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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Sep 26. 2022

국내 최초가 많다는 진해 개화기 역사여행

지난주 자전거를 타고 다녀온 곳 진해. 엄마의 고향이자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 진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엄마에게 보낼 생각으로 간 곳이었는데 페달을 밟다 우연히 마주친 진해의 개화기 모습에 미련이 남아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대신 이번에는 차를 타고 다녀왔는데 부산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역사 깊은 도시다. 원래는 진해시였는데 몇 년 전 진해는 창원, 마산과 합쳐 마창진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지금은 창원시 진해구가 됐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원래 해군 도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해군과 관련된 상업이 성행했던 진해는 해군 기지가 부산과 제주도로 옮겨간 이후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도시의 기능이 급격히 쇠퇴했다고 한다.

이번 투어의 시작은 지난번 방문 때 인상 깊었던 황해당인판사 앞에서부터였다.


https://brunch.co.kr/@northalps/1944

지난번 진해 라이딩 후기다. 부산에서 진해까지 라이딩으로 다녀오는 것도 좋은데 길이 험악하여 코스를 잘 짜야한다. 조만간 라이딩하기 좋은 코스를 GPX 파일로 만들어 공유할 생각이다.



지난주에는 길 건너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내리지도 않고 사진만 찍고 간 거라 몰랐는데 건물 앞에 서니 건물 자체가 역사라고 할 수 있었다.



보수하지 않은 모습을 보니 양면적인 생각이 스쳤다. 오랜 세월을 거친 것들을 새것처럼 보수하는 게 멋진 걸까, 이처럼 고장 난 것도 원형이라는 생각으로 보존하는 게 멋진 걸까?

그런데 1층에 전혀 예스럽지 않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진해근대문화유산보전회>라~ 개화기의 유산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듯했다. 아무튼 이렇게 오래된 건물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간판이 많이 아쉬웠다. 만약 나였다면 길가 쪽으로 입식 간판 허가를 받아 별도로 게시했을 것 같다.

이 건물 옆에도 꽤 오래된 건물을 활용한 카페가 운영되고 있었다. 구식과 신식을 적절히 배합하려는 노력이 보였는데 오래전 인천시 중구청에서 개화기 당시 화강암으로 지어진 우체국 건물에 페인트를 칠해 구설수에 올랐던 기억이 났다. 보존과 보전에 대한 생각을 하게끔 했던 사건이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진해의 개화기 시절을 테마로 관광지로 조성되어 있었다. 진해에서는 근대문화역사길이라는 타이틀로 오래된 건축물 관람코스를 조성했다. 중앙로터리를 기준으로 코스를 만든 것 같은데 직접 그 코스를 따라 걸어 보려니 안내물 같은 게 없어서 길을 따라 걷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부분이 개선되면 좀 더 완성도 높은 근대문화역사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진해 곳곳에 오래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영업을 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내가 연재하고 있는 <빗맞아도 30년> 맛집 시리즈에 나올 법한 식당인 거다. 영업하지 않는 곳에서 아쉬움에 쩝쩝거리며 사진 몇 장 촬영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https://brunch.co.kr/magazine/30yearstour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이렇게 친절하게 링크도 드리는 루파고...



바로 옆엔 요항부 병원장 관사라고 적힌 오래된 집이 있었다. 철문이 닫혀 있었지만 안에는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남의 집 안쪽을 기웃거리는 게 탐탁진 않았지만 궁금해서 어쩔 수 없었다. 안내물을 보니 일제 강점기 당시 진해 요항부의 병원장이 살던 관사라고 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식점으로 썼던 모양이다. 지금은 안내물에 보이는 간판이 떼어지고 없다. 이 집을 보니 돌아가신 여좌동의 외할아버지 집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걸으니 오래된 건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진해는 마치 언젠가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느낌도 들게 했다. 만약 새로 설치한 교통안내 표지판과 횡단보도 페인팅 등이 아니었다면 몇십 년 전 진해의 모습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백범김구친필시비가 있는 남원로터리다. 윗부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깨진 부분이 보이는데 그것도 세월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음이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병원 건물인데 이것도 최소 삼십 년 이상은 됐을 것 같다. 강남대로의 번쩍번쩍하는 빌딩들에 적응되어 있던 나 같은 사람의 눈엔 너무 이색적이기만 하다. 세월을 얼마나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건물들이 새로 지은 건물처럼 보일 수 있을까?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지난 시간들을 되돌려 보지만 너무 아련하기만 하다.



일종의 주상복합이다. 진해는 이렇게 2층으로 건물을 짓게 했다고 한다. 1층에선 장사하고 2층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주상복합 아닌가 싶다. 상가주택이라고 해야 맞을까?



길 건너 병원 옆 건물들도 오래된 것들이다. 한 때 찬란했던 시절의 진해였을 것인데 이처럼 처량해 보이는 건 왤까?



빨간 벽돌로 예쁘게 지어진 건물에 신식 식당이 들어선 듯, 리모델링이 정말 예쁘게 됐다. 너무 이른 시간인 데다 영업 전이라 지나치고 말았지만 여기서 식사를 했으면 했다.



거리를 걸으며 어린 시절 기억이 났다. 지금이야 가을이니 그렇지만 벚꽃 만개한 시즌이 되면 진해는 온통 벚꽃 천지였다. 그걸 말로 어떻게 표현할까 싶지만, 벚꽃장, 군항제로 이어지는 축제로 인산인해였다. 이 작은 도시에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몰려왔던 시절을 한 번 목격한 적이 있고 그걸 여태 잊지 못하는 것도 신기하긴 하다.



다시 골목길로 접어드니 <진해군항마을역사관>이라는 건판이 걸린 안내소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앞에는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두 분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고 가슴팍에는 '시니어'라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들어와서 보고 가라는 말씀에 유료인지 먼저 물어보는 때 묻은 나...

공짜라는 말에 기분이 맑아진 나...

할아버지 두 분도 우리를 따라 들어오셨고, 진해문화역사해설가로 돌변하신 두 분의 설명에 여기 들어가지 못했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진해의 찐 옛날이야기를 세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없었기에 더욱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난 외갓집이 진해 여좌동이고, 엄마의 고향도 진해이고, 당시 처가에서 아이를 낳던 풍습에 의해 진해 외갓집에서 태어난 나에게도 반쯤은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라고 설명드렸다. 어디서 오셨냐는 질문에 제주에서 왔고, 서울(부산)에서 와서 여기서 만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 또한 묘한 우연이라며 특히 진해군항마을역사관에 온 것도 행운이라는 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운이 좋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시관 1층 사진들이다. 난 우선 한 바퀴 돌며 사진을 남긴 후 시니어 할아버지 한 분의 설명을 들었다. 난 어릴 적 잠깐 살았던 진해의 깊은 추억을 머릿속에서 짜냈다. 이미 지난번 자전거로 진해에 왔을 때 대충 지리를 기억해 냈고, 그 어린 시절의 길을 기억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는데 이렇게 오래된 진해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1910년도의 중앙로터리 사진이란다. 당시는 진해면이었나보다. 설명을 들어보니 당시 진해는 일본에서 신분 상승의 꿈을 꾸며 조선 땅으로 왔던 사람들이 일본이 조성한 계획도시에서 거주하면서 번성한 도시라고 한다. 한때 로터리 문화를 일제의 잔존 문화라며 일제히 지워버리던 멍청한 시절이 있었다. 사실 도로교통에 있어 가장 진보적인 구성이라던 거다. 그리고 나의 그런 대꾸에 시니어 할아버지는 그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프랑스 드골 광장을 그대로 베낀 거라고 했다. 아무튼 지식의 한계로 설명은 이걸로 끄읏!@@@ㅃ#$



지도를 천천히 보니 외할아버지 집이 오른쪽 어디쯤인 것 같아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입구에서 이걸 발견하고 말았다. 이건 정말 내 기억에 왜 남아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봉지 안에 있는 콩과자가 내 기억을 몽땅 들어 올렸다. 4살 때였던 것 같다. 많아야 5살 정도였을까? 당시 사진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난 외할아버지 집 앞 구멍가게에서 2원 주고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저게 한 봉지 1,000원이니 500배가 된 거다. 그 가격을 기억하는 것도 정말 신기한 일인데, 그 어린 시절 화폐 가치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도 놀랍기만 하다. 아무튼 난 이걸 2 상자나 샀다. 한 상자는 제주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드리려고... 추억이 샘솟듯 솟아나시려나?



중원로터리에 있던 팽나무라고 한다. 오래전 자연사했다고...



맨 오른쪽 사진은 우리 집 앨범에도 있다. 물론 사람만 다르다. 아마 당시 중원로터리의 포토존이었던 모양이다. 시니어 할아버지에게 들으니 맨 오른쪽 분이 바로 황해당 사장님이라고 했다. 게다가 진해의 개화기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모임의 회장이기도 하다고...





2층에 올라가면 사진들이 많다고 하셔서 기대를 품고 올라갔다. 역시나~



대략 내부는 이렇다. 진해의 지난 역사를 담은 사진들인 거다. 밖에 계셨던 시니어 할아버지 두 분 중 한 분이 여기 계시다가 잘 올라왔다며 맞이해 주셨다. 그리고 설명이 시작됐다.



군항제 사진을 보니 저분들은 이제 몇 세 정도 되셨을까 싶다.



천정을 보라는 할아버지. 왠지 익숙하지 않은 모습인 것 같다 싶었는데 역시나 싶었다. 이 건물은 족히 100년이 됐다고... 이 짜임새를 보라. 이건 건축학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을 것 같았다. 왜색이 짙은 건물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설명이 시작됐다. 이 건물은 원래 노인정이었는데 이렇게 안내소가 됐다고. 그리고 중요한 건 근대화 역사를 보존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창원시도, 진해구도 아닌 지역주민이라는 것이다. 최초 제안도 그들이 했고, 운영도 그들이 하고 있다. 지자체의 재원 조달을 위해 기초적으로 장소를 지원하라는 요구에 이 노인정을 쓰기로 해서 시작된 보존사업이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인데 시니어들께서 이렇게 직접 행동에 옮기신 것만 해도 다행인 일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진해의 명소들이 있는데 낸 눈에 띄는 게 이것들이다. 아까 본 건물도 있다. 나중에 길을 걷다가 뾰족집이라는 육각정 수양회관도 만났는데 이른 시간이라 영업은 하지 않고 있었다. 진해탑은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부족해 올라가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다음에 진해 가면 꼭 올라가 보리라고...



해군들의 포토존. ^^



이젠 너무 변해버렸지만 여좌천은 아낙들의 빨래터이기도 했고, 내가 어릴 땐 장복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던 여좌천은 아이들 놀이터이기도 했다. 그 위쪽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다 물에 빠져 죽은 아이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소식을 듣고 한동안 저수지 근처도 가지 못했다. 무서워서...



시니어 할아버지의 설명... 영사기에서 불이 붙어 기름 덩어리 천막에 불이 붙어 유해가스를 마신 아이들 107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고... 사진에 보이는 건 대야동 뒷산에서 단체 화장을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1930년 3월 10일이라고 하니 벌써 92년이나 지난 일이다.



이렇게 시청각실도 운영되고 있다.



어릴 때 우리 집에도 이런 거 있었는데... 옛것들을 보니 기억이 하나둘 튀어나오는 것 같다. 사람의 기억력이란 건 참 대단한 것 같다. 아빠와 함께 저걸 만들던 기억도 났으니 말이다. 수십 년이 넘은 기억이 이거 하나 때문에 떠오른다는 게...



담배 심부름 다니던 어린 시절도 나게 했다. 청자, 백자, 거북선, 하나로, 아리랑, 88 ㅎㅎ



시청각실 안에 진해시가 옛 모습과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다.



이렇게 좋은 사진들이 가득한데 전시할 공간이 없어서 문제라는 할아버지. 지금의 진해는 해군이 빠져나가 해군도시라는 개념도 지우듯 사라져 버렸고 인구도 너무 줄어서 재정이 부족하여 이런 민간의 활동에도 도움을 많이 주지 못한다고 했다. 산더미처럼(과장인가?) 쌓인 액자들이 관람객 눈에 띌 수도 없는 현 여건이 아쉽기만 하다.

업무상 부산에 대해 스터디를 많이 하게 되는데,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의 주체인 진해가 부산제2신항 개발에 따른 영향으로 재정이 확충되면 진해를 개화기를 기반으로 한 근대사 관련 박물관 하나 만들어줄 수 있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천정에는 종이박스를 이용해 만든 4엽 폭격기가 걸려 있다. 꽤 잘 만들었다.



아까는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칼멘 다방은 소설을 쓰다가 해군 장교 출신의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걸 이렇게 만나고 말았다. 아직 퇴고 중인 소설인데 배경이 진해에서 시작된다. 퇴고만 몇 년째 하고 있는 건지... 취미로 소설을 쓰다 보니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 시간만 질질 끈다.

그래도 브런치에 연재가 되고 있으니 슬쩍 끼워 넣어 본다. 엄마의 삶을 소설에 살짝~ 진해가 고향인 엄마에게 진해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를 꾸민 소설인 셈이다. 엄마에게 선물로 드리려고 시작된~


https://brunch.co.kr/magazine/girlsroad



나오는 길에 진해콩과자 두 상자를 구입하고 방명록에 글도 쓰고...



진해군항마을역사관 옆에는 군항마을 공원도 있다. 별로 볼 건 없었지만... ^^

사실 진해군항마을역사관 안에서 진해를 다 본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시니어 할아버지들의 노력이 빛을 보게 되는 날이 곧 오리라 생각한다. 부산과 진해를 관광으로 잇는 게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나라도 나서봐야 하나?



중원로터리로 가는 길에 흑백 다방, 유택렬 미술관, 칼멘 다방 바로 그곳을 만났다. 그리고 멀리 진해탑도 보였다. 아마 이번 방문 때문에 내 소설에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될 것 같다. 그동안 소설 쓴다고 짜내고 짜냈던 기억에도 없었던 것들을 제법 발굴해 냈고, 전혀 알 수 없었던 진해 이야기를 주워 들었으니 잘 엮어 봐야지 싶다.

언제나 출판하려나. ㅎㅎ






진해 여행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을 꼽으라면?

보통 어느 지역엘 가도 그 지역의 특화된 음식이 있기 마련인데 진해에는 그런 음식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도 딱히 진해 다운 음식은 없었다.

마침 수산물 관련 축제가 있다는 현수막을 목격하고 수협까지 찾아갔지만 딱히 부산 다운 해산물도 보이지 않았다. 먹거리는 여행의 완성도를 높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만약 진해가 관광도시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면 먹거리 개발에도 신경을 써야 할 거라는 사견이다.


이 글을 쓴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삼십 분 독서를 하는데 이 문구를 발견했다. 그들은 에이모 토울스의 <링컨 하이웨이> 속 울리가 콜로세움 같은 명소 위에 서서 느낀 생각을 표현했다. 아마 이 글이 쓰여진 것은 작가인 에이모 토울스가 세계 여행을 하며 느낀 바를 울리의 시각을 통해 옮겨본 게 아닐까 싶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여전히 여행 삼매경이더라는. 얼마 전 서프로가 다녀온 독일 베른린의 박물관 섬 앞에서 오랜 화강암 기둥 옆에서 촬영한 사진을 발견했다.


선조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이런 물건들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물려주기 위해
선조들이 온갖 수고를 다했기 때문이다.


- 에이모 토울스 <링컨 하이웨이> 586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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