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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부엌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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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Mar 23. 2023

밖에서 굽는 고기는 무조건 맛있다!

캠핑 가서 고기만 먹고 사라지는 사람들

업무 상 노지 캠핑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리고 노숙이나 마찬가지인 자리에서 고기만 먹고 돌아갈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좋은 호텔 놔두고 왜 하필 그런 걸 하냐며 캠핑이란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한들 밖에서 숯불로 굽는 고기의 유혹은 견디기 어렵다.



단골 정육점에서 5cm 두께로 썰어온 목살 생고기다.

정육점 사장님은 항상 바뀌는 나의 육류 초이스 스타일에 관심이 많다.

평소와 달리 2kg이나 달라고 하니 뭔 일이냐며 묻는다.

대개 혼자 캠핑을 다니는 편이라 아무리 많이 사도 1kg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2kg 가지고 세 명이 먹을 수 있을까 싶어 소시지도 구입했는데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밖에서 고기를 구우면 평소 먹는 양의 두 배 정도 필요한 편이더라.



난 대체로 미니멀한 캠핑을 좋아하는 편이라 캠핑 장비를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차 트렁크에 항상 싣고 다니는 간단한 캠핑 장비다.

겨울에도 여름용 폴딩 텐트를 쓰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다.

30년 전에는 동계용 침낭과 매트리스 한 장이면 노숙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달라진 거라면 화로에 숯이나 장작을 쓴다는 거다.

장작은 주변의 마른나무들을 주워다 쓰는 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양한 나무들을 쓰다 보니 불향이 좀 복잡한 편이다.

그 불향은 그대로 고기에 침착된다.



이렇게 봐선 잘 모르겠지만 겉바속촉 그 자체다.

5cm 두께의 목살은 겉은 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살은 육즙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절대 여기서 조바심을 내면 안 된다.

시간이 좀 걸려도 차분하게 앞뒤를 뒤집으며 돼지기름이 불을 키우는 걸 피하며 불조절을 잘해야만 한다.



무려 십 분 이상 구워야 속이 촉촉한 목살구이가 탄생한다.

고기 전용으로 쓰는 무식한 칼을 꺼내 도마 위에 올렸다.

도마가 작아 보이는 것도 웃긴다.



도마 위에 흐르는 육즙을 보라!

캠핑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육즙 풍부한 숯불구이 목살에 당할 재간은 없을 거다.

제주도 집에서 얻어온 겁나게 매운 고추장에 오이고추 찍어 먹으면 더 이상의 필요한 무엇도 없다.



역시 소시지를 사 오길 잘했다.

해는 저물어 가고 두 사람은 끝장을 보고 갈 태세다.

하지만 나의 밤은 길고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이제 남은 몫은 이렇다.

목살 한 덩이, 소시지 한 줄, 팽이버섯 한 덩어리...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으슥한 숲 속에서 난 재즈 틀어놓고 밤을 보냈다.

숲 속에서 혼자 캠핑을 하면 무섭지 않냐고들 물어보곤 한다.

엄마가 그러셨다.

세상에 사람이 무섭지 뭐가 무섭냐고...

살아가면서 점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일이 많아진다는 게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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