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추억소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Aug 29. 2022

나처럼 군생활해본 사람 대한민국에 없다

오늘 술자리에서 딱히 주제가 없어 드라마 몰아보기 유튜브를 틀었다.

신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나 보더라.

최근 어디선가 흘러가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해서 그걸 틀어 보았는데 요즘 군대 실정은 우리 때완 너무 다른 느낌이 들었다.

선배 입장에서 보면 후배들은 편해 보이는 게 인지상정이기에 요즘 군대가 언제 힘들고 말고 할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군대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내 군생활은 아마 그 어떤 누구보다 파란만장할 것 같다.


난 군대에서만큼 스카우트를 많이 당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목록을 보면 이해가 될까?


1. 사단에서

- 민심처

- 전산병

- 통신병

- 정찰대

- 수색대


2. 연대에서

- 수색대

- 전산병

- 통신병


3. 대대에서

- 통신병

- 중화기

- 행정병


4. 본대에서

- OCS 1차

- OCS 2차

- 서울 OO 기무대 (나를 데리러 전방까지 왔었다)


말하자면 스토리가 긴데 어떻게든 일빵빵 소총수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었다. 운이 좋아 짬이 되던 소대장 덕에 소대까지 왔고 운이 좋은지 아닌지 몰라도 M60을 쓰는 분대에 편입됐다.

10.432kg이라는 M60은 내게 너무 가벼웠다.

산쟁이인 내게 화천의 산은 동네 언덕 같았고 군바리들에게 난 거의 신적인 존재였다. 이제야 이런 글에나 쓸 수 있는 거지만 연대 RCT 때 엄청난 성과를 거둬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모두 내 덕을 봤었다. 그 유명한 '이 산이 아닌가벼'를 외친 말년 중위도 있었다. 동물적인 감각이 생겼을 정도로 산에서 둘러먹던 나를 대충 봤던 거다. 내 덕에 훈련 때 큰 성과를 거뒀고 난 포상휴가를 다녀왔다. 당시 화천 최전방에 근무하던 사병들 중 전역할 때까지 포상휴가를 가본 사람은 10% 정도조차 안 됐다. 그런데 난 7번이나 나왔고 9박 10일 일정의 정기휴가에 5일짜리 포상휴가 두 개를 붙여 20일짜리 휴가를 나오기도 했었다. 아쉽게도 훈련이 잇으니 빨리 복귀하라는 연락을 받고 일찍 복귀한 일도 있긴 했다.

당연히 난 소대장보다 높은 역량을 발휘했었다. 군대에서 이론으로 배운 어설픈 소위들보단 내가 우수했던 게 당연한 거다. 체력으로 봐도 그들보다 내가 더 뛰어났었고 말이다.


이걸 뒷받침할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훈련병 때 가스 터졌다는 가상훈련에 방독면 쓰고 적 포탄 투하 상황이 있었다. 난 당연히 완전군장 상태에 방독면 쓰고 가파른 언덕길을 내달렸다. 상황적으로 웃긴 건 우리 소대 우리 분대가 맨 앞쪽에 있었다는 것이고 난 죽도록 뛰다가 뭔가 이상해 멈춰 섰는데 뒤엔 아무도 없었다. 저 몇백 미터 뒤에 군바리들이 즐비했다. 그게 그냥 그랬었다.

본대 배치 후, 대대장은 나 때문에 발이 다 부르터 '저 새끼 맨 앞에 보내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들었다. 당시 내 별명은 곰발바닥이었다. 그들이 산쟁이를 우습게 본 탓이다. 훈련 때 완전군장이라고 군장을 메고 30킬로도 안 되고 10.432kg짜리 M60은 후임들에게 준 적도 없이 나 혼자 매고 다녔다. 게다가 훈련 때 선임이 뻗으면 선임 군장도 내가 맸다. 내겐 그래도 가벼웠다. 우린 최소 60kg은 기본으로 매고 다녔으니까. 군대는 내게 있어 이었다. 못 걷는다고 때리지는 않았으니 세상 군대보다 쉬운 곳은 없었던 것 같다. 몸으로 버티는 건 아무래도 쉬웠던 거다.

난 정이 많은 놈이었는데 군대엔 정이라는 게 없었다.

그런데 이등병 땐 난 선임 되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던 동기도 거참도 후임도 모두 똑같이 되더라. 하지만 난 전역할 때까지 단 한 번도 후임들에게 개인적인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외래어로 누구 시다바리 하러 군대 온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은 건데... 이상한 보복심리 같은 걸 전통처럼 이어가고 있는 군대가 너무 싫었다. 난 완전한 FM 사병이었지만 내 생각을 누구에게도 강요하진 않았다. (아무데나 담배꽁초 버리는 걸 당연하다 한 후임 한 넘만 빼고)

전역하던 날까지 난 내 침상을 개고 나왔다. 훈련 한번 빠진 적이 없었다. 웃기는 건 선임을 흉보던 내 동기, 후임, 선임들은 모두 그들과 같이 행동했다. 난 당시 그들을 모두 손절했다. 초심을 잃은 그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거다.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그들이 지금 어디 가서 내가 언제 그랬다고 말하면서 떳떳할 수 있는지나 모르겠다.


난 군 전역 후에도 비슷했다.

다만 군대와 사회가 다른 건 확실히 있었다.

그건 다음에 또...

군대는 사회의 또 다른 면이라 한다지만 절대적으로 다른 핵심적인 것들이 있다.

아주 미묘한...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소환 9, 뜯어진 청바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