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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Nov 14. 2022

39. 20년 만에 자전거 타고 고성-통영 한 바퀴

충무김밥의 추억

요즘 주말 아니면 자전거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평일에 라이딩을 해본 지가 언제였던가?

주당들이 낮술 당긴다는 말처럼, 자덕들에게 주중 라이딩은 소소한 일탈이다.

이번 주에는 토-일 이틀 양일간 통영과 사천 일대를 둘러볼 생각으로 자전거를 차에 실었다.

물론 숙박은 캠핑이다.

혼자 하는 캠핑이라 짐은 간소하다.

지난번 대구에서 벌벌 떨며 잤던 기억이 있어서 두꺼운 동절기 옷을 한 벌 챙긴 걸 빼곤 달라진 건 없다.

이번에도 역시 라이딩 생각에 밤새 잠을 설치다 일찌감치 시동을 걸었다.

지난여름에 거제도 일주 라이딩을 했었는데 통영이 자꾸 눈에 밟혔다.

남쪽에 살 수 있을 때 남쪽 구석구석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20년 전 방송에서 '한국의 나폴리', '충무김밥'을 보고 밤새 운전해서 내려왔던 적이 있었다.

막상 충무김밥을 받아본 후 너무 실망했던 기억이...

난 그게 애피타이저인 줄 알았으니...




그런데 라디오에서 이상한 소릴 듣고 말았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쌀쌀한 가을이라 살짝 걱정이 됐다.

아무리 평년보다 더운 날이라지만 비가 오면 얘기가 다르니까.



고성군으로 향한 나는 남포항에 주차를 했다.

시간은 9시.

선착장엔 낚시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이른 아침인데 부지런들도 하셔라~



후다닥 자전거를 세팅하고 페달을 밟았다.

아침이라 느낌이 좋다.

이번에도 시계 반대 방향이다.



통영까지 가는 길은 해안도로가 조성되지 않아 14번 국도를 타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은 오로지 나 외엔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홀로 쓸쓸히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업힐에선 댄싱으로 거칠게 올랐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이번에도 역시 사전조사 없이 온 탓에 업힐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벌써 수확인 끝난 논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한 번은 길을 잘못 들어 논두렁과 하천을 사이에 두고 길게 뻗은 농로를 달려야 했다.

정비가 잘 되어 좋은데 군데군데 진흙 덩어리가~



해안도로를 타기 위해 최대한 바깥으로 난 도로를 달리는데 오륜리 방향으로 접어들자 갈림길이 나왔다. 에이앤비더카트인이라는 대형 카트장이 보였다.

대충 둘러본 후 지도를 보니 저산리 쪽으로 난 길은 해안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불필요한 코스라는 생각이 들어 왼쪽으로 난 업힐을 선택했다.

경사가 은근히 세다. ㅠㅠ



역시 통영이다.

여기저기 굴 껍데기와 가리비 껍데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바닷가 풍경은 거제도에 비해 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굴 껍데기가 쌓인 곳을 지날 때마다 썩은 비린내가 숨 쉬는 걸 어렵게 했다.

이 정도일 줄이야.

게다가 분쇄장을 지날 때면 정체 모를 벌레들이 얼굴에 달라붙어 그대로 죽어 버렸다.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분쇄장 등 작업장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



용호리까지 잦은 낙타 등 코스로 진을 빼며 달렸는데 통영시가 보였다.

고개를 넘어 왼쪽으로 가면 북통영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통영시청 방향이다.



고개 정상 부근에서 내려 경관을 촬영해 봤다.

역시 올라오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낙타 등은 계속됐다.

올라가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올라간다.

고도를 좀 올렸다 싶으면 멀리 통영 앞바다가 펼쳐진다.

대부분 눈에 담고 마는 편인데 가끔이라도 정상에 멈추면 이렇게 사진이라도 남겨 둔다.

대부분 달리면서 촬영하는 편이지만 업힐에선 체력이 달린다.



해저터널 옆에 있는 충무교로 넘어가는 길이 마땅치 않아 계단길을 선택했다.

통영 시내에 들어오니 자전거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충무대교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20년 전 이 대교를 건넜던 기억이 선명해졌다.

그때 난 여기 와서 왜 나폴리에 비유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예쁘긴 하지만 나폴리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여기저기 '나폴리'라는 단어를 끼워 맞춘 식당이나 숙박업소들이 보였다.



지나갈 땐 뭔가 싶었던 게 있는데 통영에는 제주해녀상이 있다.

마치 덴마크에 인어공주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

http://kko.to/4yE115pYBR



풍화리 방향으로 진입했다.

이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련하게도 최대한 외곽으로 돌겠다는 욕심에 도로공사 중이라는 안내판을 보고도 무시하고 진입했다.

몇 킬로미터를 오프로드 주행했다.

로드바이크라 펑크 걱정이 심하다.



올라갔으니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가면 또 올라갈 일이 걱정이다.



http://kko.to/Nw4nvUjGyj

혼자가 아니었다면 여기서 차 한 잔 마시고 왔을 것을...

이제 함께 라이딩을 할 사람을 찾아봐야 하려나 싶다.

서울엔 지인들이 많은데 부산이라 참 어렵다.

빨리 서울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통영 바닷가는 어딜 가도 비슷한 풍경이다.

딱히 특색이 없다.

촬영할 이유가 없어 마냥 달리다 보니 짧지 않은 업힐이 이어졌고 달아마루라는 곳이 나타났다.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여기서 달이 잘 볼 수 있나 보다.



클럽ES리조트를 지나 바닷가 도로를 달리는데 낚시꾼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섰다.

마침 조사 한 분이 감생이(감성돔, 감시)를 한 마리 낚아 올렸다.

사진을 남기진 않았는데 30센티는 되어 보였다.

그 정도면 먹을 만한데...

나도 낚시나 올 걸 싶었다.



미남리 마동마을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제 절반 정도 온 것 같다.

여기까지 75km 정도 달렸고 약 60km 정도 더 달리면 된다.

그런데 여기 업힐이 조금 경사가 가파른 편인지 왼쪽 허벅지에서 간헐적인 통증이 느껴졌다.

쥐가 나는 거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싶어 가민 화면을 보니 누적 고도가 벌써 1300미터가 넘었다.

어쩐지 뭐가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영운항을 지나 동원로얄CC 옆에 이런 갈림길이 나타났다.

갈림길이라기보다는 도로 남쪽으로 돌아서 달리는 코스인 거다.

자전거 도로인 것 같아서 돌아서 달리는 걸로 결정하고 접어들었는데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바로 넘어갈 것을 그랬던가?

하늘은 점점 우중충해지고 있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한두 시간 내 비가 올 가능성이 높다.

마음이 급해졌다.



통영한산마리나호텔&리조트가 나타났는데 길이 길인지 모를 정도로 혼재되어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달렸더니 리조트를 관통해 나올 수 있었고 심청이해안길이라는 바닷가 도로를 달렸다.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긴 했는데 관광객도 꽤 많이 보였다.



꽤 멋지게 선 바위라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영 엉망이다.



앗! 여기는 통영등대낚시공원?

얼마 전 낚시 유튜버 방송에서 본 그곳이다. ㅋ



사람이 왜 많은가 했더니 스탬포드호텔앤리조트, 금호통영마리나리조트 등이 나타났다.

뒤로는 완전 관광지다.

산 위에는 스카이라인루지와 케이블카가 있다.



거북선 조형물이 몇 개 보이고 엄청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여름엔 여기도 꽉꽉 차 버리는 모양이었다.

죽어도 여름엔 안 올 거다. ㅋㅋ



올 때 건넜던 충무대교를 다시 건너는데 다리 아래로 목재를 잔뜩 실은 바지선이 지나가는 게 보여 촬영했다.

나름 운치가 있다.

문제는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다는 거다.

나는 지도를 열어 급히 코스를 수정해야만 했다.

허벅지도 좀 당기는 상황이어서 비님을 핑계 삼았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차까지 돌아올 수 있었는데 거의 쉬지 않고 달렸다.

가을에 비 맞고 라이딩했다가는 감기나 몸살이 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올 땐 몰랐지만 체력이 떨어진 몸이라 짧은 낙타등임에도 버거움을 느껴야 했다.

살을 빼든, 체력을 키우던 해야 하는데 둘 다 어려운 일이다.



원래는 복귀 코스가 동쪽 해변을 채우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마감했다.

누적 상승고도가 2,076미터다.

요즘 어딜 가나 2,000미터는 그냥 넘는 모양이다.

거리는 얼마 안 되는데 말이다.

비가 와서 캠핑은 하지 않기로 했다.

또 추위에 벌벌 떨며 캠핑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하니까.

(밤새 비가 제법 거칠게 왔다. 얼마나 다행인지.)


다음 코스는 여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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