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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ug 05. 2022

이곳은 회사인가, 식당인가? 열 번째 이야기

못생긴 제주도 도토리 묵국수

냉장고에서 작년 가을에 제주도에서 도토리를 주워 곱게 갈아 얼려놨던 걸 꺼내왔다. 최근 주변 식당이 죄다 시시해지기 시작해서 다시 사무실에서 밥을 해 먹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새콤달콤한 육수에다 도토리묵을 말아먹기로 했다.

이 작업은 출근 즉시 시작됐다. 그래야만 하는 게 도토리묵을 쑤어 놓은 후 장시간 식혀야 탱글탱글한 묵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묵 쑤는 건 사실 별로 어려운 건 아닌데 도토리 특유의 쓴 맛을 잡기 위해선 참기름을 적당량 넣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적절한 고소한 간을 맞추기 위해선 역시 적당량의 소금도 필요하다.



도토리 가루 1 : 물 2 비율로 때려 붓고 강한 불에 끓이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고 나무주걱으로 바닥이 타지 않게 계속 저어 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 걸쭉해졌다 싶으면 용기에 담아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담을 용기가 보이지 않아 싱크대를 뒤져 이런 플라스틱 용기 두 개를 찾아냈다. 우선 용기 안쪽에 참기름을 바른다. 그렇지 않으면 뒤집었을 때 묵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진으로는 제대로 안 나왔는데 용기가 너무 작아서 묵이 꽤 두껍다.


아차 싶은 게 밥 먹을 생각에 급히 칼질을 하느라 도토리묵 원판 사진이 없다. 원래 이 글을 쓸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사실 인스타에다 몇 컷 올릴 생각이었는데 결국 또 이 글질을 하고 있다.



이제 묵국수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묵이 너무 큼직하게 잘라져 국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 아무튼 이 요리 이름은 그렇다고 한다. 아무튼 가장 중요한 육수를 만드는...

이건 그냥 글로 정리해본다.

동치미가 없어서 새콤한 무깍둑이물김치를 꺼내 믹서기에 갈아 육수의 베이스를 만들고, 열무김치와 국물을 적당량 넣었다. 여기에 참기름 조금, 레몬즙, 다진 마늘, 청양고추, 참깨, 잣, 멸치액젓 미량, 간장 미량, 매실진액을 눈치껏 알아서 넣고 잘 저어준다.

이번 제주 휴가 때 집에서 가져온 청양고추를 두 개 넣었는데 역시 우리 집 청양고추는 갑중갑이다. 새끼손가락 만한 청양고추를 겨우 두 개 썰어 넣었는데 입술이 다 얼얼해질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얼음을 몽땅 때려 넣고 휘위휘이 저어준다. 그럼 육수는 준비 끝!



빈 김치통에 대충 만든 건데 여기에 얼음이 들어가니 입에 넣기 전인데 벌써 시원하다. 또 간을 안 보면 큰일 나겠다 싶어 국자로 조금 떠서 맛을 보니 내가 예상했던 바로 그 맛이다. 역시 신의 손!



김치 고명이 필요하니 묵은지를 꺼내 잘게 썰어 그릇에 담았다. 이건 취향껏 첨가해서 먹기로~



수저를 좀 가지런히 놓고 사진을 찍으면 좋으련만 요리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성의가 너무 없다. 배가 너무 고팠기에. ㅋㅋㅋ



이제 묵국수 시식이다. 역시 여름엔 묵국수 만한 별미가 없다. 시원한 국물에 톡톡 튀는 상큼함이... 거기다 여름의 대명사 열무김치와 가평에서 사 온 잣까지.





제주에서 가져온 묵가루가 이제 하나 남았다. 올여름 한번 더 먹으면 올 가을 버전을 맛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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