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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Oct 11. 2019

잠자는 땅, 시비리 7화 - 빠른발의 위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숲의 동물들이 우리 숲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주변의 숲에서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동물들이었죠. 우리 숲에서 사냥꾼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문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그 참에 다른 숲의 대표들을 불러 모은 거였어요. 이를테면 동물들이 연합을 하기로 한 거죠. 모두들 시베리아에 사는 동물들의 미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된 거예요. 그동안 해가 지는 방향에서 밀고 들어온 사냥꾼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어요. 사냥꾼 마을도 여기저기 많이 생겨나고 있었어요. 실종되거나 죽임을 당한 동물들의 수는 셀 수도 없었고요. 우리 숲의 동물들은 사냥꾼에 대처하는 요령을 훈련받아서 그런지 다른 숲보다 피해가 적은 편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우리 숲이 안전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동물들이 몰려들었어요. 식량 걱정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풍요로웠던 우리 숲은 갑자기 늘어난 동물들 때문에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죠. 게다가 수천 년 동안 사소한 다툼도 거의 없던 숲에 사사로운 다툼도 잦아졌어요. 다른 숲에서 동물들이 곳곳에서 소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싸움이 나기도 했어요. 풍요롭고 아늑했던 노란민들레숲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고향을 잃고 우리 숲으로 들어온 동물들을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요. 어쨌든 우리 숲의 동물들은 새로 이사 온 동물들에게 식량을 나눠 주었어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다가오는 겨울이었어요.






“헉헉헉헉~”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다. 흰 털과 검은 털이 섞여 있는 호랑이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녀석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헉헉거리는 것이 체력이 다 떨어진 것 같다. 위협을 느끼는 건 아닌 걸로 봐서 사냥꾼에게 쫓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주변 어디에도 인간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 호랑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실핏줄이 돋아난 커다란 눈은 흐르는 눈물을 거두려는지 질끈 감겨 버렸다. 어린 호랑이는 방금 전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도망을 치는 게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빠의 호통치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려오는 것 같았다.

“빨리 노란민들레숲으로 가서 소식을 전해야 해! 빨리 떠나! 있는 힘껏 뛰어! 쉬지 말고 뛰어야 해! 어서!”

아빠의 호통 소리를 떠올린 어린 호랑이는 다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어린 호랑이는 있는 힘껏 뛰었다. 항상 뛰는 것을 좋아하던 호랑이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힘차게 뛰었다. 그것이 아빠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사냥꾼의 그물에 사로잡혀 꼼짝할 수도 없었고 아빠는 엄마를 구하기 위해 사냥꾼과 대치하고 있었다. 아빠 혼자서 사냥꾼 세 명을 대적해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예전의 인간들이었다면 그들 가족을 보는 순간 줄행랑을 쳤을 게 분명한데 요즘 사냥꾼들은 총이라는 무시무시한 물건을 들고 다녔다. 천둥 소리가 나면 누군가가 꼭 쓰러지고야 마는 총이란 것을 든 인간은 호랑이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린 호랑이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달리기다. 어린 호랑이는 『개구리낮잠자는숲』에서부터 달려왔다. 노란민들레숲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곳이다. 어린 호랑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다리를 멈출 수 없었다. 자기 다리에 가족과 숲의 동물들의 생사가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휘익! 슉! 휙! 슈욱! 어린 호랑이가 나무들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뭇가지들이 거칠게 울어댔다. 마치 바람과 함께 달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린 호랑이의 귀에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늑대였다. 멀지 않은 곳이었고 울음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살려주세요. 주변에 누가 있으면 살려주세요!”

어린 호랑이는 뛰면서 고민했다.

‘도와줘야 할까?’

어린 호랑이는 누군가의 고통을 모른 척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살려 달라고 우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잠깐이면 될 거야.’

어차피 목적지로 가는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는 위치도 아니었다. 어린 호랑이는 뛰던 방향을 바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갔다. 아빠는 언제나 약한 동물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일부러 다치게 하거나 남의 고통을 모른 척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 금세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주고 가면 돼!’

호랑이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늑대의 소리가 나는 곳을 향했다. 그런데 늑대가 달려오던 어린 호랑이를 보고 겁에 질렸다. 늑대는 기껏 도와주러 온 동물이 하필 호랑이라는 것이 새로운 공포였던 것이다. 늑대는 다리를 달달달 떨었다.

“왜 그러죠? 도와 달라는 소리가 들려서 왔는데~”

어린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늑대에게는 도와주겠다는 말도 무서운 호랑이의 포효로만 들렸다.

“뭘 도와주면 되나요?”

“사냥꾼의 덫에 다리가 걸렸어요. 이것 좀 잘라 주세요. 부탁해요.”

늑대는 이제야 어린 호랑이가 구해주러 왔다는 걸 기억해 냈다.

늑대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리에 걸린 덫을 푸는 게 아니라 다리를 물어뜯어 잡아먹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더 겁이 났다. 늑대는 이제 생각이 바뀌어 호랑이가 그냥 떠나 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다. 어차피 숲 속 누군가가 와서 도와주거나 다른 늑대들이 달려와 도와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저~ 저기. 그냥 가던 길 가세요. 그냥 다른 동물에게 부탁하면 되거든요.”

늑대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아녜요. 제가 도울 게요. 어떻게 해 드릴까요?”

호랑이는 이왕 온 길인데 늑대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고 지나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아요. 어휴~ 숨을 그렇게 몰아 쉬는 거 보니까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가던 길 가세요~”

늑대는 괜찮다며 갈 길을 가라고 말했다. 늑대는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걸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래도 되겠어요? 그럼 저는 가 볼게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어린 호랑이는 늑대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노란민들레숲 방향으로 뛰어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어디선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노루였다. 어린 호랑이는 이번에도 도움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착한 심성을 가진 어린 호랑이는 다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뛰었다. 어차피 이번에도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 노란민들레숲으로 가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멀리 수풀 사이로 노루의 머리가 보였다. 노루는 목이 터지라고 울어 대고 있었다. 어린 노루였다. 어린 호랑이보다 한참 어린 녀석이었다. 호랑이가 노루가 있는 곳에 거의 도착할 즈음, 이번에도 역시 노루가 먼저 호랑이를 발견했다. 노루는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하필이면 호랑이 중에서도 가장 머리가 좋고 무섭다는 흰얼룩호랑이였다. 호랑이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자 잡혀 먹히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말씀을 잘 들었어야 했는데~’

어린 노루는 후회를 했다. 어린 호랑이는 기껏 노루를 도와주러 왔는데 겁을 먹고 실성한 동물처럼 비명을 질러 대는 노루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옆에서 누군가 수풀을 헤치고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다른 노루가 호랑이에게 뒷발차기를 날렸다. 호랑이는 옆으로 펄쩍 뛰어 피했다. 기껏 노루에게 당할 호랑이가 아니었다. 아무리 어릴 지라도 그 정도의 공격으로는 어림없었다.

내 딸을 잡아먹으려고? 차라리 나를 잡아먹어라. 아니라면 나를 먼저 쓰러뜨려야만 할 거야!”

갑자기 나타난 노루는 어린 노루의 엄마였던 것이다.

“저기~ 저는 도와주려고~”

어린 호랑이가 소리쳤다.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썩 물러가라! 내가 끝까지 싸울 거다!”

엄마 노루는 눈을 부라리며 당장이라도 뒷발차기 공격을 할 태세를 했다.

그냥 갈게요. 도와주지 못 해서 미안해요.”

어린 호랑이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노루 모녀를 뒤로 하고 수풀을 향해 몸을 훌쩍 날렸다. 다시 노란민들레숲을 향해 뛰는 것이다. 이제 호랑이의 목적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호랑이는 중간에 두 번이나 시간을 낭비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라도 그 시간 때문에 가족을 구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알고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 같았다.

휙! 슈욱~ 쉭~ 휘익! 어린 호랑이는 번개 같은 속도로 숲 속을 뛰었다. 한참을 달리자 멀리서 은빛여우 두 마리가 어딘가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호랑이는 벌써 노란민들레숲에 들어왔다고 확신했다. 흰얼룩호랑이 역시 시베리아에서 보기 드문 편이긴 했지만 은빛여우도 그에 못지않았던 것이다.

“저기요~ 은빛여우씨~”

어린 호랑이는 은빛여우에게 소리쳤다. 소리를 지른 호랑이는 바로 후회를 했다. 은빛여우 역시 다른 동물들처럼 자기 때문에 겁을 내거나 도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린 호랑이는 급히 몸을 숨겼지만 이미 은빛여우는 어린 호랑이의 존재를 확인했다. 은빛여우는 목소리 만으로도 자신이 호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인데, 정작 호랑이는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은빛여우 두 마리는 잠시 몸을 멈칫하며 자세를 낮추기는 했지만 도망을 치지는 않았다.

“뭐죠?”

은빛여우 중 한 마리가 소리쳤다. 손이였다. 다른 한 마리는 태니였다.

“나는 개구리낮잠자는숲에서 온 빠른발이라고 해요. 우리 마을이 사냥꾼들에게 공격을 당했어요. 도와주세요.”

어린 호랑이는 자기를 소개하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반면 손이와 태니는 경계를 하며 한두 걸음 뒷걸음질 쳤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아니 그러지 말아요. 나는 도움을 요청하러 온 거예요. 아빠 친구 중에 뾰족귀라는 은빛여우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분과 나를 만나게 도와주세요. 우리 마을과 부모님을 구해주세요! 부탁해요.”

어린 호랑이 빠른발은 자기도 모르게 울기 시작했다. 다급한 마음이 가득했던 빠른발에게 정작 도움을 줄 누군가를 만났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던 탓이다. 손이와 태니는 잠시 마주 보더니 태니가 먼저 빠른발에게 폴짝 뛰어왔다. 태니의 발걸음은 굉장히 사뿐했다.

“우리 아빠를 어떻게 아는 거죠?”

태니가 빠른발 앞에까지 다가와서 물었다. 둘은 나이가 비슷했지만 덩치는 대여섯 배 정도 차이가 났다. 아직 어리다고 해도 호랑이는 호랑이였다. 태니는 빠른발의 덩치에 위압감을 느꼈다.

“노란민들레숲의 도움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빠는 뾰족귀라는 분을 찾으라고만 하셨는데.”

“우리 아빠는 사냥꾼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이제 이 세상에는 안 계세요. 대신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동물들의 존경을 받고 계세요. 같이 가시겠어요?”

태니는 지난번 경험 이후로 숲의 일은 어른들에게 상의해야 한다고 배웠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는 싫었다.

“네. 그렇게만 해준다면 좋겠어요.”

“그럼. 같이 가죠.”

태니는 대답과 동시에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사는 동굴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숲 속을 뛰면서 많은 동물들을 지나쳤다. 동물들은 태니가 호랑이에게 쫓기는 것으로 오해하고 급히 숨어들었다. 손이는 그들의 뒤를 따르며 호랑이에게 쫓기는 게 아니니 걱정 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동물들은 호랑이를 목격한 것 자체만으로도 겁을 먹고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듣고 있었다.




마침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동굴 안에 있었다. 태니는 호랑이 빠른발과 마주치자 겁을 먹고 덜덜 떨고 있는 노란여우 할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웃겼지만 꾸욱 참아야만 했다. 웃음을 보였다가는 또 혼이 날 게 뻔했다.

“미리 말씀드리고 나서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요. 너무 급한 일이라서 그냥 바로 왔어요. 할아버지 죄송해요!”

태니가 말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무서운 호랑이 앞이라 겁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직도 다리를 달달달 떨고 있었다. 빠른발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두 발을 앞으로 모아 쭉 편 채 배를 깔고 바닥에 엎드렸다. 겁을 주거나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빠른발이 눈에서 최대한 힘을 풀고 착한 표정을 했다.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역력했다. 맹수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로서는 부끄럽고 치욕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긴장을 풀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그런 것을 따질 상황도 아니었다. 빠른발은 최대한 빨리 마을의 소식을 전하고 부모님을 구하러 가야 한다.

빠른발은 노란여우 할아버지에게 개구리낮잠자는숲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빠른발이 설명하는 사이 노란민들레숲의 동물들이 모여들었다. 손이가 숲을 뛰어다니며 동물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빠른발은 모든 설명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돕긴 뭘 도와요~ 절대 도울 수 없어요!”

동물 중 누군가 소리쳤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늑대였다. 숲 속에서 마주쳤던 그 늑대였다. 빠른발은 늑대가 왜 그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죠? 왜 도움을 주면 안 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빠른발은 늑대를 보며 말했다. 감정 섞인 목소리가 으르렁거리자 늑대는 잠시 위축이 됐다. 자기도 모르게 꼬리가 감긴 것이다. 하지만 늑대는 용기를 내고 대꾸했다.

“여러분.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내가 아까 사냥꾼이 설치해 놓은 덫에 걸려서 도와 달라며 소리를 질렀어요. 그런데 저 호랑이가 다가오더니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배가 고프다면서 저를 잡아먹으려고 했어요. 만약에 저희 가족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는 이미 저 호랑이 뱃속에 있을지도 몰라요.”

늑대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빠른발이 늑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숲 속의 동물들은 호랑이의 우렁찬 소리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역시 호랑이는 모든 동물들에게 있어 무서운 존재였다. 빠른발은 난감했다. 빠른발은 동물들에게 위협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의 목소리 만으로 동물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것 보세요. 호랑이가 우리에게 겁을 주고 있잖아요~”

늑대가 다시 소리쳤다. 동물들은 늑대의 말에 동요했다. 늑대의 말대로 나이가 어린 동물들은 호랑이에게 겁을 먹고 떨고 있었다. 태니와 손이는 빠른발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늑대의 말에 의하면 빠른발의 말도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일단은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빠른발은 매우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아까 도와주려고 하니까 그냥 가라고 했잖아요. 왜 없는 말을 꾸며서 말하는 거죠?”

빠른발은 너무 억울했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여기에 어떻게 와 있는 걸까요? 나를 도와준 건 우리 가족들인데. 그렇다면 우리 가족들이 전부 거짓말쟁이라는 건가요?”

늑대가 주변 동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신의 주장을 다른 동물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했다. 동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빠른발의 말보다 늑대의 말에 무게를 두는 것 같았다. 빠른발은 자신의 결백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답답했다. 도움은커녕 노란민들레숲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했다. 빠른발은 답답한 마음에 울고 싶었다. 게다가 떠나올 때 보았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걱정이 더해졌다.

“저것 봐요. 변명조차 못하고 있잖아요. 거짓말쟁이 호랑이를 우리 숲에서 내보내야 합니다.”

늑대의 말에 숲 속 동물들이 동요했다. 그때였다.

“거짓말이에요!”

어디선가 늑대의 말에 동조하는 듯 소리쳤다.

“보세요. 내 말에 동의하는 동물들이 있잖아요. 다들 저 호랑이를 쫓아버립시다. 여러분~”

늑대가 신이 난 듯이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동물들이 함께 소리치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우리 숲에서 나가라!”

“떠나라! 거짓말쟁이!”

“호랑이는 가라!”

“부끄러운 줄 알아라!”

“사냥꾼이 덤벼든 게 당연하다. 고소하다.”

여기저기 웅성대던 소리가 다들 한 마디씩 목소리가 되어 온 숲에 울려 퍼졌다. 몇몇 동물들은 호랑이가 무서운 나머지 앞서 말하지도 못했다. 비겁하게 뒤에서 다른 동물들 사이에 숨어 소리만 고래고래 질러댔다.

“그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누군가 고함치듯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러자 웅성대던 동물들은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노루였다.

‘아까…… 그?’

빠른발은 노란민들레숲으로 오던 길에 덫에 걸려 도움을 요청하던 그 노루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무슨 할 말이 있냐?”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물었다.

“저 호랑이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에요. 저도 사냥꾼의 덫에 걸려 있었는데 저 호랑이가 와서 도와주려 했어요. 그땐 저도 엄마도 호랑이가 너무 무서워서 도움을 받지는 못했지만 저 호랑이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지금 하는 말에 따르면 엄마아빠의 목숨이 걸린 문제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쉬지도 못하고 뛰어온 건데, 누군가를 도울 시간이 있었겠어요? 그런 상황인데도 호랑이는 저를 구해주려고 했었어요. 아마 다른 동물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 늑대가 덫에 걸렸을 때 그걸 본 친구가 있대요. 물론 호랑이가 도와주려고 했지만 겁에 질려서 호랑이의 도움을 거절했다고 그랬어요.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던데요.”

노루가 길게 설명했다.

“거짓말하지 마! 넌 모르겠지만 분명히 저 호랑이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단 말이야! 증거 있어? 대체 누가 봤다는 거야? 만약에 거짓말이라면 넌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늑대는 노루에게 겁을 주며 협박했다.

“증거? 증거는 몰라도 증인이 셋이나 있는걸? 그렇지 않아도 늑대가 거짓말하는 것 때문에 우리 엄마가 증인들을 데리러 갔어요. 저어기~ 저기 오네요. 증인들 말을 직접 들어보세요.”

잠시 후 다람쥐 두 마리와 밍크 한 마리가 도착했다.

“너희들인가 보구나~ 거짓말할 생각하지 마. 그랬다간 나한테 혼날 줄 알아~”

늑대는 눈을 부라리며 겁을 주었다.

“자! 일단 늑대는 빠지고 너희들이 본 대로 말해보거라!”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늑대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제지하고 증인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네. 할아버지. 늑대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저희도 덫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것 때문에 늑대가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걸 들었어요. 혹시나 도울 일이 있나 해서 급하게 늑대가 있는 곳에 찾아갔어요. 그런데 거기엔 저 호랑이가 늑대와 함께 있었어요. 다람쥐는 저보다 먼저 와 있었는데 저에게 나서지 말라고 했어요. 나쁜 녀석을 굳이 도와줄 필요가 있겠냐고 말이에요. 게다가 일단 힘이 센 호랑이가 늑대를 도와준다고 하니 제가 있어봐야 도움이 될 것도 없었고요. 그런데 늑대를 보니까 네 다리를 달달달 떨고 있더라고요. 호랑이가 정말 무서웠나 봐요. 아마~ 오줌도 지렸을 걸요. 아무튼 늑대는 호랑이가 도와주려 하는데도 괜찮다면서 그냥 가라고 했어요. 숲 속 동물 중 누군가 도와줄 거라고요. 글쎄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땐 늑대 가족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사냥꾼이 잡아갔을 거예요. 하긴, 늑대 털은 사냥꾼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잡아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요.

밍크는 자신의 예쁜 털을 뽐내며 말했다.

“맞아요. 저는 처음부터 다 봤는데 늑대는 완전히 겁쟁이였어요. 우리같이 약한 동물들에게는 힘으로 위협하고 괴롭히고 잡아먹더니 호랑이 앞에서는 완전히 겁쟁이였어요. 무섭다고 오줌이나 싸는 숲 속에서 최고 겁쟁이예요.”

“어쩌면, 시베리아 최고의 겁쟁이 일지도 모르죠.”

두 다람쥐가 말했다. 늑대는 더 이상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땅만 쳐다보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 동물들 사이를 헤치고 달아나 버렸다. 다른 늑대들 역시 자신이 늑대라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잽싸게 달아나 버렸다.

“어쩐지~ 저런 깡패 같은 녀석들이 웬일로 모임에 다 나온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구먼. 호랑이 앞에서 오줌을 지린 부끄러운 자신의 행동을 감추기 위해 호랑이를 내쫓아 버리려 했던 모양이야. 어쨌든 우리 숲에 도움을 요청하러 먼 길을 찾아온 빠른발에게 우리 숲을 대표해서 용서를 비네. 미안해. 빠른발아~”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어린 호랑이 빠른발의 코를 핥아 주었다.







우리 노란민들레숲 동물들은 빠른발에게 용서를 구했어요. 빠른발은 우리를 용서해 주었고요. 하지만 우리 숲의 동물들은 빠른발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사냥꾼에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그저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발이 빠르고 건강한 동물들에게 지원하라고 했지만 선뜻 나서는 동물이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태니, 빠른발에게 도움을 받은 노루 이글대는눈, 시베리안 허스키 화들짝 그리고 아빠의 친구인 갈색곰 무지큰발이 함께 가기로 했죠. 빠르기로 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물론 엄마는 태니가 위험한 임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탐탁지 않은 눈치였지만 그 아빠의 그 아들이네~ 하며 순순히 보내주셨지요. 나는 지난번 덫에 걸려 다친 발이 다 낫지 않아 오래 뛰지 못해서 숲에 남기로 했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절대로 무서워서 핑계 대고 빠지거나 한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늑대처럼 나쁜 동물이 아니거든요. 어쨌든 다들 개구리낮잠자는숲으로 급히 떠났어요. 도움이 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가는 게 중요했으니까요. 빠른발이 앞장서고 모두들 쉬지 않고 뛰었어요. 빠른발은 잠시라도 쉬고 싶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대요. 게다가 곤경에 처한 개구리낮잠자는숲의 동물들을 구해야 하니까요. 빠른발과 함께 간 동물들은 앞으로 우리 시베리아의 동물들을 위해 활약할 중요한 구성원이에요. 용감하고 멋지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정의로운 동물들이죠. 내가 빠져서 아쉽죠? 나는 다리가 아파서 그만~ 아무튼. 이 동물들을 우리 노란민들레숲에서는 『숲의 용사들』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숲의 용사들! 짜잔~ 정말 멋진 이름이죠? 사실 내가 지은 이름이거든요.

숲의 용사들은 바람처럼 빠르게 개구리낮잠자는숲에 도착했어요. 하지만 이미 숲은 동물들의 지옥이 되어 있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 아름답고 조용해서 개구리마저 낮잠을 잔다는 표현을 하던 숲이었는데 여기저기 죽은 동물들이 가죽이 벗겨진 채 널려 있었어요. 사냥꾼들은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숲을 떠난 거예요. 빠른발은 바닥에 엎드려 울었어요. 숲의 용사들은 빠른발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아빠의 흔적도 없고 어디로 잡혀갔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던 거예요. 하늘은 까마귀 떼가 까맣게 채우고 있었고 독수리들도 빙빙 돌고 있었어요. 우린 새들과는 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빠른발의 부모님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물어볼 수도 없었어요. 숲에는 살아있는 동물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만약 있었다 해도 모두 숲을 버리고 멀리 도망쳐 버렸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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