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억 여행은 내 고향인 초록바위행성에서 시작해보자. 너희는 내 손님이고 초록바위행성과 큰나무가득행성의 3차 회담에 참여하게 될 거야. 자! 이제 떠나보자!”
번개박사의 손에서 형광 파랑 불빛과 함께 빛의 고리가 다시 이어졌다.
사방이 푸르른 숲 속 같다. 정리가 잘 된 숲이라고 하면 될까? 지구에서 보던 숲과 다른 것이라면 나무나 풀들이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나무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나무 사이로 물이 흐른다. 물의 색이 좀 다르게 보이는 건 지구인인 독수리들의 눈에만 이상한 것이겠지만 물은 매우 맑다. 노란빛이 나는 물속에는 다양한 색과 모양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데 독수리들의 인기척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는다. 주변 환경에 정신이 빠져 있는 사이에 번개박사는 벌써 한참을 앞서가고 있다. 번개박사 앞쪽으로 반경이 3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반구 형태의 유리 건물 같은 것이 보인다. 저런 형태의 건물은 지구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것인데 초록바위 행성에서도 보게 되니 반가운 느낌이다. 시냇물은 반구형 유리 건물까지 이어져 있고 시냇물 옆으로는 흙길이 나 있다. 이 행성의 흙은 거의 옅은 회색에 가깝다. 밟으면 푹신한 것이 느낌이 좋다. 희한하게 우주복 신발에는 흙이 달라붙지 않는다. 멀리 산이 보이는데 높이는 알 수 없다. 산이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주에 관련된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상상했던 거대한 도시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스머프 만화에서처럼 아기자기하고 아담해 보인다. 이 행성에는 정말 바위가 많다. 이제야 행성의 이름이 왜 초록바위행성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커다란 바위들이 사방에 있는데 바위 위로 넝쿨 같은 식물들이 가득 덮여 있어서 초록색 바위 같다. 그런데 이런 숲 같은 곳에서 외계인들끼리 중요한 회담을 한다고 하니 독수리들은 상식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끼루루루루~ 발 밑에서 귀엽지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독수리들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순간 독수리들 모두 팔짝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으아악!”
의진이 발 옆에는 새까만 공 같은 게 이상한 빛을 내며 서 있었다. 분명히 까만 공이 서 있었다. 지금은 그냥 공처럼 생겼지만 잠시 후 번개박사의 눈과 비슷하게 생긴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에는 번개박사와 비슷한 눈동자가 있는데 눈동자가 이리저리 빠르게 구르고 있다. 아마도 독수리들을 관찰하는 것 같다. 잠시 후 까만 공 같은 녀석에게서 기다란 다리 세 개와 팔 두 개가 불쑥 솟아났다. 녀석은 거북이처럼 모든 팔다리를 몸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동물인 것 같았다.
“이야~ 귀엽다!”
의진이는 쪼그려 앉으며 축구공만 한 녀석을 잡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리고 의진이의 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의진아!”
“얘가 들리지를 않아. 되게 무거워!”
동구는 의진의 말을 듣고 앞서가는 번개박사와의 거리를 확인하고 녀석을 들어보려 했다.
“끄응~”
역시 들리지 않았다. 끼루루~ 까만 공 녀석은 소리를 내며 번개박사 쪽으로 이동했다. 굴러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이 생겼는데 녀석은 세 다리로 어기적거리며 걸어갔다. 독수리들도 일단 걸음을 재촉했다. 녀석은 빨리 가지도 느리게 가지도 않고 독수리들을 앞서 갔다.
“얘들아. 쟤. 아마 우리를 안내하는 것 같지 않아?”
진택이의 눈이 예리했다. 독수리들은 진택이 말을 듣고 보니 그 녀석이 가이드해서 독수리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무 귀엽지 않아? 그런데 조그만 녀석이 왜 그렇게 무거운 거지?”
동구는 아까 녀석을 들었을 때 아예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을 봐서 아마 50킬로그램은 넘을 것 같았다. 보기에는 그냥 강아지 정도의 무게라고 생각했는데 어이가 없었다. 까만 털북숭이 녀석인데 그 무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나는 길에 조그만 돌멩이가 보여 들어보았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리고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맞다. 박사님이 여기는 지구 중력의 세배 정도 된다고 하셨지~”
“맞아. 니 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다른 아이들도 주변의 돌을 하나씩 주워 들었다.
“역시 그렇네.”
진택이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위로 던져 올렸다 받아 채며 말했다.
“어? 난 이상하게, 보이는 것보다 더 가벼운 느낌인데? 이 크기면 더 무거워야 하는데 이상해.”
석천이는 집었던 주먹만 한 돌을 동구에게 건넸다.
“어? 정말이네? 지구에 있는 돌멩이보다 더 가벼워.”
동구는 손톱으로 돌멩이를 눌러보았지만 그것은 영락없는 단단한 돌멩이가 분명했다.
“이 돌멩이 정말 이상해.”
독수리들은 번갈아 가며 돌멩이를 들어보고 모두들 갸우뚱했다. 끼루루~ 까만 녀석이 의진이 다리를 팔로 당기고 있었다.
“얘가 빨리 가자는 것 같아.”
의진이 말에 번개박사의 위치를 찾았는데 이미 거리가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유리 건물 주위에는 이미 상당히 많은 외계인들이 모여 있었다. 아직 큰나무가득행성에서는 사람들이 도착하지 않은 것 같다. 외계인들은 모두 초록바위행성 사람들뿐이었다. 30명 정도의 사람들이다. 독수리들은 걸음 속도를 높였다. 까만 녀석은 독수리들의 속도를 느꼈는지 끼루루 거리면서 속도를 높여 앞서갔다. 조그만 녀석이 속도를 높이니 가느다란 다리 세 개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각오는 했지만 외계인들만 가득 있는 곳에 도착한 독수리들은 뻘쭘한 기분이 들어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번개박사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독수리들 눈에는 30명 남짓의 외계인들이 키가 조금씩 차이 나는 것을 빼고는 다 똑같아 보였다. 그들의 나이는 무엇으로 가늠하는 것인지조차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의진아. 니가 눈썰미가 좋잖아. 번개박사님을 찾아볼 수 있겠어? 내 눈으로는 도저히 못 찾겠어.”
석천이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말고 말했다. 그때 한 외계인이 독수리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세 다리로 느긋하게 걸어오는 것이지만 나름 리듬이 있어 보였다. 번개박사와는 좀 다르다 싶은데 아무래도 좀 더 힘이 있어 보이는 게 번개박사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야! 우리 초록바위행성 사람들 말할 줄 모르잖아. 어떡하지?”
진택이가 말했다. 역시 진택이는 말하는 것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녀석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박사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볼게.”
의진이는 마음의 문을 이용해 번개박사를 찾아 불렀다.
“박사님. 저희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 분이 여기로 다가오고 있는데 저희는 말도 할 줄 모르고요.”
“의진아.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거란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부딪혀봐. 그 사람도 너희들이 외계인인 걸 알고 있다. 서로 대화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야. 그게 외국인걸 어렵고 부끄럽다고 그냥 피하려고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정면으로 맞서 부딪쳐봐야 뭐가 뭔지 알 수 있는 거야. 그 사람이 와서 뭘 어떻게 하든 한번 해봐. 그 친구가 너희를 잡아먹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네! 박사님. 저희가 알아서 해 볼게요. 그런데 큰나무가득행성 사람들은 왜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는 거죠?”
“그들은 우리 행성으로 오는 손님이잖니. 우리가 먼저 자리 잡고 기다리는 게 예의 아니겠니? 조금 기다리면 도착할 거다. 우주의 시간은 지구인들보다 정확하단다.”
리듬감 있게 덜어오던 외계인은 동구 앞에까지 다가왔다. 까만 녀석은 외계인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끼루루거리며 외계인에게 까만 털을 비벼댔다. 애완동물이 애교를 피우는 것 같았다. 녀석은 계속 끼루루 하는 소리를 연발했고 외계인은 손을 내밀어 까만 녀석의 손을 잡았다. 그들의 손에서 익숙한 형광 파랑의 빛이 터져 나왔다. 곧 외계인은 머리 위에 붙은 꽃게의 눈같이 생긴 두 눈을 들어 올려 독수리들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동구야. 너는 외계인. 보이는 것보다 좋잖아. 우리는 번개박사님 안내하는 정말이네. 외계인 말할 줄 모른다. 이상해. 않아?”
독수리들은 외계인이 띄엄띄엄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더듬더듬 말을 했지만 독수리들은 외계인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우리말을 할 줄 아시는 거죠?”
진택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급하게 물었다. 물론 독수리들 모두 진택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까만 녀석. 말을 할 줄 아는 귀엽다. 동구야. 나는 안내하는 때문이야. 이상하지 않아.”
“아~ 이 녀석이 말을 가르쳐준 건가 보네요. 저희를 안내해 주신다는 거죠?”
동구는 외계인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는 다시 확인해서 질문했다.
“빨리 가자. 번개박사님 찾아. 좋잖아?”
“번개박사님을 찾아가자는 거죠?”
외계인은 먼저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독수리들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외계인은 유리처럼 투명한 반구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어서 다들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외계인은 막무가내로 벽을 통과했다. 독수리들은 잠시의 지체도 없이 여유롭게 벽을 통과했다. 이번에는 좀 다른 것이 있었다. 유리처럼 투명한 벽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돔 안에서는 밖에서 들리던 소리들이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모든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곳이었다. 외계인은 구석 쪽의 나무 그루터기 같은 곳으로 독수리들을 안내했다.
“동구야. 여기서 초록바위행성 사람들을 볼 수 있겠니?”
동구는 이번에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잠시 생각을 하다 물었다.
“여기에서 초록바위행성 사람들 하는 걸 보라는 거죠?”
“그렇네. 그렇네.”
외계인은 독수리들에게 두 행성 간 회담을 여기 앉아서 구경하라고 말하는 것임을 이해했다.
“혹시 우리가 한 말만 습득해 가지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 건가요?”
옆에서 대화하던 것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진택이는 뭔가를 깨우친 것이었다.
“동구야 저 외계인이 하는 말을 들으니까 말이야. 우리가 여태까지 했던 말들을 조합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잘 들어봐!”
진택이는 외계인이 하는 말을 들으며 단어 하나하나를 되짚어보았다.
“그렇네. 그렇네.”
외계인이 말했다. 진택이의 판단에 틀림이 없다는 말이었다.
“곧 큰나무가득행성의 우주선이 도착할 거야. 회담이 시작되면 내게 접속해라. 그러면 회담 내용을 들을 수 있을 거다.”
번개박사의 목소리가 독수리들에게 들려왔다. 독수리들의 자리를 안내해 준 외계인은 까만 녀석을 남겨두고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외계인들은 모두 반구 건물로 들어와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다시 번개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지구와는 비슷하지만 상당히 다른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구는 아직 많은 국가로 분리되어 있고 서로의 이익을 두고 싸우고 경쟁하고 있다. 옳지 않은 방법을 쓰기도 하고 잘 사는 나라도 있고 못 사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초록바위행성엔 국가의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란다. 최고 결정권을 가진 사람도 없다. 초록바위행성을 대표하는 사람은 저기 보이는 31명이다. 물론 나를 포함한 것이고. 나는 행성개발 분야의 대표이고 저들 역시 각 분야별 대표로 나온 사람들이지. 우리 초록바위행성도 지구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정치이론도 있었고 지금의 지구와 비슷한 시기를 거쳐왔다. 지금 여기 31명의 각 대표들은 각 분야별로 해당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전달하는 역할을 할 뿐 다른 특별한 지위 같은 것은 없다. 일정 단위로 대표를 바꾸는 것으로 하고 있는 법안은 있지만 거의 바뀌는 일은 없단다. 특별히 사고가 날 일도 없고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12년간 이 대표직을 맡고 있는데 그다지 바쁜 일도 없단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완전히 안정권에 있어서 그럴 거다. 참! 너희 지구의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우리의 1년은 지구의 150년이 조금 넘는단다. 그러니까 내가 행성개발 분야의 대표를 맡은 게 1800년이 넘었다는 거지. 그리고 1800년은 지구인과 함께 했으니 내가 지구인들에 대해 너희 조상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겠니? 이 회담이 진행되고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이 나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각자의 대표들이 결정하게 된다. 물론 이 자리에서 즉석으로 결정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정치다. 이것 역시 우리도 기억여행장치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전엔 우리도 전쟁을 겪었고 심한 경쟁 속에서 다투기도 많이 했다. 우리 사회 역시 아직도, 아니! 영원히 경쟁을 하는 사회가 되겠지만 지구인들처럼 재물 즉, 돈을 위한 경쟁이 아닌 명예를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자! 이제 그들이 내려오고 있구나.”
번개박사의 말이 끝나자 머리 위쪽에서 거대한 은빛 우주선이 하늘을 뒤덮어갔다. 그러나 반구로 된 건물 안은 전혀 어두워지지 않았다. 이것 역시도 초록바위행성의 기술 때문이었다. 우주선은 머리 위에까지 내려온 것처럼 가깝게 보였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우주선 밖에서 빛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큰나무가득행성의 우주선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초록바위행성 사람들의 눈은 모두 위쪽으로 집중되어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주선 바닥에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아마도 출구인 것 같았다. 잠시 후 우주선에서 새까만 그림자 같은 것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바닥에 닿을 즈음, 그것들은 갑자기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모두 다섯 명의 외계인이었다. 반구 건물 밖에서 대기하던 초록바위행성 사람 한 명이 그들을 안내해서 초록바위행성 사람들 반대편 입구로 들어왔다. 큰나무가득행성 사람들은 지구인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다리 두 개 팔 두 개 그런데 꼬리가 달려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 중 하나 같았다. 대신 목이 길고 허리도 잘록했다. 얼굴의 대부분은 눈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였고 코는 그냥 구멍만 두 개 뚫려있다. 입도 있긴 하다. 초록바위행성 사람들에게는 입이 없어서 이상했는데 큰나무가득행성 사람들의 외모는 지구인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왠지 과학 관련 서적에 나오는 상상 속의 화성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거무튀튀한 피부를 가진 그들의 옷은 나뭇잎과 흡사한 것 같았다. 직접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예쁘다. 그들은 안내에 따라 큰나무가득행성 사람들에게 만들어진 듯한 의자에 앉았다. 그들은 짧은 꼬리를 움직여 의자 뒤에 나 있는 구멍에 쏙 집어넣은 후 의자에 앉았다. 독수리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마냥 신기해서 넋을 놓은 채 집중했다. 그리고 번개박사의 마음에 접속했다. 이미 그들의 회담은 시작한 상태였다.
“지난 2차 회담 때 했던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까?”
큰나무가득행성 사람들인 것 같다.
“그 제안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서로가 우주의 평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당신들은 어찌 다른 행성을 소유하고 식민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번에는 초록바위행성의 대표들 중 한명일 것이었다.
“어차피 미개한 생명체들이오. 그런 가치 없는 생명체를 통치하고 문명을 일깨워 주자는 게 무슨 문제요.”
“모두 생명을 가진 귀중한 존재요. 그들이 발전하는 과정을 겪는 동안 내부적으로 어떤 일이 있던 그런 문제까지는 우리가 관여해서는 안될 일이오. 설사 자멸을 하게 되더라도 말이오. 우리는 오랜 시간을 우주의 행성들을 탐사하며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들을 지켜봐 왔소. 우리 시간으로 327년 전 대규모 전쟁을 일으켰던 한 행성의 경우도 결국은 진정을 찾고 지금까지 평화롭게 살고 있소. 이미 문명이나 과학은 초기 우주여행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러 100년 정도가 지나면 현재 우리 수준의 과학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소. 우리 번개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이제 갓 우주를 알기 시작한 태양계의 지구인들도 태양계 밖 세상을 탐구하기 시작했소. 아직 미개한 수준이지만 모두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오. 귀중한 생명체란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제안한 것처럼 서로가 관리할 우주의 영역을 가르자는 거요. 그럼 서로 다툴 일도 없고 그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면 서로에게 위협을 가할 일도 없을 것 아니오.”
“절대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입장입니다. 자~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보다 더 수준이 높은 행성을 발견하거나 거꾸로 그들이 우리를 발견하게 됐는데 그들이 우리를 미개하게 여기고 우리를 멸종시키거나 식민지화하려 한다면 어떻겠소. 서로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소. 이미 우리가 갈 수 있는 우주는 다 가봤소. 더 이상의 행성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신들 과학으로도 우리의 과학으로도 이제야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고 우리의 정보로는 우리 초록바위행성의 과학으로 알아낸 데이터로는 아직 우주의 5퍼센트도 채 알지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록바위행성은 우리보다 수준이 낮은 것 같소.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다시 제안을 하겠소. 일단 우리가 제안한 영역 내에 당신들의 탐사를 모두 중단시키고 철수하시오. 우리 또한 당신들 영역에서 철수하겠소. 우리 조건을 수락하지 않을 경우 1차적으로 우리 영역 내 행성에서 모든 탐사 시설을 강제 철거하겠소. 강제 철거반을 보내 무력을 사용하겠소. 인명 피해가 난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런 보상도 협의도 하지 않을 것이오. 이건 제안이기도 하고 마지막 통보요. 더 이상의 회담은 이제 필요할 것 같지 않소. 이만.”
큰나무가득행성에서 왔던 외계인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곧장 반구 건물 밖으로 벗어나더니 순식간에 우주선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것도 잠시 그들이 타고 온 우주선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바람 하나 일지 않은 채.
다시 지하로 돌아왔다.
“번개박사님. 세 번째 회담 이후에 전쟁이 터진 건가요?”
우리의 세계로 돌아온 독수리들 중 석천이가 제일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건 아니고. 우린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큰나무가득행성으로 두 번이나 더 방문했었지만 그들은 끝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았어. 그리고 그들은 순식간에 우리 탐사시설을 공격하기 시작했어. 거의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 그리고 그 전쟁은 우리 시간으로 12년이 지속됐다. 전쟁 중에도 우리는 그들과 대화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정말 어려웠다. 서로 간에 너무 막대한 피해가 지속됐어.”
“박사님. 그럼~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전쟁을 하면 자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나요?”
동구가 물었다.
“우리 두 종족은 서로 다른 기반의 기술을 발달시켜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전쟁이 나기 전에 말이야~ 큰나무가득행성에는 싸움을 하자는 부류와 평화를 유지하자는 부류가 있었는데 평화를 원하는 부류가 우리에게 비밀리에 연락을 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 세력에게 그 사실을 들키고 말았어. 사실, 전쟁은 그 사건 때문에 본격적으로 번지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계략이었어. 그들은 우리 초록바위행성의 과학 수준을 큰나무행성보다 떨어진다고 잘못 알고 있었던 거야. 우리는 평화를 원했지만 창고에는 무기들이 가득했다. 우리 우주선 역시 사용하지 않을 뿐 최첨단 무기로 완벽하게 무장이 되어 있었다. 무기라는 것은 공격을 목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어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라는 것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너희들이 만난 31명의 대표들 중에서 무기를 개발하는 업무를 관장하는 사람들의 대표도 한 명 있었지.”
“박사님. 그런데 큰나무가득행성의 사람들은 초록바위행성 사람들하고는 생긴 것도 다르고, 오히려 지구인하고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요. 왜 생긴 게 전부 다른 거예요?”
석천이가 다시 물었다.
“지난번에 알려 준 것처럼 말이다. 인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잘 맞게 비약적으로 발전을 해 왔다. 그것이 바로 진화라는 것이야. 중력도, 공기 중의 기체도, 바다의 염도도, 태양은 온도도, 대기 중의 빛도, 주변의 동물도, 먹거리도 모두 다르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의 존재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현실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변하는 것이 진화라는 것이야. 너희 지구인도 다양한 피부의 인종이 있고 좁게는 한국 근처에 있는 중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같은 나라의 사람들도 보면 각기 다르게 생긴 이유가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며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주의 각 행성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말이다. 너희도 큰나무가득행성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만, 그곳은 너희 지구와 매우 흡사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봐라. 지구인과 그들은 서로 다르게 생겼지. 너희는 꼬리가 없고. 꼬리뼈만 남아서 완전히 퇴화되어 버렸잖아. 그건 너희들에게는 꼬리가 필요 없지만 그들에게는 쓸모가 있었던 게야. 그건 환경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그들 행성의 이름처럼 엄청나게 큰 나무가 가득한 생성이다. 그들의 주거문화는 나무에서 비롯됐고 지금도 나무에서 살고 있다.”
“박사님.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두 행성의 과학이 어떤 식으로 다른 거예요? 정말 궁금해요.”
동구의 질문이다.
“그래! 이제 오늘은 이 질문으로 마무리하자꾸나. 초록바위행성에서 호출이 올 거다. 자! 응~ 그래~ 너희 한국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있구나. 너희들 혹시 무협만화 본 적이 있을 거다. 무협영화에도 자주 나오더구나.”
“우와~ 박사님이 그런 걸 어떻게 아세요?”
“하하하~ 우리는 너희들 문화는 거의 다 알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아무튼 쉽게 표현하자면 말이다 우리 초록바위행성의 과학기술은 내공. 즉, 기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되고 큰나무가득행성의 과학기술은 외공. 즉, 근육의 힘을 이용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빛의 힘을 이용한 과학기술인 반면에 그들은 생체과학을 기반으로 발전한 과학이란다. 이해가 되니?”
“네. 이제 알 것 같아요. 박사님.”
“자~ 오늘 수업은 이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