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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Mar 17. 2023

30년 맛집, 76탄-오로지 돼지불갈비만 파는 식당

부산 서면 노포 맛집

어젠 또 발동이 걸려 부산의 노포 맛집을 찾아 나섰다.

유난히 노포 맛집을 좋아하는 부산 사람 설 모씨의 추천 식당이었다.

신림동 고시원을 떠돌던 시절만 제외하면 부산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도 가본 적이 없는 식당이라는 거다.



부산에서 무슨 제주식 돼지불갈비인가 싶었는데 간판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29년 전통의 집이라고 쓰인 입간판이 서 있었는데 간판이 만들어진 지가 10년은 족히 넘었을 듯 보였다.

모르긴 해도 40년은 된 식당 같다.

그런데 이 식당이 자리 잡은 골목이 어째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 골목은 그 역시 처음 들어와 본 곳이라고 한다.

원래 공구상가나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선 골목이라 와볼 일이 없었다는 거다.

자~ 그럼 제주식 돼지불갈비가 대체 무엇인지 정체는 확인하고 볼 일이다.

제주도라면 누구보다 많이 안다고 해도 될 나도 모르는 제주식 돼지불갈비란 대체 뭘까?



입구에 들어서니 할아버지 한 분이 연탄불에 돼지갈비를 굽고 계신다.

양념에 잰 돼지갈비가 한 무더기 있는데 1인분 계량은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예쁘게 보이면 한 줄 더 구워 주시려나?

일찍 가서 그랬는지 몰라도 우리 외에 두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는데 나름 내공이 있는 분들 같았다.

제법 노포 식당을 사랑하시는 분들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이 메뉴판의 정체는?

자리를 잡고 주변을 살펴보니 메뉴판 같은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왼쪽 사진에 있는 것처럼 <1인분 10,000원>이라 적힌 A4용지 한 장이 전부였다.

사장님께 메뉴판이 없느냐 물었더니 입구 쪽에 메뉴판 같은 게 있긴 하다고 해서 다시 가보니 오른쪽 사진의 메뉴판이 있었다.

달라진 거라곤 <공기밥 1,000원> 이게 전부다.

좀 더 따지자면 <1인분 10,000원>에 <돼지갈비>가 붙은 것뿐이다.

황당한 상황이랄까, 약간은 멘붕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기본 상차림이다.

서로 소주 따라주는 것도 귀찮아서 각자 1병씩 놓고 알아서 따라 마시기로 했다.

완전 합리적인  세팅이다.



특히 파절임에 내공이 보였다.

예사 파절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잠시 후 아드님으로 보이는 분이 철판 위 쿠킹포일에 놓인 돼지불갈비를 들고 나왔다.

3인분이다.



직화구이라 그런지 불향이 나는 돼지갈비에 기름이 좌르르 흐른다.

왠지 느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한 조각 씹어보니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적당한 간에 돼지비린내 나지 않는 참신한 맛이다.

적어도 40년은 돼지갈비만 구웠을 아저씨의 내공이 묻어나는 거다.



고기 맛을 볼 땐 어지간해서는 쌈을 안 싸 먹는 편인데 여기선 이렇게 먹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빠진 느낌이 들어서 공깃밥도 추가로 주문해서 쌈을 싸는데 새우젓이 빠진 것 같아 추가해서 먹었더니 허기진 속에 딱이지 싶었다.



공깃밥을 주문하니 이렇게 나온다.

시락국과 김치와 젓갈.



시락국은 자타공인으로 내가 끓인 게 갑중 갑이지만 여기 시락국도 나쁘지 않다.



식사를 하며 식당 내부를 흘깃거렸는데 이 건물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노후된 상태였다.

말 그대로 노포식당이라는 걸 반증하는 현장인 거다.



곳곳에 재미난 것들이 보이는데, 돼지고기 국내산, 쌀 구미 선산 출신이고, 김치도 순국내산이라며 '순'자 하나를 더 붙여 썼다.

게다가 쌀은 고향인 구미 선산에서 가져오신다며 자랑이시다. ^^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왠지 얻어먹은 느낌이 들었는데 배는 빵빵하니 2차 생각도 안 나더라는.



그래도 아쉬움에 2차 술집을 찾아 서면 골목을 누볐지만 우리 취향에 맞는 노포식당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누나충무김밥>이라 적힌 간판을 보며 언젠가 한 번은 가보리란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거니다 보니 의도한 것도 아닌데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식당 앞을 가린 전봇대 위치가 웃기기도 하고...

주변의 조금만 공장들을 보니 아마 오래전부터 이 골목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저녁식사와 술자리를 이런 식당들이 책임지고 있었겠구나 싶었다.

언젠가는 이 서면 골목 안의 노포식당들도 시대적 상황에 의해 스러져갈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나중 세대는 이런 오랜 풍경을 볼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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