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모험 제3화 - 탐험

by 루파고

다음날 오전, 독수리 비밀기지에는 네 명의 아이들만 모였다. 벌써 한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석천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얘들아. 석천이한테서 연락받은 적 있어?”

동구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석천이 때문에 슬슬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아이들 누구도 석천이에게서 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서서서 석천이가 겁이 난 게 아아아 아닐까?”

“그럴 리가 없잖아. 진택이 너도 왔는데.”

하하하하~ 의진이의 말에 모두 배꼽을 잡고 웃어젖혔다.

“그냥 우리끼리 가면 되지 뭐. 얘들아. 준비물 다 챙겼지?”

동구는 미리 개인별로 할당했던 준비물을 점검했다. 다행히도 석천이가 준비하기로 했던 것들 중 우물 탐사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은 없었다. 진택이는 집에서 챙겨 온 아버지의 배낭에 동구가 챙겨 온 흰색 줄과 의진이가 챙겨 온 랜턴을 쑤셔 넣었다. 원래는 덩치가 큰 석천이가 배낭을 메기로 했었지만 오늘은 독수리 2호 진택이가 배낭을 메야했다.

“진택아. 배낭이 너를 메고 있는 것 같아. 배낭이 너무 커. 무겁지는 않아?”

의진이가 진택이의 배낭을 툭툭 치며 말했다.

“괘괘 괜찮아. 하나도 안 무거워!”

“진택아. 그거 알아? 너 요즘 말 더듬는 게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것 같아.”

의진이는 며칠 사이에 진택이의 말 더듬는 증세가 예전보다 상당히 나아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맞아! 그런 것 같아. 의진이 말 듣고 보니까 진짜 그래~”

“형! 나도 그런 것 같아.”

동구와 성진이도 의진이 말에 맞장구쳤다.

“지지 진짜?”

“정말이야! 많이 좋아졌어.”

진택이는 한층 신이 나 보였다. 진택이는 스스로도 그것이 큰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그런데. 진택아. 너는 언제부터 그렇게 말을 더듬게 된 거야?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거야?”

의진이는 별 다른 생각 없이 물었지만 진택이의 표정은 어두운 기색을 보였다.

“그그그~ 그건~”

“아냐! 말 안 해도 돼!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진택이가 말하기 꺼리는 것을 느낀 의진이는 금세 진택이의 대답을 말렸다.

“자! 가자. 오늘의 임무는 귀신 우물을 탐사하는 모험이니까. 빨리 출발하자!”

동구는 의진이와 진택이의 어색한 대화를 눈치채고 동굴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5호 성진이가 제일 먼저 후다닥 소리를 내며 1호 동구를 따라나섰다.

4호 석천이가 빠진 독수리 오남매는 귀신이 나온다는 우물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우물 옆 사과나무에 가져온 줄을 묶었다. 막상, 제일 덩치가 큰 석천이가 빠지고 나니 동구는 우물에 들어가는 게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동구는 이미 큰소리를 치고 나온 터라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다. 동구는 독수리 오남매의 대장이라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구야. 석천이가 있어야 되지 않겠어? 석천이가 빠져서 그런지 왠지 기분이 내키지 않아.”

의진이가 다시 불안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괜찮아. 별로 깊어 보이지도 않는데 뭐. 난 줄타기도 잘하잖아. 혼자서도 올라올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동구는 말을 내친김에 동굴 속에 줄의 한쪽 끝을 던져 넣었다. 진택이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동구야. 내가 석천이한테 전화 걸어볼게.”

독수리 오남매 중에 진택이와 석천이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구나 의진이는 휴대폰이 없어서 진택이는 가급적이면 휴대폰 사용을 꺼리는 편이었다. 동구와 의진이네 집은 휴대폰을 사줄 만한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그냥 우리끼리 하자. 겁쟁이 자식은 그냥 빼고 해도 돼!”

동구는 약속을 지키지도 않고 내뺀 석천이에게 짜증이 난 상태였다. 동구는 사과나무에 묶은 매듭을 재차 확인하고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저 안에 귀신이 있는지 확인만 하면 되겠다. 정말 할머니 말씀처럼 옛날 동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구는 주머니를 꽉꽉 채운 동전들을 기대했다.

“동구야 괜찮겠어? 내 생각에는 우리 세 명이 너를 끌어올리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 석천이랑 다음에 다시 오자~”

의진이는 석천이 없이 동구를 우물에 들여보내는 것이 전혀 내키지 않은 눈치다.

“괜찮대도! 나 철봉도 잘하고 줄타기도 잘하는 거 알잖아. 혼자서도 충분히 올라올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의진이는 동구가 하는 말이 사실인 것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운동하면 동구, 동구 하면 운동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동구는 운동에 만능이었다. 게다가 동구는 공부도 잘했다. 동구는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 역시 좋았다.

“알았어. 대신 조심해야 돼. 만약 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너나 나나 할머니한테 엄청 혼이 날 거야.”

의진은 동구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형! 정말 정말 조심해야 돼!”

성진이 역시 동구가 걱정되었지만 의진보다는 동구의 탐험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편이었다.

“괜찮아. 얘들아. 난 여기 우물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귀신이 무서운 거야. 그리고 난 저 아래에 있는 보물이 제일 궁금해. 우리 독수리 오남매의…… 아니지 이제 사남매구나. 아무튼, 우리의 보물 탐사잖아. 자! 내려간다!”

동구는 우물 위 난간에 올라서서 줄을 잡고 우물 안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물 입구는 머리통만 한 돌을 동그랗게 쌓아 올려 그 사이사이에 시멘트로 메꿔 놓은 형태였다. 동구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휴~ 에이 씨! 줄이 너무 얇아서 손에 힘이 안 들어가. 그리고 생각보다 힘들다.”

동구가 끙끙거리며 말했다.

“동구야. 그냥 올라와. 위험해!”

의진이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조금만 내려가면 될 텐데 뭐. 끄응!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까 바닥이 하나도 안 보여.”

동구는 우물 밖에서 볼 때만 해도 우물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았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머리 위로 뚫린 우물 입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만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우물 아래로 내려다보던 아이들은 동구가 우물 속으로 내려가는 내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보기보다 우물이 더 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잠시 후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동구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내렸어. 그런데 물이 생각보다 너무 차가워. 얘들아~ 여기 여기 완전 얼음 같아.”

“정말? 그런데 귀신은 정말 없나 봐. 거기 동전이 있는지나 찾아봐!”

의진이는 약간 흥분된 목소리였다.

“그래. 맞아! 동구형~ 보물!”

“그그그 그래도 동구야. 조심해.”

동구가 물을 휘휘 젖기 시작했는지 물장구치는 소리가 동굴 아래서부터 아이들에게 들려왔다. 아이들은 동구가 빨리 보물을 찾아 나오기를 기대하며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동구야! 랜턴 던져줄까?”

의진이가 물었다.

“응. 아무래도 있어야겠어. 여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어두워. 물도 생각보다 깊어서 가슴보다 더 많이 찼어. 좀 이상해. 어제 봤을 땐 무릎 정도까지밖에 안 되어 보였는데 말이야.”

동구는 진택이가 던져준 랜턴을 켰다. 이젠 우물 밖에 있던 아이들이 동구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아졌다.

“으악.”

랜턴이 켜지고 동구가 랜턴을 바닥으로 비춰보자 동구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동굴 속의 메아리로 확장돼서 돌아 나왔다. 아이들에게는 심장이 쿵! 하고 멈춰 서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동구야! 무슨 일이야?”

동구는 물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랜턴에 비추인 우물 안의 벽면에 맺혀 흐르는 이슬이 반짝거리며 아이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똑! 딱! 똑! 딱! 여태 듣지 못했던 우물 안의 물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짜잔!”

동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놀랬지? 크크크~”

“야! 미친놈아. 깜짝 놀랬잖아!”

의진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나나나 나도”

“형. 진짜 귀신한테 죽은 줄 알았어.”

진택이와 성진이도 소리쳤다.

“미안해! 여기 진짜 보물 있어.”

동구는 손을 위로 뻗쳐 보였다.

“안 보여!”

의진이가 소리쳤다.

“그래? 동전인데 가운데 구멍이 뚫린 것도 있어. 동전이 꽤 많아. 전부 다 옛날 동전인 것 같아. 더 찾아봐야겠어.”

신이 난 동구의 목소리가 우물 바닥에서부터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한참 동안 우물 바닥을 휘젓고 다니던 동구는 소리쳤다.

“나 이제 올라갈게. 이제는 좀 추워졌어. 동전은 벌써 몇십 개나 찾았어.”

“알았어. 빨리 올라와. 비가 올 건가 봐. 그새 구름이 가득 찼어.”

의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응! 알았어.”

동구는 동굴 속에서 주운 동전들을 주머니에 넣은 후 줄을 잡고 벽에 한쪽 다리를 짚어 우물을 오르기 시작했다.

끙! 동구는 겨우 손을 한번 옮겼을 뿐인데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 왜 이렇게 힘이 안 들어가지?’ 동구는 혼잣말을 하며 다시 힘을 주어 우물을 오르려 했다. 그러나 동구는 손을 한번 옮기기가 무섭게 다시 바닥에 발을 디뎌야만 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동구는 아무래도 위에서 당겨줘야 할 것 같았다. 동구는 자신이 잡고 내려온 줄이 우물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슬에 젖어 미끄러지는 것도 문제지만 줄이 너무 얇아서 손에 전혀 힘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려올 때 했던 걱정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우리가 당겨 줄 테니까 신호해.”

의진이는 벌써 동구가 올라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눈치를 채고 소리쳤다.

“진택아. 성진아. 우리 셋이 동구를 끌어올려야 할 것 같아.”

의진이는 불안한 마음이 점점 불거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날씨마저도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다. 동구는 줄 끝에 매듭을 해서 손잡이를 만들고 소리쳤다. 동구는 아이들과 함께 구령과 호흡을 하며 힘을 주었다. 줄은 금세 팽팽해졌고 동구는 아이들이 끌어주는 줄에 체중을 실어 보았다. 그러나 세 아이들의 힘만으로 동구를 끌어당기기에 역부족인 듯했다. 결국, 동구는 우물 바닥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다시 있는 힘껏 줄을 당기려 시도했지만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동구와 아이들은 다른 방법을 모색했지만 다른 방법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동구는 춥다는 느낌을 넘어 이빨이 다다닥 하며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의진아. 그리고~ 나 아까보다 많이 추워. 빨리 올라가고 싶어.”

동구는 춥기도 했지만 겁도 났다. 의진이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동구를 안심시켜 보려 했다.

“진택아. 혹시 도움을 청할 분들 없을까?”

의진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택이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아~ 아빠한테 전화해볼까? 그그그 그런데 아빠는 읍내에 계계계계 계셔서 일찍 오실 수는 어어어 없는데.”

“안 되겠다! 진택아. 전화 줘봐. 그냥 119에다 전화하는 게 낫겠다. 그리고 혹시 이장님 전화번호 알아? 선생님이나. 아니면 동네 어른들이라도.”

의진이는 진택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이미 표정을 보고 부탁할 사람들 연락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우선 119에 먼저 신고하는 게 순서 같았다. 겨우 두 번의 신호만에 전화 연결이 됐다. 하지만 의진이는 동네 지리를 잘 몰라서 구조대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구조대는 지역 이장님께 우물의 위치를 파악해서 최대한 빨리 현장으로 오겠다고 했다. 의진은 구조대와 통화가 끝난 후 바로 석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석천이 전화인데 누구니?”

석천이 아빠였다.

“저는 석천이 친구 의진인데요. 석천이 좀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해요. 급한 일이라서요.”

의진이는 급박한 마음처럼 빠른 속도로 말했다.

“어~ 그래? 오늘 오전에 석천이가 좀 아파서 병원 다녀왔거든. 오늘 만나기로 했다는 친구들인가 보구나? 석천이는 화장실 갔는데 조금만 기다려봐.”

잠시 후 석천이가 전화를 돌려받았는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의진이니? 미안해. 오늘 오전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다 왔어. 우물에는 잘 다녀온 거야?”

석천이 목소리에는 미안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석천아. 어른들하고 빨리 우물로 와줘. 동구가 지금 우물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어. 동구가 많이 춥대. 곧 비도 내릴 것 같아. 119에는 신고했는데 여기 위치를 모른대. 나도 설명을 못 하겠어. 내 생각에는 구조대 아저씨들이 아무리 빨리 와도 30분은 걸릴 것 같아. 빨리 좀 와줘.”

“응! 알았어. 아빠랑 최대한 빨리 갈게. 기다려!”

통화가 끝나자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투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나기 같지만 금세 그칠 비는 아닌 것 같다. 하늘은 온통 시컴해져 버렸다. 멀리서부터 하늘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진택이는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큰 비가 오려면 아직은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택이는 소리 내어 숫자를 세었다.

“하 하나. 둘. 셋…… 스스 스물 하나”

가끔씩 말을 더듬긴 했지만, 스물하나까지 숫자를 세자 콰르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오후 4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방은 저녁이나 된 것 마냥 어두웠다.

“동구야. 석천이 통화했어. 아빠랑 빨리 온대. 거기 많이 추워?”

의진이는 우물에 머리를 넣고 소리쳤다. 매우 어두워졌지만 동구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어~ 의진아~ 근데 좀 많이 추워졌어. 이제는 덜덜덜 떨려~”

동구의 말을 듣는 사람이 추위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이빨을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 역시 힘이 없었다.

“동구야. 추워도 조금만 참아. 금세 오실 거야. 무섭지는 않지?”

의진이는 동구에게 겁이 나지 않느냐며 물었지만, 사실은 의진이가 점점 더 겁을 먹고 있었다. 귀신 우물에 들어가서 보물을 훔친 것 때문에 귀신이 저주를 내려 갑자기 비까지 오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당사자인 동구는 벌써 귀신이 비를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생각은 꼬리를 물다 못해 동구 자신은 귀신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동구야. 비가 와! 이제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어.”

의진의 말에 진택이는 다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두두 둘. 셋. 네네네 넷…… 열둘. 콰르릉~”

비구름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증거였다. 천둥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성진이 너는 사과나무 밑에서 비 피하고 있어. 추우니까 감기 걸려.”

“싫어. 누나. 무섭단 말이야. 어엉~~”

성진이는 꾸욱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괜찮아. 서서서 성진아. 왜 울고 그래…… 요요요 용기 내야지.”

진택이도 성진이 어깨를 두드리며 울음을 달랬다.

“싫어. 무서워. 귀신 나올 것 같단 말이야. 동규 형이 귀신한테 잡아 먹히면 어떻게 해?”

성진이는 아예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의진이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동구가 성진이 하는 말을 듣고 겁이 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동구야. 조금만 기다려. 춥지? 버틸 만 해?”

이제는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고 우물 안에서 그대로 비까지 맞고 있는 동구가 겪고 있을 공포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콰지직! 이제는 아이들 머리 위에서 번개가 번쩍거렸다. 아이들의 머리칼이 쭈뼛 섰다. 번개는 두 번이나 번쩍거렸고 온 세상이 대낮처럼 환해지는 듯했다.

“하나. 둘!”

이제는 비구름이 지척이라는 듯 번개와 거의 동시에 세상이 무너질 듯 고막을 찢으며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꽈르르릉~~ 꽈릉~ 쾅! 동구는 우물 안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추위, 귀신에 대한 공포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울고 싶어 졌다. 할머니 생각도 났다. 돌아가신 아빠 생각도 났다. 추위를 버텨 보려고 이를 꽉 악물고 있던 동구는 이제 이를 악물고 공포와 싸우고 있었다.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빗방울은 콩보다 컸다. 빗방울이 몸을 때리는 것도 아프게 느껴졌다. 모든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진택이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석천이니?”

“의진아. 아빠랑 나오긴 했는데 어둡고 비까지 와서 어딘지 잘 못 찾겠어. 여기는 지금 지난번에 동구가 경수라는 애 혼내준 데 근처야. 어떻게 가야 하는지 설명 좀 해 줘!”

의진이는 아무래도 석천이는 한 번밖에 와보지 않았으니 찾기가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진이는 차근차근 우물까지 오는 길을 설명했지만 이미 도착했어야 하는 시간임에도 자동차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석천이 아빠는 다시 경수를 만났던 위치까지 돌아가서 설명을 듣고 오는 길을 찾아보았지만 우물을 찾아오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의진이 눈에 들어온 불빛은 119 구조대 차량의 불빛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석천이 아빠의 차가 도착했다.

“아저씨! 여기요! 이 안에 제 친구가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빨리 좀 구해주세요.”

의진이는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진택이와 성진이는 119 구조대 아저씨들 도움으로 비를 피하고 흠뻑 젖은 몸을 수건으로 덮어 말리고 있었다. 의진이도 아저씨들에게 이끌려 갔다. 구조대원은 신속하게 동구를 우물 속에서 꺼내 올렸다. 동구는 얼마나 추위에 떨었는지 입술과 온몸이 하얗게 질려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솜털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돋아난 닭살 위에 화가 난 것처럼 하얗게 서 있었다. 석천이는 영문도 모른 채 아빠와 손을 잡고 의진이 곁에 서서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동구의 까만 얼굴이 하얗게 보였다. 추위와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구조대원 아저씨들은 동구의 얼다시피 한 몸을 따듯하게 녹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아이들을 잡아먹을 듯 세상을 하얗게 질리게 만들던 번개는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던 천둥소리를 몰고 점차 멀어져 갔다.

‘하나. 둘. 셋. 넷…… 열일곱. 콰르릉!’ 진택이는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이제는 천둥소리도 작아지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자 동구는 좀 안정이 되었는지 공포에 쌓여있던 표정이 사그러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추운지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었고 몸을 덜덜덜 떨고 있다. 의진이는 처음으로 동구의 두려움과 환희로 찬 눈물을 본 것 같았다. 어느새 먹구름은 거의 다 지나가 버리고 따가운 햇살이 다시 남은 구름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강한 햇빛이 어둠을 완전히 몰아냈다. 이제 기껏 6시밖에 되지 않은 시간인데 빛을 잃은 깜깜한 한밤중의 어둠이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독수리 오남매는 불과 한 시간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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