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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pr 11. 2023

43. 벚꽃은 늦었지만 나도 자전거 타러 경주 다녀왔다

지난주 일요일 경주 벚꽃라이딩을 하자던 친구가 있었지만 토요일 라이딩에 체력이 부쳐 포기하고 말았다.

후기를 보니 천년고도 경주를 배경으로 한 멋진 사진들을 보니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작정하고 경주라이딩에 나섰는데...

아뿔싸!

하필이면 강풍이 예고되어 있었다.

내가 아무리 살이 불고 체력이 떨어졌어도 파워 하나만큼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았던 몸인데 그깟 강풍에 생각을 고칠 수야 없지 않나.

그래서 일단 집을 나섰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우스갯소리로 제일 넘기 어려운 고개가 몇 개 있는데

- 기상령

- 이불령

- 환복령(탈복령 등)

- 문지방령

- 현관령

등 많은 고개를 넘어야만 한다.

어쨌든 가장 어렵다는 고개를 몇 개나 넘었으니 절반은 달린 셈이다.



친구 스트라바를 보니 무열왕릉 주차장에서 라이딩을 시작한 것으로 보아 주차가 여유로울 것으로 판단, 나도 무열왕릉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도 아닌데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이 매우 넓고 한적했다.

꽃샘추위라 서울은 영하까지 떨어진다더니 경주도 만만치 않았다.

빕숏에 반팔 져지을 입고 나왔고 혹시나 싶어서 바람막이를 가지고 나왔는데 만약 바람막이를 챙겨 나오지 않았다면 즉석 귀가조치됐을 것 같다.

아마 새로 생긴 차문령이라는 고개 하나를 기어코 넘지 못했을 거다.



형산강을 건너니 경주 시내다.

요즘 어디 가나 있는 영문 조형물이 경주에도 있기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사진 한 장!



경주의 유명한 볼거리 많다는 그 황리단길 입구다.

아마 이른 시간이라 그랬겠지만 일방통행이라 자전거 타기에도 좋다.

바로 옆엔 그 유명한 천마총이 보인다.

어릴 땐 수학여행도 왔었고, 불국사에 볼 일이 있어서 갔을 때도 지나갔을 곳인데 자전거를 타고 오니 감회가 새롭다.



황리단길 안쪽으로는 경주빵 전문점들과 다양한 먹거리와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경주스러움이 있긴 하지만 뭔가 어색함이 감도는 건 뭘까?

한옥 기와를 얹은 고풍스러움과 정비되지 않은 마구잡이식 간판들이 딱히 좋아 보이진 않았다.

경주시 행정의 문제인 걸로... ㅋ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니 황남동고분군이 나왔다.

이게 묘라는 걸 모르고 동네 뒷산 마냥 놀이터 삼아 놀았다던 오래된 옛 분들의 이야기를 더듬어 보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무지했었던 것인지...

불과 몇십 년 되지도 않은 얘긴데 아무튼 지금이라도 이렇게 보전되고 가꿔지는 게 다행이다.



동서로 흐르는 남천을 건너 월정교로 향했다.

강변에 유채꽃이 만발하다.

자연적으로 자란 건 아니겠지만 봄기운이 물씬 풍겨 라이딩하는 맛이 나더라는...



멀리 첨성대가 보인다.

원래 이런 곳에 있었던가 싶었을 정도로 동떨어진 위치인데 아무리 오래됐다지만 어린 시절 왔던 그곳이 아닌 것만 같았다.

경주와 경주의 문화유적 보존을 위한 노력으로 그만큼 환경도 많이 좋아졌다는 걸 거다.



그럴 이유도 없었지만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너무 볼 곳이 많아 달리다 서다, 달리다 서다를 반복했다.

어느 하나 눈에 꽂히지 않는 풍경이 없었지만 나중을 기약하고 페달을 밟았다.

오늘 예정된 코스는 90km 정도에 획득고도가 1,000m 넘는다.

문제는 앞으로 닥칠 맞바람을 어떻게 뚫고 달릴 것인가 하는 고민이...



경주 시내를 벗어나 불국동을 지났고 남경주IC를 거쳐 외동읍에서 동쪽으로 빠졌다.

신축아파트 단지 옆에 시멘트 공장이 어색하게 마주하고 있다.

이제부터 본격 업힐이 시작된다.

미시령, 대관령 같은 강원도의 높은 고개에 비하면 언덕 수준이지만 10kg이나 불어 100kg에 육박하는 데다 겨우내 초기화된 몸뚱이로 업힐을 오를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뒤로 돌아갈 순 없는 일. 일단 가고 본다.



경사가 조금 세진다 싶었더니 저수지 둑이 보이기 시작했고 맑은 물이 고인 입실지가 나타났다.

초봄의 푸릇한 산과 저수지 색이 너무 잘 어울린다.

왠지 모를 기대가 부풀며 가슴이 콩닥거렸다.

봄 같은 봄을 만난 설렘 같은 걸까?



업힐의 정상엔 이스트힐CC 진출입로가 있다.

여기서부터는 거의 다운힐이다.

은근히 올라온 모양이지 싶었는데 해발 400m 정도 되는 곳이다.



하마터면 아예 잘못된 길로 내려갈 뻔했다.

갈림길이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좌측으로 난 도로 폭이 좁아 그냥 스쳐 지나가고 만 것이다.

그렇게 몇백 미터를 내려가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지도를 열었고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업힐을 올라야 했다.



효롱1리에서 마을회관 쪽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여기서도 또 불필요한 업힐을 할 뻔했으니까 말이다.

좁은 마을길 같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내려가는데 팔이 욱신거렸다.

기장에서 MTB로 임도를 100km씩 타고 다녔더니 잘못된 자세 때문에 엘보우 증세가 있었는데 울퉁불퉁한 도로를 만나니 충격이 가는 모양이었다.

다운힐 막바지에 송전지라는 꽤 큰 호수가 나왔다.

여긴 낚시꾼들이 제법 많다.



넓게 펼쳐진 밭은 이제 농번기를 바짝 준비하고 있다.

어쨌든 봄이 한창이다.



작년에 울산-포항 왕복 라이딩을 하며 지나쳤던 곳을 만났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지도를 봤더니 예전 코스와 1km 정도 겹치는 구간이었다.

반가운 느낌이 드는 건 뭔지...



여긴 대종천이라고 하는데 강변에서 낚시캠핑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

난 라이딩 후 캠핑할 대상지를 찾고 있었는데 여기가 그중 한 포인트가 됐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강해 여기서 캠핑을 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본격 맞바람이다.

이젠 다운힐에서도 자전거가 안 나가서 페달을 밟아야 할 지경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라고 한다.

이렇게 멋진 건물이 이런 산골 구석에 있다니 놀라웠다.

그렇지 않아도 뭐 하는 건물인가 싶었는데 호텔이나 리조트라고 해도 믿었을 거다.

언젠가 건축대상 같은 데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아마 그 건물이지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업힐이 시작이다.

여기부터는 차는 우측, 자전거는 좌측 도로를 달려야 한다.

왜 차가 거의 없나 했더니...



차 한 대가 열심히 달려가더니 다시 돌아 나오며 차량 통행이 금지된 것 같은데 자전거는 갈 수 있냐며 묻는다.

어쨌건 가보고 안 되면 돌아 나오더라도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다른 코스는 생각도 못 해 봤다.



역시 차량 통행이 금지된 상태였다.



도로가 침식된 상태이다.

이러니 차가 갈 수가 없지.

산사태 구역도 너무 많고 아예 방치된 도로인 듯했다.



역시 자전거는 다 지나갔다.



방치된 도로의 현장이다.

그리 길지 않은 업힐이라 올라가면서 연신 사진을 찍으며 달렸다.

다행히 계곡으로 들어서서 그런지 맞바람은 강하지 않았다.



도로 반대편 구간에도 도로가 통제되어 있다.



추령이라는 업힐 정상인데 백년찻집이라는 풍광 좋은 한옥 찻집이 자리 잡고 있다.

자전거만 타면 갈 길 가느라 이런 곳에 들러볼 생각도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측은하단 생각을 했다.

제발 좀 쉬어가면 좋으련만...

혼자 다니니 그런 즐거움이 없다.



다운힐이 시작되며 나를 밀어낼 듯이 불어닥치는 강풍에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코너가 이어지며 바람 방향이 바뀌어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으니 살살 달릴 수밖에...

상류의 계곡의 공사구간이 많아 하류의 흙탕물이 덕동호와 보문호를 지나 북천에 접어들었다.

북천은 형산강과 만난다.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들어서니 한국의 건물 같지 않은 이상한 게 있어서 다가갔다.

이거 웬걸...

중도타워라는 연수원이라고 한다.

내 착각이고 편견일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런 형태로 호텔을 지은 걸 보면 대단한 발상인 듯하다.

아직 소문이 안 났다곤 하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패쓰!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제대로 경주 다운 건축물이 하나 있던데 못 보고 온 게 안타깝다.



보문단지를 지나 보문호를 돌아 나왔는데 자전거 통행금지란다.

어쩐지 달리면서 보니 뭔가 어색하긴 하더라는...

하지만 중간에 빠져나갈 구간도 없어서 탈출로가 나타날 때까지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주차해 둔 무열왕릉까지는 북천을 따라 달리는데 잘 정비된 자전거도로가 보행로와 구분되어 있어 좋았다.

하지만 역대급 맞바람은 속도를 낼 수 없게 했다.

힘이 충전되면 35km/h 정도 낼 수 있었는데 역시 매년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맞바람에 외발 페달링으로도 45km/h를 내곤 했었는데... (굇수 시절)



북천과 형산강이 만나는 지점에 멋진 루가 있어 사진을 남겼다.

금장대, 암각화라고 지도에 나온다.

후기에 보니 사진 믿고 가면 후회한다고들 한다. ㅋㅋ



딱 여행용 거리는 맞는데 맞바람이 너무 강해서 150km는 달린 기분이다.

이제 경주 라이딩 다녀온 사람이 전혀 부럽지 않다.

다만 여유롭게 경주를 느끼고 오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음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걸어서 경주를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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