른쪽 건 피시소스. 즉 어간장 같은 건데 기호에 따라 간을 맞춰 먹으라는?

매운 국물을 선호하는 난 베트남 고춧가루를 세 스푼 넣었다. 나중에 소스 관련 정보를 기재해 둔 안내판을 보았는데 한 스푼 더 넣었으면 아주 고통스럽게 먹었을 것 같다. 그걸 확인한 건 내 앞에 앉아 먹었던 아무개 때문이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얼굴이 시뻘건 게 거의 죽어가는 듯했다. 어찌나 즐겁던지.



일단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니 이거 아주 진국이다. 제대로 된 육수라는 걸 어찌 설명할까...

아무튼 한번 맛을 보니 숟가락이 쉴 틈이 없다. 아직 숙주가 원하는 만큼 익지 않아 국물로 속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이건 완전히 해장용으로 딱이지 싶었다. 이제야 왜 여자 손님보다 나이 지긋한 중년 남자 손님들이 줄을 잇는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고기를 함께 들어 한 컷, 면만 들어 한 컷 찍어 봤다.

정말 정말 내가 좋아하는 그 맛이다. 어떻게 이런 식당이 이런 구도심 구석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심에 있다면 손님이 미어터질 것 같은데 말이다.



일반 쌀국수 전문점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게 또 보였다. 베트남 청양고추는 사떼 소스라고 한다. 맨날 먹기만 했지 매콤한 소스가 스리라차 핫소스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고기도 품질이 좋다. 사진 하나로 설명이 충분할 것 같다. 나중에 이런 게 있는 줄 알게 됐지만 사떼 소스 사용법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부가적으로 <해장 쌀국수 만들기>라고 설명이...

언젠가 다시 온다면 해장하러 오게 되리라. 아무리 멀리 있어도 올 것 같다.



국물을 남기기 싫었는데 그래도 바닥을 보이는 건 매너가 아니라고들 하니 이 정도는 남겨줬다. 정말 육수와 소스가 어우러진 깊은 국물 맛이 기똥차다.



결제를 하니 월남 과자라며 하나를 주더라는. 코코넛 과자다. 동남아 가면 코코넛 칩을 왕창 사 오곤 했었는데 요즘은 국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런지 딱히 매력이 떨어진 느낌이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게다가 공짜라니. ㅎ



나오면서 카운터 앞에 있는 명함을 들고 나왔다. 디자인도 잘했고 네이밍도 좋다.

다음에 해장 타임으로 다시 갈 일이 생길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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