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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ug 08. 2022

우영우 팽나무 우렁이 낫또국

우영우 팽나무 마을에서 포획한 우렁이는 다음날 요리가 됐다

그래, 어제다. 어제 제주도 서프로님과 함께 우영우 팽나무를 보러 갔었더랬다. 속된 표현으로 더럽게 더운 날이었는데 좁은 농수로에 득실득실한 우렁이를 본 순간 더위를 잊고 말았다. 우렁이를 잡은 후엔 완전히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어차피 오늘 점심은 '우영우 팽나무 우렁이 낫또국'으로 보신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셈이다. 농수로에 빠져 죽을 수도 있지만 목숨 걸고 우렁이를 잡았다. 너무 깊어서 팔이 안 닿아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커다란 우렁이를 두고 그냥 돌아갈 순 없었다.



그냥 생각 없이 잡은 녀석들인데 양이 꽤 된다. 사이즈도 엄청난 녀석들이 있다. 시골 출신이 아니라 이게 큰 건지 작은 건지 잘 모르지만 내 눈엔 확실히 커 보였다. 이것들을 가지고 우렁된장국을 끓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해감부터 시작했다. 다음날인 오늘 점심, 이걸로 요리를 할 생각이었으니까.



해감 도중 물을 세 번이나 바꿔줬다. 어찌나 흙을 많이 뱉어내는지 물이 너무 탁했다. 녀석들... 똥도 어지간히 싸더라. 아침부터 해감용 물을 한번 더 바꿔준 후 10시 30분 정도 되어 물을 버리고 아이들을 예쁘게 싹싹 씻긴 후 솥에 넣고 삶았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어지간히 큰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너무 리얼한가 싶은데 이걸 전부 먹는 게 아니다. 꼬랑지는 떨어져 나갔지만 지금 보이는 이것도 몸통 빼곤 전부 버려야 한다.



어! 생각보다 일이 많다. 우렁이 껍데기는 의외로 얇아서 잘 깨진다. 나중엔 요령이 생겨서 속도가 붙었지만 이거 쉬운 일이 아니더라. 다음부터는 마트에서 사다 먹는 걸로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 많던 녀석들을 정리하니 달랑 한 주먹 나왔다. 아~ 가성비 안 나온다. ㅠㅠ

그래도 마트에선 팔지 않는 사이즈의 우렁이들이 있었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냉동시켜둔 낫또 한 덩어리를 냄비에 투척, 이건 제주도에서 보내주신 엄마표 낫또.



우렁이를 그 위에 투척하고 삶기 시작했다. 오늘 점심은 곤드레밥이라 비빔용 양념장을 만들었다. 봄에 제주도에서 캐서 얼려둔 달래를 꺼내 잘게 썰고, 마늘 다지고, 청양고추 다져 넣은 후 고춧가루, 참기름, 들깨, 간장을 넣어 마구 비볐다. 요리는 원래 이렇게 대충 하는 게 맞다.



낫또국은 그냥 일반적으로 감자, 양파 넣고, 팽이버섯 한 봉투 털어 넣고, 청양고추 두 개 썰어 넣고, 마늘 다져 넣고 끝! 간 같은 걸 아예 하지 않았다. 간장 한 방울 안 넣고 오로지 고유의 맛으로만 끝냈다. 다만 오래 끓여주는 게 비기라면 비기다!



곤드레밥에 비빔장 넣고 열심히 비벼 먹고...



원가 아쉬워 백봉오골계란 한 판 다 쓸어 넣고 달랑 멸치액젓 조금 부어 계란찜을... 전자레인지 7분이면 뚝딱이다. 왠지 불량식품이 땅겨 부대찌개나 할 때 쓰려고 처박아 두었던 스팸을 하나 꺼내 구웠다. 우렁이를 보니 자꾸 남의 살이 당겨서 말이다.





이번에 우영우 팽나무 하나 보러 다녀와서 낙동강변 라이딩, 팽나무 그리고 이 건까지 세 번을 우려먹었다. ^^

딴 건 몰라도 가성비는 떨어질지언정 직접 잡아서 먹는 즐거움은 그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아무튼 개고생 해서 잡아온 녀석들 가지고 오늘 점심 한 끼 제대로 처리했다. 그럼 다음에도? 그건~ 생각 좀 해보구~


밥 먹자마자 후다닥 글을 써 주시는 이 센스쟁이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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