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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Oct 11. 2019

잠자는 땅, 시비리 6화 - 사냥꾼의 습격

혹시 우리 엄마 이름이 궁금하진 않나요? 사실 우리 숲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인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그 이름을 너무 싫어해요. 그래서 엄마는 우리에게도 엄마의 이름이 불리는 걸 싫어해요. 어쨌든 우리 엄마 이름이 『동그란엉덩이』라는 것은 밝혀 둘게요. 이제부터는 가끔 엄마 이름을 쓰기로 했어요. 이제는 엄마가 싫어해도 어쩔 수 없어요. 우리는 엄마의 동그란엉덩이가 너무 예쁘고 좋은데 엄마는 왜 그 이름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한스를 만났을 즈음, 노란민들레숲 근처에 있는 숲들이 사냥꾼들에게 짓밟히기 시작했어요. 사냥꾼들 중에는 한스도 끼어 있었고요. 한스는 『지옥의 사냥꾼』, 『지옥에서 온 늑대사냥꾼』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어요. 동물들은 한스가 근처에 있다는 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굳어버릴 정도였어요. 특히 늑대들은 한스라는 이름만 들어도 덜덜 떨었다죠. 한스는 다른 사냥꾼들과는 달리 늑대를 사냥하고 나면 그 자리에서 가죽을 벗겨버리고 떠났어요. 늑대들의 시체는 독수리와 까마귀 녀석들이 차지했죠. 예전엔 땅 위의 동물들과 하늘을 나는 새들은 그다지 나쁜 사이가 아니었지만 이 때부터 동물들은 독수리와 까마귀를 혐오하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에는 호랑이 부부가 살던 『어두운 숲』에 사냥꾼들이 몰려와서 숲 속의 동물들을 마구 잡아 죽였다는 소문이 주변 숲에 사는 동물들에게 퍼져갔어요. 수천 년 동안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동물들이 늘어갔죠. 어두운 숲의 호랑이 부부는 사냥꾼들에게 사로잡혀 어딘가로 끌려갔어요. 그러자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들만 남고 모두 숲을 떠났고요. 어두운 숲은 더 짙은 어둠과 고요함으로 덮여 버렸어요. 그 후 어떤 동물도 주변에 얼씬 거리지도 않았어요. 어두운 숲은 계곡 건너편에 있었어요. 누구도 찾지 않는 거대한 평원은 작은 시베리아라고 해도 될 정도로 큰 땅이었는데 거의 모든 동물들이 사라진 거죠. 이제 그곳은 날개 달린 녀석들의 천국이 되어 버렸어요. 운 좋게 살아남은 동물들은 겁이 나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대요. 우리 노란민들레숲에도 주변의 숲에서 탈출한 동물들이 찾아들었어요. 동물들은 그들이 겪은 공포스러운 경험을 이야기해줬어요. 그 동물들은 우리 숲도 사냥꾼의 공격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했어요. 숲 속 동물들은 고향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아쉬움으로 가득 찼지요. 우리 숲의 동물들은 사냥꾼 마을에서 도망쳐 나온 화들짝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사냥꾼에 대해 제법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바로 이웃에 있는 숲에서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지요.






“아수라장이 따로 없어요!”

“무서워 죽을 것 같아요”

“엄마가 사라졌어요!”

밍크 세 마리가 서로 앞다투어 말했다. 여우의 반도 안 되는 덩치에 족제비 같이 생긴 밍크는 러시아 사냥꾼들에게 인기 있는 사냥 대상이다. 친칠라, 비버 그리고 여우 역시 사냥꾼들이 제일로 치는 가죽이다.

반짝반짝돌멩이마을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조그만 밍크들 외에도 비버들이 모여 살던 곳 역시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았다. 도망을 치다가 사냥꾼들이 설치해 놓은 덫에 걸려 잡힌 동물도 많다고 했다. 손이는 목숨이 위태로웠던 경험을 통해 사냥꾼의 덫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 있었다. 동물들에게 덫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야만 했다. 덫에 걸리면 가족과 친구들까지 사냥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 더 문제였다. 만약 그때 한스가 아닌 다른 사냥꾼이었다면 태니의 가족들은 모두 영혼이 되어 이 숲을 떠났을 것이다.

손이와 태니는 동물들을 모아 덫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기로 했다. 밍크들의 말에 따르면 총에 맞은 동물보다 덫에 걸려 산채로 잡혀간 동물이 더 많다고 했다. 손이는 해가 뜨는 방향으로 알리기로 하고 태니는 해가 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해가 지면 너른바위광장으로 모이기로 약속하고 손이는 해가 뜨는 방향으로 뛰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동물들은 모두 너른바위광장으로 모여주세요. 사냥꾼들에게서 잡히지 않으려면 꼭 오셔야 해요. 한 마리도 빠지지 마세요.”

태니와 손이의 목소리는 노란민들레숲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숲의 중앙 부근에는 엄청나게 넓은 바위가 놓여 있다. 그래서 숲 속 동물들은 너른바위광장이라고 불러왔다. 숲 속 동물들은 숲에 일이 생기면 항상 이 곳에 모여 회의를 하곤 했다. 보통은 제일 나이가 많은 동물들이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이미 친칠라 할아버지와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화가 난 눈치다. 태니는 할아버지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태니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나무랐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태니의 할아버지와 오랜 친구였지만 태니의 할아버지가 죽고 난 후 태니 가족과 예전처럼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수천 년간 노란민들레숲의 동물들에게 존경받아온 은빛여우들을 내심 못마땅히 생각해 왔었다. 태니의 할아버지가 죽고 난 후부터는 나이 많은 은빛여우가 없어서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숲에서 제일 존경받는 동물이 되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리를 인정받고 싶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태니의 아빠인 뾰족귀가 죽은 후부터는 노란여우 할아버지의 권위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화가 나 있던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태니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한참만에 화를 풀고 큰 바위 위로 올라갔다. 주위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물들이 모여 있었다. 노란민들레숲의 역사상 이렇게 많은 동물들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숲에서 도망쳐 나온 처음 보는 동물도 제법 많이 있었다.

“노란민들레숲 동물 여러분. 이렇게 갑자기 모이라고 한 건. 에헴~”

동물들을 둘러보던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연설을 시작했다. 그런데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말을 하다 말고 태니를 불러 조용히 물었다.

“태니야. 그게 뭐라고 그랬지?”

“덫입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다시 동물들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에헴~ 그러니까 사냥꾼들이 설치한 덫이라는 위험한 물건 때문에 모두들 모이라고 한 겁니다. 우리는 에헴~ 이 위험한 덫을 에헴~ 그러니까~”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자 다시 태니를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 덫이 뭐가 어쨌다는 거냐?”

“그러니까요. 덫을 조심해야 하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누군가가 덫에 걸리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걸로 모이라고 한 거예요.”

태니는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덫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다시 동물들에게 말을 하려다가 “에헴~”만 연발했다. 결국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태니에게 직접 설명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뾰족귀의 첫째 아들인 태니가 자세하게 설명해 줄 겁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태니에게 단상 위로 올라오라며 눈짓했다. 태니는 날쌘 몸을 날려 단상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와우~ 하는 소리를 내며 동물들이 태니의 등장에 환호했다. 숲의 모든 동물들은 은빛여우들이 언제나 숲을 위해 일 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숲의 위기가 닥치자 은빛여우의 활약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숲 속의 동물들은 언제나 뾰족귀를 사랑했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요즘 같은 위급한 시기에 기댈 만한 믿음직한 동물이 없었다. 다행히도 그의 두 아들 손이와 태니가 뾰족귀의 명석하고 용감한 행동을 대신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숲 속 동물 여러분. 저는 뾰족귀의 둘째 아들 태니예요. 첫째 아들은 손이 형이고요.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아무튼 그건 중요한 건 아니지만……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얼마 전 반짝반짝돌멩이마을에 사냥꾼 마을이 들어오면서 그곳에 살던 동물들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우리 숲에도 많은 동물들이 이사를 왔고요. 사냥꾼들이 요즘 덫이라는 걸 설치해서 동물들을 산 채로 잡아가고 있어요. 저도 얼마 전에 엄마인 동그란엉덩이와 제 형인 손이가 사냥꾼이 설치해 놓은 덫에 걸렸다 간신히 풀려났어요. 사냥꾼이 설치한 덫을 끊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이빨이 닿지 않는 부위는 혼자서는 풀어낼 수가 없어요. 이빨이 날카롭지 않은 동물들은 덫을 끊기 어려울 거예요. 우리는 덫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해요. 누가 옆에 있다면 최대한 빨리 다른 동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만약 혼자 있다면 소리를 질러서라도 다른 동물들을 불러야 해요. 절대로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세 마리 이상이 된다면 이빨이 제일 날카로운 동물은 덫을 물어뜯고 다른 동물은 주변에서 사냥꾼이 오는지 망을 봐야 해요. 사냥꾼이 나타난다면 사냥꾼을 멀리 유인해야 해요.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해요. 겁을 내면 모두 잡히게 될 거예요. 정말 그런 일은 생기면 안 되겠지만 도저히 구출하지 못할 상황이라고 판단될 경우 그냥 포기하고 나머지는 모두 도망가야만 해요.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다 모두가 죽게 돼요. 슬픈 일이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해요. 명심하세요. 손이 형도 맛있어 보이는 고깃덩어리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먹으려다 덫에 걸린 거예요. 절대로 모르는 곳에 있는 음식은 먹으려 하면 안 돼요. 그리고 사냥꾼들은 시베리안 허스키보다 빨리 달리는 시커먼 개를 데리고 있어요. 조심해야 돼요.”

태니는 숨도 쉬지 않고 설명했다.






태니는 정말 똑똑한 녀석이에요. 하지만 태니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어요. 태니의 신속한 판단이 동물들에게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노란여우 할아버지에게 큰 실수를 한 거예요. 모든 일은 절차라는 것도 있어요. 어른들에게 상의를 하고 진행해야 하는 마을의 중대사인데 태니는 그걸 무시하고 일을 벌인 거예요. 태니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화가 많이 났어요. 할아버지는 그래도 화를 참으셨어요. 오히려 마을의 중대사인데 빨리 판단해서 진행했다고 칭찬을 하셨죠. 표정엔 화가 난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지만 말이에요. 태니도 나중에야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것인지 알게 됐고 노란여우 할아버지께 용서를 빌었어요. 할아버지는 태니를 용서했어요. 대신에 다음에도 반복된 실수를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해 주셨어요. 태니는 역시 똑똑한 녀석이에요.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웬만한 어른들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워 보였어요. 광장에 모인 동물들은 태니의 설명을 듣고 고마워했어요. 태니는 직접 사냥꾼을 피하는 요령을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총이라는 물건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냥꾼을 발견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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