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안녕하세요?”
“엉~ 의진아 왔구나~”
동구네 할머니다.
“할머니. 동구는 어때요?”
“엉~ 열은 다 내렸는데 아직도 자고 있어. 아직 힘이 드는가 봐. 튼튼한 녀석인데 어제 비 맞고 돌아다녀서 감기 몸살이 있었던 것 같아.”
동구네 할머니는 70대 초반인데 벌써 허리가 많이 휘어져 있다. 동구는 할머니와 둘이서 동네에서 제일 위에 있는 집에 살고 있다. 의진이와 성진이는 동구네 바로 아랫집에 산다. 동구네 집 다음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집이다.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 것 없어요?”
“아니야. 괜찮아. 그나저나 너희들은 어제 같이 돌아다녔다면서, 왜 동구 녀석만 칠칠치 못하게 감기나 걸리고 다니는 게냐? 의진이 너는 감기 안 걸렸어? 성진이는 괜찮고?”
동구 할머니는 어제 동구가 귀신 우물에 들어가 사고가 날 뻔했던 소식은 듣지 못하신 것 같다. 동구는 절대 할머니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동구는 할머니에게 혼나는 게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의진이는 동구가 할머니께서 걱정하실까 염려가 되어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구는 몇 년 전 부모님이 죽고 나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동구네 아빠는 일도 잘하고, 동구처럼 똑똑한 데다 대학까지 나와서 면사무소에서 일했었다. 그런데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해서 동네 사람들은 동구 아빠가 미쳐서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동구네 집은 아빠의 연금과 할머니에게 나오는 돈으로 살고 있어서 크게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동구 대학 때까지 공부를 시켜야 한다면서 거의 모든 돈을 저축했다. 다행히도 동구는 아빠를 닮아 공부를 잘했다. 의진이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동구보다 항상 뒤처졌다. 동구는 매일 놀기만 하는 것 같았지만 공부를 잘했다. 동구 아빠는 의진이 아빠와 선후배 사이라고 했다. 동구와 의진이처럼 어릴 때부터 같이 크고 자랐지만 동구 아빠는 대학교에 갔다가 다시 시골로 돌아왔고 의진이 아빠는 동네에서 농사를 짓다가 시골에서 필리핀 국적의 엄마와 결혼했다. 의진이는 엄마를 닮았고 성진이는 아빠를 닮았다. 의진이는 엄마를 닮아 많이 새까만 편이었지만 성진이는 시골사람 같지 않게 피부가 흰 편인 아빠를 닮아 하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다. 의진이는 그게 제일 불만이었다. 의진이는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아이들의 놀림 대상이었다. 하지만 성진이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공부만 잘해도 친구들이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의진이는 동구만큼 똑똑하고 공부를 할 하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해왔다. 언젠가 의진이는 같은 반 친구에게서 외국인 튀기가 공부도 잘해서 더 싫어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의진이는 엄마를 닮은 자신이 너무 싫었지만 이제는 많이 적응한 상태였다. 물론, 왕따는 벗어나지 못했지만 대신 의진이에게는 동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을 왕따 취급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그저 친구로 대해 주는 독수리 오남매까지 생겨서 최고로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그런 동구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몸져눕자 자기 일처럼 걱정이 되었다. 의진이는 동구가 우물에서 올라오지 못했을 때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한 것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자신이 동구를 살린 것이라는 자부심이 생긴 것이다. 독수리 오형제처럼 독수리 오남매 역시 친구와 형제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이다. 물론, 목숨을 바친 것은 아니었지만……
다음날 오전, 독수리 비밀기지에는 독수리 오남매가 모두 모였다. 독수리 1호인 동구가 부상을 딛고 독수리 오남매에 합류한 것이다.
“얘들아. 걱정했지? 미안해.”
“우리는 괜찮아. 이제 감기는 다 나은 거야?”
석천이가 물었다.
“응. 어제는 좀 아팠는데 오늘 아침엔 멀쩡하더라구. 봐봐. 어때 보여? 나는 석천이가 더 걱정이었어.”
아이들은 석천이네 가족이 왜 귀농을 해서 예천까지 내려왔는지 알고 있었다. 석천이는 몸이 허약한 데다 가끔 이유 없이 쓰러지는 병이 있는데 병원에서는 병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석천이나 석천이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았지만 동구는 귀신 우물을 탐사하러 가던 날 석천이가 또 쓰러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봄에 학교에서 석천이가 운동장에서 쓰러지고 난 후 선생님은 친구들에게 석천이를 잘 보살펴 주라고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보살펴 주기는커녕 왕따 취급을 한 것이었다. 석천이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석천에게서 전염병이 옮을 수 있다느니, 죽을병에 걸렸느니 하면서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 소문내었다. 게다가 동구, 의진, 진택이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석천이와 가깝게 지내려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소문이 진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동구야 상관없겠지만 의진이와 진택이는 굳이 왕따인 석천이와 친하게 지내서 좋을 것이 없었다. 의진이와 진택이 역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지만 석천이와 어울리면서 괴롭힘까지 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석천이 아빠는 시골로 귀농하면서 석천이의 건강에만 신경을 썼지 진택이가 시골에서 왕따를 당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적어도 순박한 시골 아이들만큼은 왕따 같은 것 없이 친하게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건 석천이네 부모님의 완벽한 오산이었다.
석천이 아빠는 귀농 후 말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던 석천이가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독수리 오남매가 되면서 다시 말수가 많이 늘어나서 마음이 놓였다. 석천이 아빠는 독수리 비밀기지의 존재와 위치를 아는 유일한 어른이다. 석천이 아빠는 독수리 오남매가 사용할 여러 가지 캠핑용품을 비밀기지에 가져다 설치해 주었다. 그 안에서 공부도 할 수 있도록 간식도 많이 사다 재어 주었다. 아이들은 물질적으로도 풍족한 독수리 비밀기지가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얘들아. 내가 너희들에게 줄 선물이 있어.”
동구는 주머니에서 동전 다섯 개를 꺼내 손바닥을 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이거 엽전이라는 옛날 돈이라고 하셔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상평통보라는 돈이더라고. 내가 주워온 동전이 27개였는데 상평통보는 딱 다섯 개만 있었어. 우리가 하나씩 나눠가지면 될 것 같아. 우리 독수리 오남매의 표식이야. 어때?”
“좋아. 형! 난 찬성이야!”
동구의 제안에 성진이가 제일 좋아하며 반겼다.
“우리 그럼 이거 목걸이로 만들어 쓸까?”
의진이가 다시 제안했다.
“나나나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이이이 잊어버릴 걱정도 어어 없고 말이야.”
만장일치로 목걸이를 만들기로 결정되었다. 목걸이를 만드는 것은 의진이가 맡았다. 의진이는 당연하다는 듯 상평통보를 받아 쥐며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우물 안에서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처음에는 추워서 죽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천둥번개 치고 그러니까 정말 무서워서 죽겠더라. 태어나서 그렇게 무서운 건 처음이었어. 얘들아~ 정말 고마웠어. 너희들 아니었으면 나는 죽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석천아. 오해해서 미안해. 나는 네가 무서워서 우물 탐사하는데 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나저나 몸은 괜찮은 거야?”
동구는 우물에서 자기가 겪은 공포에 대한 체험담을 이야기했다. 동구는 조리 있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소질이 있었던지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운 채로 집중해서 들었다. 꼭, 자신이 직접 우물 속에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가끔 있는 일이야. 서울에 살 때보다는 많이 좋아진 편이긴 해. 사실 서울에 살 땐, 언제 쓰러질지도 모르고 차도 많고 위험해서 아빠하고 엄마가 항상 신경 쓰셔야 했었어. 하지만 여기서는 너희들도 있고 여긴 위험한 것도 별로 없는 데다 내가 기절하는 횟수가 정말 많이 줄어들었어. 의사 선생님이 도시보다 시골이 건강에 좋다고 하셨거든. 그래서 서울 살 땐 거의 매주 캠핑을 다니다가 귀농 준비해서 아예 이쪽으로 이사를 오게 된 거야.”
석천이는 서울에 살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이들은 석천이가 서울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이 곳까지 이사를 와서 살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그동안 석천이를 멀리 했던 것이 너무 미안했다.
“석천아. 너네 아빠는 서울에서 무슨 일 하셨는데?”
의진이가 물었다.
“응! 아빠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야. 여기서도 프로그래밍 일을 하고 계셔. 이제는 인터넷이 좋아져서 굳이 서울에서 살지 않아도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시대.”
“우와~ 형네 아빠 진짜 멋지다.”
성진이는 프로그래머라는 말에 반해 눈이 말똥거렸다.
“석천아. 네 아빠는 정말 컴퓨터도 잘하고 좋으시겠다. 너도 컴퓨터 잘해?”
동구는 석천이가 매우 부러운 눈치다.
“나는 잘 못해. 아빠는 내가 컴퓨터나 만지는 것보다는 너희들과 나가서 노는 걸 더 좋아해. 그리고 아빠는 너희들을 정말 좋아하셔. 너희들을 언제라도 집으로 초대하라고 하셨어.”
아이들은 모두 반기는 눈치다. 당연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석천이는 동구 아빠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동구보다 의진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석천이는 뭔가 잘못한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미안해. 동구야!”
“괜찮아. 이제는 슬픈 일도 아닌걸. 아빠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 나는 할머니랑 둘이 살고 있어. 아빠는 정말 멋진 분이셨어. 아빠는 우주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고 계셨거든. UFO나 외계인에 대해서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고. 예천우주과학관 가봤니? 난 아빠랑 거기 정말 자주 갔었어. 아빠는 내가 두 살 때부터 거기 데리고 다니셨대. 거기 직원들도 많이 알고 계셨어. 면사무소에서 일하고 계셨는데, 그래서인지 예천우주과학관에도 아는 분들이 많으셨어. 난 거기 천문대에 있는 천체망원경으로 우주에 있는 별도 많이 봤어. 진짜 멋있는데 언제 한번 너희들도 같이 가볼래?”
동구의 제안에 아이들은 모두 찬성했다. 학교에서 견학 가는 것 말고 독수리 오남매 대원끼리 가는 게 너무 기대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갈 땐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줄 서서 보는 것도 답답했지만, 따돌리고 눈치 주고 괴롭히고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구경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할 게 있어.”
동구가 말했다.
“뭔데?”
“우리는 의형제잖아. 그러니까 나는 우리 사이에 비밀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해. 서로 말하면서 기분도 나쁘게 하면 안 되고. 싸우지도 말아야 하고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서로 자기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 서로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도 하고 어때?”
아이들 모두 동구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럼. 우리 이제 말하는 건 기분 나쁘고 그러면 안돼. 진심에서 말하는 거니까 서로 이해하면 싸울 일도 없을 거야. 우리는 목숨도 구해준 사이니까. 그렇지?”
“그래~”
“그런데 우리도 독수리 오형제처럼 우리끼리 쓰는 구호 하나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그거 있으면 멋질 것 같아.”
석천이가 제안했다.
“나나나 나두 머머 멋질 것 같아.”
“내가 안 그래도 미리 준비한 게 있지롱~ 인터넷 찾아서 알아낸 건데 우리는 다섯 명이니까 숫자는 5잖아. 서로 같이 서 있으면 오각형이고. 오각형은 영어로 펜타라는 단어를 쓴대. 우리 구호를 펜타라고 하면 어떨까?”
석천이는 자랑스러운 듯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서 있다가 주먹을 쥔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렇게 해봐. 그리고 ‘펜타’라고 외치는 거야.”
아이들은 주섬주섬 모여 주먹을 벌려보았다.
“자 이제 같이 외치는 거야. 펜타라고! 하나. 둘. 셋.”
“펜타!”
아이들의 목소리는 독수리 비밀기지 안에서 우렁차게 메아리쳤다. 아이들은 동구의 말에 모두 따르기로 결정하고는 세 번이나 더 연습했다. 처음엔 서로 구호를 외치며 마주 본 얼굴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왠지 자랑스럽고 스스로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특히 막내 5호 성진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진택이가 말을 더듬게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동구는 미안한 나머지 진택이의 표정을 살폈다.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돼!”
“아아아 아니야. 나나나 나는~ 음~ 사실 다섯 살 때. 부모님 이이이 이혼하시고 아빠가 아빠가. 음~ 매매매매 매일 때때 때렸어. 그그그 그리고 그때쯤부터 마마 말을 더더더더 더듬기……”
진택이는 말을 하며 울먹울먹 했다. 아이들은 진택이의 말을 듣고 아직도 아빠에게 매를 맞는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의진이는 진택이의 말에 심각할 정도로 놀라는 눈치였다.
“아 아니…… 음~ 지금은 아아아 안 때리시는데…… 아아아 아빠가 많이 미미 미안해하셔.”
진택이가 손사래를 털며 말했다.
“그랬구나. 그런데 진택아. 너 예전보다 말을 좀 덜 더듬는 거 알고 있어?”
“응! 조금. 너너 너희들 만나고서부터 마마 말도 조금 덜 더더더 더듬는 것 같아.”
“나는…… 우리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야. 우리 엄마는 꼭 나랑 똑같이 생겼어. 성진이는 아빠 닮았고. 난 그게 부끄러웠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아이들이 놀려도 이제는 단련이 돼서 괜찮아. 예전엔 동구가 있어서 왕따 당해도 신경 안 썼는데 이제는 너희들까지 생겨서 난 더 좋아. 고마워~”
의진이의 말에 진택이는 흐르다 만 눈물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말했다. 의진이의 눈은 초롱초롱, 말똥말똥했다. 정말 씩씩해 보였다.
“의진이가 제일 씩씩한 것 같아! 의진이가 1호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석천이가 의진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이들 모두 동굴이 떠나가라고 실컷 웃어댔다. 고민이 사라지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독수리 오남매의 모험은 계속 진행되었다. 대신, 석천이네 아빠는 위험할 수 있으니 모험을 떠나기 전에는 항상 언제 누구와 어디로 떠나는지 미리 알려주고 떠나는 것을 약속받았다.
세 번째 모험은 밤 12시면 처녀귀신이 나온다는 귀신 고개다. 귀신 고개에 대한 정보는 동구네 할머니에게서 얻어냈다. 동구네 할머니는 평생 예천에서 나고 자라서 예천의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사람이 빠져 죽어서 물귀신이 나온다는 저수지, 목을 매달고 죽은 누나가 귀신이 되어 나온다는 나무, 무서운 귀신이 나와서 살던 사람들이 이사를 가버리는 바람에 폐가가 되었다는 귀신의 집, 천년 묵은 여우가 나타나 사람들을 마구 잡아갔다는 숲 등 독수리 오남매는 여름방학 내내 모험을 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귀신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중에서도 귀신 고개와 폐가는 밤 12시에 맞춰서 가야 했기 때문에 석천이 아빠가 함께 동행했다. 폐가에서는 석천이 아빠가 하도 귀신을 무서워해서 독수리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