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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Oct 11. 2019

잠자는 땅, 시비리
8화 - 노란민들레숲의 최후

숲의 용사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왔어요. 이제는 빠른발도 노란민들레숲의 용사들 중 한 명이 되었죠. 빠른발은 역시 호랑이답게 용맹스러운 동물이었어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고 위험한 일이 있어도 항상 제일 먼저 앞서 갔어요. 비록 어린 호랑이라고 하지만 용사들 중에선 나이도 제일 많았어요. 물론 무지큰발이 있긴 했지만 동물 나이로는 큰 차이가 없어요. 인간 나이로 치면 무지큰발, 빠른발, 화들짝, 저, 태니, 이글대는눈 이런 순이예요. 숲의 용사들은 노란민들레숲으로 돌아오는 길에 처참한 광경을 수도 없이 목격했어요. 불에 타서 사라져 버린 숲, 산불과 사냥꾼을 피해 달아나다가 강과 계곡에 빠져 죽은 동물들, 가죽이 벗겨진 채 버려진 동물들. 가죽조차 필요가 없거나 예쁘게 생기지 않은 동물들은 그냥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어요. 하늘엔 온통 독수리나 까마귀 떼뿐이었죠. 세상은 새떼로 가득한 것만 같았어요. 그리고 아직까지 불에 타지 않은 숲에는 어린 동물들이 가족을 잃은 채 굶어 죽었거나 살아있다 해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었어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울다가 잠이 든 아기 동물들도 있었어요. 상처의 피가 멎지 않아 고통 속에 죽을 날만 기다리는 동물은 셀 수도 없었어요. 산불을 피하지 못해 불에 타 죽은 동물도 있었어요. 화상만 입고 산불을 피하긴 했지만 털이 다 타버려서 이번 겨울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하는 동물도 많았어요. 어쩌면 털이 타서 사냥꾼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을 수도 있어요. 사냥꾼이 설치해 놓은 덫에 걸린 상태로 굶어 죽은 동물도 있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상태의 동물도 있었어요. 숲의 용사들은 노란민들레숲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구해줬어요. 그래서 떠날 때는 다섯 마리의 동물들이었지만 숲으로 돌아왔을 때는 거의 수백 마리의 동물들이 함께 왔죠. 그래서 노란민들레숲은 다치고, 아프고, 배고픈 동물들로 가득 차 버렸어요. 마음이 여린 이글대는눈은 돌아오는 내내 동물들을 돌보느라 다른 용사들보다 더 피곤했을 거예요. 힘들어하는 동물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일일이 다 챙겨주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고 해요. 노란민들레숲으로 돌아온 숲의 용사들은 노란여우 할아버지에게 바깥 소식을 그대로 전했어요. 과장할 것도 없었어요.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처참하기 그지없었거든요. 더군다나 함께 돌아온 동물들이야말로 그 현장을 경험한 증인이었으니까요. 용사들은 참혹한 현장과 잔인한 사냥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이야기를 들은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비장한 표정으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어요. 이제 다른 숲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방관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노란민들레숲의 동물들은 이제 거의 다 모인 것 같다. 너른바위광장에는 숲의 동물들이 빼곡했다. 착한 동물, 못된 동물, 큰 동물, 작은 동물 할 것 없이 모두 모여들었다. 수천 년을 지내온 노란민들레숲의 역사상 이 정도 규모의 모임은 없었다. 노란민들레숲에서 가장 나쁜 녀석들로 낙인이 찍혔던 늑대들도 참여했다. 이번 위기는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지 다른 동물들의 눈치를 보며 삐죽삐죽 기어들어온 것이다.

“에헴~ 우리 숲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처음으로 거의 다 모인 것 같군요. 에헴~ 다들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에헴~ 지금 우리 숲에는 다른 숲에서 사냥꾼의 습격으로 가족과 집을 잃고 도망쳐 나온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에헴~ 우리 숲에 동물이 이렇게 많았던 적도 없습니다. 아직 자세한 내용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에헴~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에헴~ 지금 우리 숲 바로 옆에 있는 개구리낮잠자는숲과 반짝반짝돌멩이마을은 이미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곳에서 피난 온 동물들도 제법 있지요. 에헴~ 에헴~ 그리고 알다시피 우리 숲의 용사들 중에 화들짝은 인간들의 마을에서 도망쳐 나온 동물인데 그의 말에 의하면, 에헴~ 사냥꾼들의 포악함은 그 어떤 못된 동물들보다 극악무도한 존재입니다. 이제는 우리 동물들을 잡으려고…… 에헴~ 숲에다 불을 질러서 우리의 집까지 모두 태워버리고 있습니다. 에헴~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우리 노란민들레숲의 동물들 역시 집과 가족을 모두 잃고 말 겁니다. 그래서~ 에헴~ 오늘 중대한 사안을 가지고 몇 가지 의논할 게 있습니다. 에헴~ 그것이 뭔고 하니, 에헴~ 우리 노란민들레숲의 지도자를 다시 뽑는 것과 우리가 사냥꾼들에게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에헴~ 그리고 오늘 이 회의를 끝으로 나는 지도자 자리를 내놓겠습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생각지도 못한 의견을 발표했다. 숲의 동물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우리 숲에서 제일 경험도 많고 노련하신 분께서 우리 숲을 계속 이끌어 주셔야만 해요. 대체 누가 할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단 말이에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누군가 노란여우 할아버지의 결정에 반대의견을 말하자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 말에 동의하며 웅성댔다.

“맞아요.”

“이런 중대한 시기에는 경험 많은 할아버지께서 계속 우리를 이끌어 주셔야 해요!”

“옳소!”

“네! 절대 안 돼요!”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동물들을 돌아보며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에헴~ 지금은 나처럼 늙고 힘없고 느려 터진 동물보다 명석하고 용기 있는 동물이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에헴~ 물론, 나는 뒤에서 필요한 부분을 돕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빨리 계획을 잡고 재빠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생사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에헴~ 나도 오랜 시간 동안 깊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니 따라 주길 바랍니다. 자! 지금부터 우리 숲의 새로운 지도자가 될 동물을 추천해 주세요. 에헴~ 자기를 스스로 추천해도 됩니다. 에헴~ 우리는 지금 가장 명석하고 용감하고 정의로운 동물을 지도자로 뽑아야만 합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말을 마치자 동물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서로들 누굴 추천해야 할지 의논하는 것이다.

“무지큰발을 추천합니다. 비록 우리 숲에서 태어난 동물은 아니지만 용감하고 빠릅니다.”

원래 노란민들레숲에서 태어나고 자란 갈색곰이 말했다.

“고슴도치 사각턱을 추천하겠습니다. 어떤 사냥꾼도 고슴도치를 잡아가지 않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냥꾼을 감시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사각턱이라는 고슴도치를 추천하자 여기저기서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안 잡아가는 게 능력이긴 하겠네~”

“하긴 못생겼잖아!”

“턱은 또 왜 사각턱 이래니?”

동물들은 한참을 웃어댔다.

“저희 아빠 땜통을 추천합니다. 용감하고 힘도 세요.”

어린 밍크 한 녀석이 제 아빠를 추천했다.

“우리 까칠한흰수염을 추천합니다. 빠르고 힘도 세고 영리합니다.”

이번에는 늑대였다. 지난번에 빠른발이 도움을 요청하러 왔을 때 거짓말을 했던 그 늑대였다. 갑자기 동물들은 우우~ 하면서 야유했다. 여기저기서 투덜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저리 꺼져~ 너희 같은 거짓말쟁이에게 우리 숲을 맡길 수는 없어!”

“미친 거 아니야?”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그러자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동물들에게 안정을 요구하며 나섰다.

“에헴~ 자~ 여러분. 지금은 추천을 받는 자리입니다. 지난날 어떤 실수를 했던 그건 중요치 않아요. 에헴~ 지금 현재가 더 중요한 겁니다. 만약에 잘못을 한 동물이 추천될 수 없다면 우리들 중 누가 추천될 수 있겠습니까? 에헴~ 에헴~ 그리고 우리들 중 실수를 하고 누군가에게 들킨 적이 있는 동물과 아무도 모르게 실수를 감춘 동물이 있다고 한다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에헴~ 이건 분명히 양심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에헴~ 그리고 말입니다. 한번 실수를 했다고 해서 모든 권리가 박탈된다면 실수를 했던 동물은 앞으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여기저기서 실수를 하고 다닐 겁니다. 에헴~ 더 잘할 이유가 없잖아요. 에헴~ 그러니까 그 동물은 한번 실수를 했다고 해서 실수하는 동물로 낙인찍혀서 다른 동물들이 실수했던 동물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어떤 동물이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겠습니까? 에헴~ 아무튼 우리는 지난 실수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잘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에헴~”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긴 연설을 마치자 동물들은 모두 환호성을 보냈다. 숲 속이 요란했다.

“그렇다면 저도 한번 후보로 출마하고 싶습니다.”

족제비 아저씨 꼬리만한뭉치였다. 동물들이 일제히 꼬리만한뭉치에게 집중하자 한마디 더 했다.

“제가 예전에 우리 숲 동물들에게 본의 아니게 실수했던 적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만회해 보고자 합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꼬리만한뭉치의 출마 의견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붙였다.

“자~ 보세요. 얼마나 용기 있습니까? 에헴~ 저는 동그란엉덩이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그녀는 죽은 뾰족귀의 아내로서, 두 부부는 우리 노란민들레숲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해 왔습니다. 게다가 잡다한 일들까지 손수 나서서 해결해 왔습니다. 큰 동물에 비해 힘이 약한 편이지만 영리하기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섭섭할 겁니다. 동그란엉덩이는 내가 지도자로 있기 전에 우리 숲의 지도자로서 봉사해왔던 은빛여우 『콧수염네가닥』의 딸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숲의 용사인 태니와 손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직접 동그란엉덩이를 추천했다.

“저어기~ 저는 그럴 만한 동물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두 아이의 엄마일 뿐입니다.”

동그란엉덩이가 극구 추천을 거절했다. 하지만 노란여우 할아버지의 한 마디로 더 이상의 거절은 할 수 없었다.

“지금. 개인이 하고 싶고 말고 하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네~ 에헴~ 지금은 우리 숲의 미래가 달린 일을 의논하고 있는 게야. 에헴~ 그리고 누굴 뽑든 그건 우리 숲의 동물들이 결정할 일이야. 내 말을 따르게!”




투표는 생각보다 신속하게 진행됐다.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지정해 준 자리에 가서 서 있으면 숫자로 세어 당선이 되는 방식이었다. 결과는 동그란엉덩이의 압승이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가 제일 기뻐하는 것 같았다. 늑대 까칠한흰수염은 얼마나 숲의 지도자가 되고 싶었는지 투표에서 떨어지자 온갖 거친 말을 내뱉으며 숲을 떠나버렸다. 이번엔 숲을 아주 떠난 것이었다. 노란여우 할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나쁜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동물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추천된 다른 동물들은 숲의 지도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동그란엉덩이를 도와 숲과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기로 했다. 특히 고슴도치는 어떤 사냥꾼들도 거들떠보지 않는 동물이라 숲 속의 모든 고슴도치들과 함께 사냥꾼 마을과 숲의 주변을 경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발이 빠르고 눈에 띄지 않게 숨는 능력을 가진 족제비는 각 동물들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연락책을 맡았다. 밍크는 숲 속 동물들이 비상시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어린 동물들을 대상으로 비상시 훈련을 담당하기로 했다. 갈색곰 무지큰발은 동그란엉덩이를 도와 옆에서 힘을 써야 하는 일을 돕기로 했다. 특히 무지큰발은 이미 뾰족귀와 깊은 인연도 있는 데다 가족도 없었기 때문에 숲을 위해 모든 시간을 쓰고 싶다고 했다.




노란민들레숲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숲의 경계를 맡았던 고슴도치-사각턱의 식구들이 노란민들레숲으로 들어오는 사냥꾼 무리를 발견한 것이다. 족제비-꼬리만한뭉치의 식구들은 부리나케 달려와 동그란엉덩이에게 소식을 전했다. 동그란엉덩이는 밍크-땜통에게 훈련한 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사냥꾼들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라고 했다. 숲 속 동물들은 꼬리만한뭉치의 가족들을 통해 이 암담한 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 숲을 떠나기 시작했다. 노란민들레숲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었다. 태니와 손이는 사냥꾼을 감시하다가 동물들이 제때 도망가지 못할 경우에 사냥꾼들을 유인하기로 했다. 계획된 작전 중 일부였다. 인간에게는 접근하기 가장 어렵고 위험한 지역으로 유인하여 뛰거나 함부로 총을 쏠 수도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동물들은 신속하게 사냥꾼들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동그란엉덩이는 맨 앞에서 동물들을 이끌고 무지큰발은 맨 뒤에서 뒤처지는 동물을 챙겼다.

“손이형! 사냥꾼들의 수가 너무 적다고 생각하지 않아? 빠른발이 살던 숲은 사냥꾼이 엄청나게 많이 왔었다고 했잖아. 우리가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닐까? 우리 숲을 염탐하러 온 걸 수도 있잖아.”

태니가 의심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네 말을 듣고 보니까 이상하긴 한데?”

손이 역시 사냥꾼의 수가 너무 적은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뭔가 이상해. 잘못된 것 같아!”

“빠른발은 어디 있어?”

“어? 같이 왔는데 어디 갔지?”

손이와 태니는 빠른발의 냄새를 찾아 킁킁거렸다.

“저쪽이야! 태니가 먼저 냄새를 맡았다.

“어! 그래. 나도 맡았어! 저기에 엎드려 있는데? 우리도 가보자.”

손이와 태니는 수풀과 나무를 헤치며 빠른발에게 다가갔다.

“쉿!”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챈 빠른발이 눈짓했다.

“뭐야? 왜 그래?”

태니가 물었다,

“역시 사냥꾼들이 다른 쪽에서도 오고 있어! 우리 숲에서는 두 방향에서 몰고 왔었거든. 그러다 한쪽에서 산불을 냈어!”

빠른발이 말했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 숲도 태우려는 것 아닐까?”

손이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사냥꾼 수가 적은 이유가 그거 같아.”

태니가 말했다.

“그렇다면 엄마가 동물들을 이끌고 간 방향에 사냥꾼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잖아.”

손이는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앞쪽에 다가선 사냥꾼들이 숲에 불을 지르는 게 보였다.

“안 되겠다. 엄마에게 가서 빨리 알려야 해!”

태니가 빠른발과 손이를 잡아끌었다. 산불 때문에 멍하니 있던 빠른발과 손이는 정신을 차린 후 뒤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소식을 전해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냥꾼이 불을 지른 곳과 동물들이 가는 방향은 숲에서 가장 짧은 곳이다. 노란민들레숲은 거의 타원형이다. 빠른발, 손이, 태니는 숲을 가로질러 뛰었다. 뒤쳐진 동물들을 데리고 가는 무지큰발의 모습이 보였다.

“큰일 났어요. 사냥꾼들이 불을 질렀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쪽에 사냥꾼들이 지키고 있을지도 몰라요. 탈출로를 바꿔야 할지도 몰라요.”

빠른발과 태니는 동그란엉덩이를 찾아 뛰어갔다. 손이는 무지큰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무지큰발과 손이 역시 동그란엉덩이를 찾아 뛰기 시작했다. 빠른발과 태니는 기나긴 동물들의 피난행렬을 비켜 앞쪽으로 뛰었다. 하지만 동물들이 너무 많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멈추라고 전달해 주세요.”

태니가 소리쳤다. 이런 식으로 뛰면 시간이 늦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니의 말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전달됐다. 마침 동그란엉덩이는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어 화들짝을 시켜 탈출로를 확인하러 보낸 참이었다. 그런데 화들짝보다 나무들이 타는 메케한 냄새가 먼저 도착했다. 역시 탈출로 쪽에서부터 날아온 냄새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화들짝이 평소보다 화들짝 놀란 표정을 하며 돌아왔다.

“불이 났어요. 사냥꾼들이 산불을 냈어요!”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엄마! 어떻게 해요?”

손이가 네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었다.

“북극성 방향으로 가자. 사냥꾼들은 추워서 그쪽을 싫어할 거야!”

“하지만 거긴 먹을 게 없잖아요!”

손이는 동물들이 숲을 떠나 사는 것이 걱정되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다른 길은 없어. 다른 쪽은 반짝반짝돌멩이마을과 개구리낮잠자는숲인데, 거기로 갈 순 없잖아.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없어. 나에게 한 가지 생각난 곳이 있어. 거기로 가면 돼!”

동그란엉덩이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네! 알았어요. 엄마는 손이형과 무지큰발 아저씨하고 먼저 가세요. 제가 화들짝하고 맨 뒤에서 동물들을 챙길게요.”

태니는 곧장 행렬의 맨 뒤쪽으로 뛰어갔다. 화들짝 역시 후다닥 소리를 내며 태니의 뒤를 따랐다.




나무 타는 메케한 냄새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사냥꾼이 불을 지른 곳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태니와 화들짝은 숲을 돌아 북극성 방향으로 뛰었다. 겨울이 코앞이라 북극성 방향에 사는 동물들은 노란민들레숲 같은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 시기다. 태니는 엄마에게 대체 어떤 대안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엄마 말대로 노란민들레숲은 북극성 방향을 제외하고 빠져나갈 수 있는 길도 없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숲의 끝에는 큰 호수가 가로막고 있다. 호수가 조금 얼어 있긴 하지만 과연 동물들이 건널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얼었는지 알 수 없다. 모르긴 해도 호수를 만날 즈음이면 이미 겨울이 찾아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냥꾼들이 얼마나 빨리 따라올 것인지도 예측할 수 없다. 무사히 호수를 건너게 된다면 노란민들레숲과는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다. 빠른발 혼자서는 며칠 부지런히 뛰면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모든 동물들을 이끌고 가는 거라 십여 일은 각오해야 한다. 북극성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식량을 구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나이가 많은 동물과 어린 동물들이 과연 버텨줄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사냥꾼들이 추적만 하지 않는다면 숲의 끝부분에서 이동을 멈추고 당분간 지내야 될 수도 있다.

한참을 뛰어간 화들짝과 태니는 주변이 안전한지 확인했다. 태니는 화들짝을 남겨 두고 다시 동물들에게 돌아갔다. 매일 그런 식으로 이동해야 했다. 겨울 준비를 하기 위해 노란민들레숲으로 내려온 동물들은 다시 북극성 방향으로 가는 것이 걱정이었다. 그들은 시베리아의 겨울에 대해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다. 익숙할 정도로 말이다. 겨울의 시베리아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곳. 추위와 배고픔만이 있는 곳이다. 시베리아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의 겨울을 겪어보지 못한 동물들은 절대 그 고통을 알 수 없다는 걸 모두들 알고 있었다.







노란민들레숲은 바나나처럼 생겼어요. 바나나를 어떻게 아냐고요? 다 아는 방법이 있지요. 아무튼 노란민들레숲은 위아래로 긴 숲이에요. 양쪽으로는 계곡이 있어서 고립된 지역 같지만 물이 깊지 않고 수량 역시 많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건널 수 있어요. 하지만 북극성 방향은 상황이 좀 달라요. 엄청나게 큰 호수는 아니지만 폭이 상당히 넓은 호수가 가로막고 있어요. 우리는 어떻게든 그 호수를 건너야 노란민들레숲을 벗어날 수 있어요. 사냥꾼이 더 이상 추적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노란민들레숲 끝의 호숫가 근처에서 겨울을 나면 될 거예요. 하지만 만약 사냥꾼들이 계속 추적한다면 어쩔 수 없이 호수를 건너야만 하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대체 무얼 알고 있는 걸까요? 너무 다급한 상황이라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뭔가 대단한 게 있는가 봐요. 노란여우 할아버지는 엄마가 뭘 말하는지 알고 계신 것 같았어요. 그나저나 빠른발이 아니었다면 노란민들레숲의 동물들은 도망도 치지 못한 채 산불에 고립되거나 사냥꾼들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을 거예요. 그때 못된 늑대 녀석들 말에 속아서 빠른발을 돕지 않았다면 우리 동물들은……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이렇게 해서 우리 노란민들레숲 동물들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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