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모험 제2화 - 비밀기지

by 루파고

독수리 오남매는 다음날 오전 일찍부터 석천이네 집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당분간 석천이네 집에서 모이자는 석천이의 제안에 석천이의 집을 독수리 오남매의 임시 본부로 정했다.

“내가 아빠한테 말씀드려서 독수리 오형제 만화영화를 다운받아놨어. 석천이하고 의진이, 성진이는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했잖아. 우리 매일 한두 편씩 보면 어때?”

“그거 얼마나 되길래 그래? 그냥 하루에 다 보면 안 돼?”

석천이 말에 의진이가 물었다.

“엄청 많아. 어차피 하루에 볼 수도 없어. 어쨌든 아빠가 하루에 두 편 이상 보면 못 보게 하신다고 그랬어.”

석천이는 거실에 있는 대형 텔레비전을 틀어 독수리 오형제를 재생했다.

“우와~ 형네 집은 정말 부자인가 보다. 세상에 이렇게 큰 텔레비전이 있었어? 우와~”

막내 성진이는 이런 대형 텔레비전은 처음 본 것이었다. 성진이네 집은 아직도 조그만 화면의 구형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성진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우 우리 집에는 이거보다 더더더더 더 큰 텔레비전이 있다. 뭐~”

진택이가 석천이네 텔레비전에 질세라 자랑했다.

“우와~ 이거보다 크면 얼마나 큰 거야?”

성진이는 눈이 휘둥그레져 감탄의 소리를 내었다.

“너희들 그런 거로 자랑할 거면 우리는 집에 갈래! 우리 집은 구닥다리 텔레비전 밖에 없어. 쪼끄만 화면이고 우리 집은 가난해서 이런 거 살 수도 없어. 의진아. 가자!”

동구는 의진이 손을 잡고 나가려 했다.

“도도도 동구야~ 미미미미……”

“미안하다구?”

동구가 진택이 말을 가로챘다.

“그그그 그래! 그그그 그냥 같이 노노~ 놀자!”

진택이는 동구가 가버릴 것이 걱정되어 급히 말을 하려다 평소보다 말을 더 많이 더듬었다. 아이들은 독수리 오형제 애니메이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벌린 채로 감상했다.

“형! 우리 독수리 오형제하고 똑같은 거야?”

애니메이션 1, 2 편을 보고 난 후 성진이는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자신이 독수리 오형제의 진짜 막내가 된 것인 양 신이 나버렸다.

다음날 아침 성진이는 어디서 구한 것인지 파란색 망토를 목에 둘러메고 눈에 힘을 주며 나타났다. 그다음 날에는 제법 독수리 오형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인공 막내 마냥 비슷한 모자를 하나 구해서 쓰고 왔다. 성진을 제외한 아이들은 내심 성진이가 부럽기는 했지만 그러고 돌아다니는 것은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성진이가 부러운 마음은 사실이었다.

“우리! 여기서 이러고 놀지 말고 독수리 오남매의 본부를 옮기는 게 어떨까?”

동구가 제안했다.

“왜? 어디 좋은 데 있을까?”

의진이 역시도 동구의 제안에 호기심이 생긴 듯했다.

“응! 귀신 동굴을 우리 독수리 오남매의 비밀 기지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 어때? 아무도 모르니까 정말 비밀스럽고 좋잖아. 거기에 귀신이 없다는 건 우리 말고는 모르잖아.”

동구는 자기가 제안한 것이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아이들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살폈다.

“난 찬성이야.”

“나나나나 나도 찬성이야.”

그렇게 독수리 오남매의 비밀기지이자 본부는 귀신 동굴로 결정되었다. 만장일치였다.

아이들은 집에서 쓰지 않는 잡동사니들을 집어다 비밀기지에 모으기 시작했다. 이틀째 되던 날, 비밀기지는 아이들만의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특히 조명 부분에 있어서는 석천이네 집에 있던 캠핑용 휘발유 랜턴이 동굴의 어둠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비밀기지의 테이블과 의자 역시도 석천이네 캠핑장비로 꾸며졌다. 아이들은 방학숙제와 점심식사를 동굴 안에서 함께 해결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동굴은 그 어느 곳보다 좋은 역할을 했다. 한여름이었지만 동굴 안은 서늘해서 에어컨을 켜 둔 것처럼 항상 시원하고 모기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마을에서 비밀기지까지 가는 길에서도 대나무 숲만 지나가면 모기들과는 작별이었다. 이틀째 비가 내리고 난 다음날, 아이들은 그들의 비밀기지 안에 갇혀 있는 게 점차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이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게 어때?”

다시 동구의 제안이다.

“정말? 와~ 독수리 오형제. 아니! 독수리 오남매 출격~”

성진이는 신이 났는지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망토를 찾아 목에 걸었다.

“5호 출격 준비 완료!”

성진이는 나갈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하하하~ 아이들은 성진이의 모습을 보고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너희들, 혹시 건넛마을 옆에 있는 우물 이야기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동구는 새로운 모험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모두 처음 들어 본 이야기인 양, 동구 얼굴만 말똥말똥 쳐다보고 대답이 없었다. 동구는 우물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옛날에 우리나라가 광복되기 전 이야기래. 할머니한테서 들었거든.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항상 못살게 굴었대. 좋은 게 있으면 다 빼앗아 가고, 사람들도 마구 때리고 그랬었대. 그런데 어떤 일본 사람들이 그 마을에 사는 예쁜 누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그 누나는 참다못해 우물에 뛰어내려서 죽었대. 얼마 뒤에, 우물에서 그 누나가 귀신으로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면서 우물 근처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대. 누나가 그 우물에 빠져서 죽기 전에는 원래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우물이었대. 그런데, 누나의 귀산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나고부터는 사람들이 누나가 천당에 가는데 보태서 쓰라면서 동전을 던져 넣었대. 그러다 언젠가는 우물에서 굿을 한 적도 있대. 누나의 엄마가 굿을 열었던 건데, 굿을 하고 나서부터 누나의 귀신이 나타난 것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 우물에서 빨래도 하려고 하지 않았대. 기분이 나쁘다고 말이야. 언젠가는 그 우물에 대한 전설을 잘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서 우물 안에 있는 엄청난 동전을 발견해서 꺼냈는데 엄청나게 많은 동전이 나왔대. 그래서 말인데, 우리도 그 우물에 한번 들어가 보면 어떨까?”

동구는 진지한 표정으로 우물에 대해 설명했다.

“형아. 그런데 그거는 독수리 오남매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닌 것 같지 않아?”

성진이가 조금은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진짜 귀신이 나을 것 같아. 가지 말자”

의진이는 코 끝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나나 난 재미있을 것 가가가 같아. 조금은 무무무 무섭기는 하지만……”

“난 해 보구 싶어. 거기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동구야. 우리끼리라도 해보자.”

진택이 마저 반대하고 나섰지만 예상외로 석천이가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할머니가 그랬어. 우물 안에는 아직도 옛날 동전이 많대. 할머니 어릴 때는 할머니 겁이 없는 친구들이 우물에서 옛날 동전 주워서 나온 적도 있대. 내 생각에는 별로 무서울 것 같지 않아. 얘들아. 우리~ 일단 가보기라도 하자. 우리는 용기 있는 독수리 오남매잖아. 우리가 무서울 게 뭐가 있어? 응? 해보자~”

동구는 다시 아이들을 설득하며 졸라댔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의견에 한참을 좌충우돌했다. 하지만 한참 만에 동굴을 답사하는 것으로 결정은 났다. 결정이 나자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자전거를 타고 다시 모였다.

“1호 출격 준비 완료!”

동구는 제 딴엔 독수리 오남매 1호라고 생각해서인지 제일 먼저 약속 장소에 나와 대기했다.

“3호 완료!”

“5호 완료!”

“2호 완료!”

“4호 완료!”

이로서 독수리 오남매는 출격 준비가 완료되었다.

“독수리 오남매 출발!”

동구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1호부터 5호까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5호 성진이의 목에는 역시나 파란 망토가 펄럭이고 있다.

동구는 건너 마을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미리 우물의 위치는 대충 알아두기는 했지만 막상 우물을 찾아가려니 초행길인 마을에서 우물의 위치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독수리 오남매가 건너 마을에 도착하자 망토를 뒤집어쓴 5호 성진이의 유치한 복장은 건넛마을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야! 바보들아~ 어디 바보짓하러 가냐? 어! 수세미도 있고 더듬이도 있네?”

마을 어귀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두 녀석이 독수리 오남매를 먼저 알아보고는 의진이와 진택이를 놀려댔다.

“뭐야? 간질 병신도 같이 있네? 동구야! 왕따들 데리고 어디 가냐? 거기 만화 주인공 같은 땅꼬마는 또 뭐야?”

또래라고 보기에는 키가 멀대 같이 큰 남자아이가 동구의 자전거를 막아서며 말했다.

“너희들이 참견할 바는 아니잖아? 얘들은 내 친구들이야. 그렇게 놀리지 마! 석천이, 진택이하고 의진이, 성진이는 너희들보다 훨씬 더 용기 있는 애들이야.”

동구는 자전거에서 내려 화를 내며 말했다. 사실, 동구는 경수라는 아이처럼 석천이와 진택이를 놀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구 역시 경수가 말하는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해왔었다. 게다가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아는 척 조차 하지 않았고 가급적 피해서 다녔었다. 귀신 동굴 모험 이전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의진이 같은 경우에는 워낙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왔기 때문에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의진이 역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 중 하나였다. 의진이에게 친구라고는 동구 하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독수리 오남매로 뭉쳐있다.

“동구야. 너 미쳤냐? 너~ 얘들하고 놀면 너도 왕따 돼! 그래도 좋아? 왜 바보들하고 노는 거야? 쪽 팔리게!”

경수가 다시 동수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뭔가 잘 모르는가 본데~ 여기서 너보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없는 것 같지 않아? 내가 보기엔 너가 제일 바보 같아 보여!”

동구가 한 마디 쏘아붙였다.

“맞아! 우리 누나하고 형들이 더 똑똑해. 그리고 동구형은 천재야. 우리 독수리 오남매한테 까불지 마.”

동구의 말에 성진이 또 거들고 나섰다. 동구는 성진이 천재라고 표현하자 부끄러웠다. 경수는 화가 나서 얼굴이 농익은 자두만큼이나 빨개졌다.

“뭐야? 너희들 나한테 두들겨 맞고 싶어?”

경수는 화가 나서 소리치듯 말했지만, 사실 경수는 동구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동구는 비록 키는 작지만 힘도 세고 운동도 잘하는 데다 학교에서 씨름도 일등이었다. 게다가 달리기도 잘했다. 경수는 키만 컸지 허당이라는 놀림을 받는 처지였기 때문에 사실은 동구와 싸워봤지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경수는 울그락불그락해진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었지만 동구에게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것 봐! 내 말이 맞잖아. 대답도 못하면서 그렇게 약한 친구들 괴롭히지 말고 너나 잘해. 우리는 귀신 나오는 우물에 가는 중인데 너도 가고 싶으며 따라와도 돼! 우리는 귀신 나오는 우물 안에 들어가서 정말 귀신이 나오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야. 겁쟁이들은 못 가는 곳이지.”

동구가 경수를 비웃는 표정으로 비껴보며 말했다.

“거기 정말 무서운 귀신 나온대! 동구야 너 잘못하면 귀신한테 잡혀가. 동네 형들도 거기서 귀신 봤다고 했단 말이야. 난 안 갈래. 너희들이나 가던지 해.”

경수는 스케이트보드를 집어 들고 후다닥 뛰어갔다.

“겁쟁이.”

독수리 오남매는 경수를 실컷 비웃어 주었다.

“맞아. 겁쟁이야!”

아이들은 뛰어가는 경수를 보며 겁쟁이라고 놀려댔지만 한편으로는 경수의 동네 형들이 무서운 귀신을 봤다는 말에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독수리 오남매는 마을 외곽으로 한참을 돌아서야 우물터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곳은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듯 잡초가 높이 자라 있었다. 우물 옆 커다란 사과나무에는 이제 모양을 갖춰가는 어린 사과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마구 자라고 있었다. 우물 옆에 있는 넓적한 바위 위에는 못생긴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쭈그리고 앉아 노란 눈동자를 통해 아이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누나! 저 고양이 좀 무섭게 생겼어!”

성진이는 의진이의 손을 꼭 쥐고는 잽싸게 누나 뒤에 숨었다.

“성진아. 겁나는구나? 오늘은 우물 탐사만 온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동구는 우물 옆에 거의 다가서 있었다. 동구는 조심스럽게 우물 안쪽으로 고개를 쓱 집어넣었다.

꺄아악~ 동구의 비명이 아이들의 고막을 찢어놓을 듯 울렸다. 우물이 확성기 역할을 해서 동구의 비명 소리가 더욱 크게 증폭되어 들린 것이다.

“동구야!”, “동구형!”

아이들은 일제히 동구에게로 뛰어갔다. 동구는 우물에 머리가 우물 안쪽으로 들어가 상반신이 걸친 채로 꼼짝도 않고 있었다.

왁! 아이들이 동구의 허리를 잡아 뒤로 끌려고 하는 동시에 동구가 벌떡 일어서서는 뒤로 돌아서며 놀라게 한 것이다. 아이들은 얼마나 놀랐던지 진택이를 제외하고는 뒤로 자빠져 버렸다.

“정말 놀랬잖아!”

의진이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찢어지는 고성으로 보복했다.

“거 봐! 귀신은 없다니까. 그건 다 겁쟁이들이 꾸며 댄 이야기야. 그리고 이렇게 해가 쨍쨍한 대낮에 귀신이 어디 있냐?”

동구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다시 우물로 돌아서서 우물의 턱을 잡고 우물 안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너희들도 이리 와서 여기 안쪽을 봐봐!”

“뭐야? 우물 안에 물이 거의 없잖아. 이게 무슨 우물이야?”

“형! 진짜 하나도 안 무서워.”

“나나나 나두 안 무서워. 이런 게 우우우우우 우물이구나.”

진택이와 석천이는 태어나서 우물을 처음 본 모양인지 우물 자체가 신기한 듯했다.

“그럼. 우리는 내일 밧줄 챙겨서 오자! 내가 혼자 들어갈 테니까 너희들이 줄을 당겨주면 되겠다.”

동구는 동굴로 들어갈 계획을 말했다.

“위험하지 않겠어? 그래도 꽤 깊어 보이는데.”

“나도 위험해 보여.”

“나두나두 그래 보여.”

동구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들은 동구를 말리고 싶어 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우리의 모험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그리고 내가 독수리 오남매 대장인데 내가 들어가야지.”

동구의 말에 아이들은 그런 동구가 자랑스럽고 늠름해 보였다.

‘역시 대장이야’ 아이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는 길에 경수라는 아이를 단번에 제압한 것만 해도 멋진 승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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