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Oct 26. 2022

37. 대구-상주 왕복 라이딩

이번 대구-상주 구간을 달림으로 해서 드디어 서울-부산 국토종주를 마쳤다. 한 번에 완료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종주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나의 국토종주는 계획하고 시작된 건 아니다. 서울에선 여주까지 수시로 다녔었고, 이화령을 넘을 생각으로 충주-상주 구간을 달린 후 구간별 국토종주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고관절 수술 후 여주-충주 구간을 달렸고 얼마 전 부산-대구를 달린 후 지난 주말 대구-상주 구간을 왕복하여 종주를 마친 셈이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서울-부산 국토종주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이번엔 대구에서 혼자 캠핑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 라이딩을 할 계획으로 토요일 늦은 오후 대구에 도착했다. 대구 하면 막창 아닌가 싶어서 서문시장에 들렀는데 막창 같은 건 파는 곳이 없어서 뭐라도 술안주 할 만한 게 없나 싶어 서문시장을 두 바퀴나 돌았다. 그 유명하다는 서문시장인데 막상 가서 보니 부산 국제시장에 비할 게 아닌 것 같았다. 먹을거리도 별로 없고 볼 것도 딱히 없었다.



혼자 하는 캠핑이라 단출하게 준비했다. 차를 앞에 세우고 폴딩 텐트 대충 세팅한 후 차와 텐트 사이에 간단하게 자리를 마련했다. 요 며칠 날이 쌀쌀했는데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온 탓에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맥주와 소주를 준비했지만 당기지 않았다. 체온이 떨어져서 윈드재킷을 입었지만 버티기 어려웠다. 무릎담요를 상체에 둘둘 말았지만 밖에 오래 머물 수가 없어 먹는 걸 포기하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텐트 안에도 별 다를 게 없었다. 침낭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이른 시간, 맨 정신에 잠을 자기도 힘들어 이런저런 잡념으로 나를 잠 속으로 유인했다. 역시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다음날 새벽, 5시부터 잠을 설치다 해가 뜨기를 기다려 텐트 밖으로 나와 얼린 황태해장국을 녹여 후루룩 마시고 캠핑 장비를 정리했다. 딱히 펼친 것도 없어 십 분 정도면 충분했다.



저번에 대구까지 라이딩 왔을 땐 동대구터미널까지 갔었는데 국토종주길 대구 구간은 낙락섬에서 벗어났었다. 그래서 이번 출발지점 역시 디아크 근처에서 시작됐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난 일단 체중을 줄이기 위해 화장실에서...



초반부터 힘을 빼면 안 되는데 시작부터 맞바람이다. 복도 지지리도 없다. 바람의 방향으로 봐선 상주까지 달리는 내내 맞바람이 지속될 것 같았는데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행히 이른 아침 멋진 풍경을 보며 달리는 기분은 좋았다.



그냥 길이다. 길... 왜관이라는 도시에 직접 발을 디뎌보긴 처음이었다. 아주 작은 도시인데 강변에 정비된 공원이 잘 관리되고 있었다.



왜관을 벗어나 조금 달리니 칠곡보다 나타났다. 초행길이라 낙동강종주 자전거길 이정표만 보며 달렸다.



난 국토종주 스탬프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그냥 이런 게 있구나 하며 지나치고 만다. 여기서 첫 번째 휴식이다. 둘을 두 통이나 담아 왔지만 쌀쌀한 날이라 물도 당기지 않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벌써 구미에 도착한 걸 알 수 있었다. 구미에 와본 게 언제였던가? 고속도로를 지나친 적은 수도 없겠지만 구미에 발을 디딘 건 거의 30년은 족히 넘은 듯했다. 서울에서 구미까지 올 이유가 딱히 없었던 거다.



구미 구간 자전거길은 강변 아래로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도로 옆을 달려 구미를 관통하고 보니 구미 역시 큰 도시는 아니구나 싶었다.



산호대교를 건너며 낙동강 사진을 남겼다. 이 교량을 넘으면 구미 시외 지역이다.



강변길 옆에 갈대가 무성하다. 대구-상주 구간은 거의 평지라서 이렇게 강변을 따라 달리게 되는 편인데 지형지물이 단조로워서 딱히 감흥은 없었다. 지리산 종주를 하듯 단조롭고 따분함이 이어졌다. 평소처럼 무식하게 달리다 체력 탈탈 털리면 대구까지 돌아가는 길이 고생스러울 것 같아서 30km/h 정도를 유지했다. 그렇지 않아도 맞바람이라 고속으로 달리면 체력이 문제가 된다.



구름 사이로 해가 나면 땀이 났다. 마침 쉴 만한 곳이 나와 자전거를 세웠는데 볕이 강해 좀 더 달려 쉬기로 했다. 목적지 상주가 멀지 않았다.



구미보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구미 권역도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랜드마크인 거다.



국토종주 인증센터를 지나치며 사진을 남겼다. 라이더가 제법 보였는데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궁금했다. 라이딩 코스 내내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말이다.



구미보를 건너며 풍경을 담았다. 아까 본 곳이 지금 본 곳 같고, 지금 본 곳이 아까 본 곳 같다.

너무 단조롭다.



단조로운 길은 단조로운 풍경을 만들어 냈다. 굽이진 구간 없이 길게 늘어진 낙동강변 옆으로 이런 갈대밭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 주 전만 해도 벼가 익었나 싶었는데 벌써 수확에 들어간 논이 많이 보였다. 누런 황금 들판을 보니 겨울이 머지않았구나 싶었다. 이제 곧 겨울이면 대부분의 라이더가 동면에 들 거다. 난 평소처럼 겨울에도 타고 다닐 것이고... 사실 겨울에 타면 사람이 적어서 좋다.



중간에 맞바람이 세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벤치가 있었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앉아 쉬기엔 무리였다. 그냥 서서 물 한 모금 마시고 풍경을 감상... 하지만 별 풍경이 없다.



달리면서 봤던 그 어떤 곳보다 누런 벼다.



낙단보가 보였다. 이제 짧은 업힐이 나올 것이고 상주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왕복 200km 거리를 달리는 건데 꽤 달린 셈이다.



낙단보는 멈추지 않고 건넜다. 보를 건너 조금 달리자 낙동강역사이야기관이라는 곳이 나타났다.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 아마 행정의 실패작인 듯했다.



짧은 업힐을 즐긴 후 다시 강변으로 들어섰는데 자전거도로 옆으로 엄청난 낚시꾼들이 보였다. 낚시가 좀 되는 동네인 걸까?



또 단조롭고 단조로운 길이 이어졌다. 이런 구간은 혼자 달리기엔 너무 외롭다. 갑자기 함께 라이딩할 사람이 필요한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혼자 다니는 게 편해서 혼자 타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참깨 수확이 한창이었다. 완연한 가을인 거다.



여기에도 국토종주 중 기록을 남긴 사람들의 흔적이 잔뜩 보였다.



16% 정도 되는 길지 않은 업힐을 올라 숲 속으로 난 좁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타고 내려왔다. 업힐 정상엔 상주보자전거민박 광고물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마침 그러고 보니 이 구간 내내 마트나 편의점 같은 걸 본 기억이 없었다. 가로등 같은 게 없는 시골이라 해가 지면 난감한 상황에 처할 사람도 있을 텐데 필요한 서비스인 것 같기도 했다.



드디어 상주 이정표가 나타났다. 상주가 멀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상주보가 보였다. 상주다. 이번 라이딩의 목적지 상주인 거다. 지난 충주-상주 라이딩 땐 상주보에서 상주터미널로 향했으니 상주보까지 가면 구간의 종착지다.



역시 여기에도 인증센터가 있다.



상주보를 건너며 사진 몇 컷을 남겼다.



별 인프라도 없고 볼 것도 없는 곳에 카라반 캠퍼들이 꽤 보였다. 이유가 뭘까?



싶었더니... 상주 경천섬에서 뭔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 목적지는 도남서원이었는데 행사장 푸드트럭 외엔 식당도 보이지 않았다. 난 점심 식사를 포기하고 커피 한 잔 사서 원샷으로 마신 후 자리를 이탈했다. 워낙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편이라 저런 공연도 소음으로 들리는 지라...



도남서원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 몇 컷 남긴 후 얼굴에 선크림을 찍어 발랐다. 태양이 중천에 올라 볕이 뜨거웠다.




다시 돌아가는 길... 이젠 사진 찍을 일도 별로 없는데~


어쩌다 보니 사진이 잘못 찍혀 내가 나를 찍고 말았다.



가을가을하다. 상주하면 곶감인데 역시 감나무가 많다. 반시로 유명한 청도에도 감나무를 꽤 많이 볼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배가 슬슬 고파오는데 밥 먹을 곳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결국 대구까지 가서 밥을 먹게 되는 건 아닐까 싶던 차에 구멍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갈 땐 보지 못했던 곳이다. 역시 캔맥주는 나의 에너지원~

처음 보는 수제 맥주가 보여 냉큼 집어 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컵라면 ㅠㅠ

게토레이와 생수는 돌아가는 내내 마실 녀석들이다.



컵라면을 먹으며 돌아갈 길을 확인하니 79km 남았다. 설렁설렁 달려도 되는 거리다. 게다가 뒷바람이 나를 밀어주니 이 얼마나 편한 라이딩인가?



올 때 봤던 풍경을 역으로 다시 감상했다. 딱히 달라 보일 것도 없지만 그래도 연신 사진을 찍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남는 힘을 짜내 40km/h를 넘나들며 달렸다. 혹시나 싶어 전조등을 챙겨 왔지만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맘이 편하니까 말이다.



올 땐 달리느라 가까이서 촬영하지 않았던 논 앞에 멈춰 사진을 몇 장 남겼다.



다리 밑에 RC 레이싱 서킷이 보였다. 몇몇 사람들이 레이싱을 즐기고 있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이런 시설을 만들어준 것 자체가 용한 것 같다.



구미를 거의 벗어나는 구간에 낚시꾼들이 보였다. 일요일 오후에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칠곡, 왜관을 거쳐 대구로 가는 길엔 우측으로 해가 길게 누워가는 풍경이 이어졌다. 올해 봤던 풍경에서 뭔가 진한 기운이 느껴졌다. 역시 같은 길이라도 어떤 시간이냐에 따라 다름이다. 거기에 누가 함께 하느냐가 달렸는데 혼자 달리니 뭐~



이제 목적지가 코 앞인데 산등성이로 떨어져 가는 태양을 두고 그냥 달릴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다 왔으니 사진 몇 장 남기려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낙동강의 일몰은 바다에서 보는 것과 다른 차분함이 있었다.

대구 낙동강변 카페들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대한민국 어딜 가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카페는 성업이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가 한산해 사진 한 장 급히 찍어 놨다.

200km를 예상했던 이번 라이딩은 195km에 그쳤다. 업힐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892m나 된 것도 신기한 일이다. 평균 속도 25.5km/h면 나쁜 성적은 아닌 것 같고 그나저나 93kg이 넘는 내 몸무게 덕에 소모 칼로리는 엄청나다. 8,217 Cal라니. ㅋ


이번 라이딩을 끝으로 어쨌거나 서울-부산 국토종주를 마쳤다.

사실 로맨스 소설이자 로드무비 격의 소설인 <로드바이크-사랑시>를 쓰다가 이화령 부근에서 멈추고 말았는데 가보지 못한 구간을 억지로 쓰기 어려워서 나머지 구간을 달린 후 소설 쓰기를 재개할 생각이었다. 이제 다시 이어 쓸 수 있을까? ㅠㅠ

자출사에 있는 <루파고의 자전거 소설> 칼럼에 불을 밝혀본 지가 언제였던가? 이 소설도 빨리 마무리해서 출판해야 속이 시원할 텐데.

매거진의 이전글 36. 기장 장안동 삼각산 임도 라이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