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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부엌떼기

풀밭, 풀떼기, 풀요리

직접 농사지어 먹는 즐거움

by 루파고

사무실 앞 화단에다 조그맣게 농사를 지어 요리를 했었다. 토요일 아침 제안서를 쓰는데 오늘따라 전에 없던 두통이 있어 머리를 식힐 겸 작가의 서랍을 뒤적이다가 조금 철 지난 사진이지만 브런치에 올려 두었던 게 눈에 띄었다. 제 때 글을 쓰면 되는데 꼭 이렇게 묵혀 두었다가 글을 올리는 걸 보면 부지런 떠는 척하며 실제론 부지런하진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작정하고 풀떼기 농사를 짓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여기저기에서 협찬(?)된 농산물들이 많아져 그저 생각뿐이다. 그래도 텃밭에서 그날 먹을 신선한 채소를 키우는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농약 한 번 주지 않고 키워낸 것들이니 전혀 의심 없이 먹을 수 있으니까.

사무실에서 점심 식사를 요리해 먹는 것만 아니라면 농사를 지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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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을 심어 놓고 매일 아침 출근 때마다 들여다봤다. 전 직원이 다 들여다봤다. 매일 조금씩 자라는 걸 보니 농부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식 키우는 마음이라더니 거기까진 아니어도 생명을 가진 것들이 성장하는 걸 보면 세월이 가는 걸 느끼게도 했다. 젠장~

어쨌거나 이 녀석들을 언제쯤이나 먹을 수 있을 것인가, 그걸 두고 매일 들여다보던 어느 날 드디어 딱 먹기 좋을 만큼 자라기 시작했고 첫 수확을 했다. 아직 좀 작긴 했지만 야들야들한 것들을 빨리 맛볼 욕심에 몇 가닥 되지도 않는 것들을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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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에 녀석들을 씻어내는데 딱히 씻을 것도 없었다. 강남 공기가 이렇게 좋았던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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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보내준 돌미나리도 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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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꺼내 먹을까 고민했던 시금치도 꺼내서 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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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키운 녀석들은 이렇게 샐러드로 변신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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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또 한 덩어리를 베이스로 냉장고에서 두부며 버섯이며 브로콜리며 대파며 필요하다 싶은 재료들을 몽땅 투척해 낫또국을 끓였다. 완성된 사진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또 먹는 데 바빠 사진 찍는 걸 놓친 것 같다. 아무래도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은 게 분명하다.


이날 상차림은 완전 풀떼기 천지였다. 가끔 이렇게 베지터리안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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