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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Mar 10. 2023

동백꽃은 아직 일러 보지 못했고

고창, 선운산, 선운사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는 이십 대 무렵 벽을 탈 목적으로 찾았던 선운산에서 만난 시다.

초봄의 연두색을 너무 좋아하는 난 그 후로 봄만 되면 2박 3일 혹은 3박 4일 일정으로 고창, 지리산, 광주 일대를 쏘다녔다.

업무에 치여 한동안 선운산을 찾지 못하다가 약 사 년 전 자전거를 타고 군산에서 영광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라이딩을 했었는데 약 십 년 사이 고창이란 고장을 꽤 많이 변해 있었다.

그리고 또 몇 년 동안 업무에 쫓겨 살다 보니 다시 고창을 잊고 지냈는데 이번엔 마침 고창에 업무가 있어 다시 방문하게 됐다.

선운산이 소재한 고창이란 곳은 언제부터인지 내 제2의 고향 같은 곳이 되어버린 곳이다.

그래서인지 '선운사 동구'라는 시는 머릿속에 콱 박혀버렸었다.


禪雲寺 洞口


禪雲寺 고랑으로 

禪雲寺 동백꽃을 보고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그런데 이번 출장에 동행했던 부산 사람 아닌 사람은 중학생 때 가곡 같은 노래 하나 때문에 선운사에 가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며 돌아가는 길에 꼭 들렀다 갔으면 했다.

하지만 난 아침 일찍 그를 깨워 선운사에 갔다가 미팅 장소로 가자고 했고, 급한 마음에 머리도 감지 못하고 따라나선 그는 수십 년이나 간직했던 소망을 드디어 이룰 수 있게 됐다.



선운산은 도립공원이다.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땐 입장료를 받지 않았었고,

얼마 후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게시물을 보니 선운산 역시 선운사라는 사찰의 관람료 등의 문제로 입장료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진입로 등 사찰 소유의 토지라는 명목이었을 것 같다.

아무튼 유네스코 어쩌고 하며 선운사도 동참한다는 취지로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하니 다행이다.


우린 '선운사 동구'의 시구에 나오는 것처럼 너무 이른 시기에 찾아 동백꽃을 만나지 못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역시나였다.


우리는 무덤덤하게 선운사를 향했고 인위적으로 가꿔져 본래의 모습을 많이 상실해 버린 선운사 산사를 느린 걸음으로 살폈다.



여긴 어지간한 사진작가들은 죄다 다녀간 유명한 포토존이다.

난 보통 이쪽 길보다는 도솔암 가는 소롯길로 다녔던 편인데 배낭 없이 천천히 걸으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땐 뭐가 그리 급했던 것인지 그놈의 벽을 타겠다는 목표만 가지고 지나쳐 버렸던 이 아름다운 길을 느끼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다만 눈에 들어오는 안타까움이 많았지만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없어 한적함이라도 만끽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다행이리라.



흑백으로 촬영하니 고즈넉함이 묻어난다.



배롱나무 한 그루가 중앙 정원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수령이 꽤 됐는지 쳐진 가지를 받쳐주는 대나무가 아슬아슬하다.



멀리 선운산을 배경으로 대형 사찰 선운사가 자리 잡고 있다.



사찰 보수가 한창이다.

원래 9층 석탑이라는데 6층까지만 보존되었고 나머지는 새로 만들어 쌓은 것 같았다.



사찰 구석구석 모두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런대로 눈에 띄는 곳만 돌아보기로 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약속 시간에 늦을 수도 있으니까.



돌아 나오는 길에 동이 트는 개천 위로 멋진 풍경이 보여 다시 한 컷 남겼다.



큰스님의 사리를 보존한 곳이다.

여기 풍경도 선운사의 자랑 중에 하나이다.



선운사를 빠져나오는 길에 수령이 오래된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넝쿨이 멋져 몇 컷 남겨 봤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곳, 고창.

업무 차 몇 번은 찾아올 예정인 곳이라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이번 업무가 끝나면 직원 MT를 여기로 오자는 의견이 나왔을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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