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도움 준 게 없다. 그런데 내게 친절하다 하더라.
친절함이 대단한 건가?
지극히 정상이어야 하는 건데 친절하다 느끼는 건 세상이 불친절하기 때문일 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처음 본 사람에게 미소 한 번 던지지 못하고 시선조차 스마트폰에 던져버린 지금 상대의 불편함을 볼 수 있는 여유는 증발하고 없다.
그깟 친절이 뭐라고 속에 감추고 사는지 모르겠다.
얼마든지 친절할 수 있는 게 우리 본질인데 말이다.
스마트폰 속의 나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요즘 점점 손바닥보다 좁은 네모난 창 속에 나를 감추고 사는 것 같다.
거기서 벗어나는 게 뭐가 그리 힘든지...
친절은 일인칭이 아니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뭔가를 갈구하는 다인칭을 느낄 수 있다.
언덕길 리어카를 끌고 올라가는 폐지 줍는 노인을 돕는 것만 친절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 배시시 웃는 아기에게 예쁘단 소리 한마디 하는 것도 친절이고, 뭔가 흘리고도 모른 채 걷는 사람에게 줘다 주는 것도 친절이다.
귀찮음을 조금 이겨내면 세상에 많은 친절을 베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