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팡 슈팡 슈팡 슈팡~ 우렁찬 엔진 소리~”
독수리 오형제 주제곡이 들린다. 진택이의 휴대폰 벨소리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안 그래도 밥 먹고 비밀기지로 갈려고 했는데.”
동구가 집에서 전화를 한 것이다.
“뭐? 일단 알았어. 빨리 나갈래~”
진택이는 아빠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빵 한 조각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진택이 아빠는 요즘 눈에 띄게 밝고 명랑해진 것이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있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독수리들은 요즘 진택이의 두둑한 용돈 덕분에 윤택한 나날을 보내는 편이었다. 진택이는 특히 말을 더듬는 증세를 완전히 고치게 돼서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라도 돕겠다며 진택이에게 아빠의 넓은 아량을 보여주었다. 석천이네 집 앞에는 동구만 빼고 모두 모여있었다.
“동구는?”
“음~ 준비할 게 좀 있대서…”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불렀대?
“지난번 미진이하고 두리 사건 있었잖아. 미진이가 동구한테 부탁을 했대. 어젯밤에 집에서 아이패드를 찾았다나 봐. 남동생이 미진이 아이패드가 너무 부러워서 미진이 가방에서 몰래 빼갔다가 동네에서 나쁜 형들한테 아이패드를 빼앗겼다는 거야. 그리고 미진이는 남동생이 아이패드를 가져 간지도 모르고 집에서 화를 내고 종일 울고만 있으니까 동생이 어제서야 이실직고했대. 누나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숨기기 괴로웠다나 봐.”
“그런데 왜? 우리가 그 나쁜 형들한테서 아이패드라도 찾아다 줘야 한다는 거야?”
“그건. 아니고. 그저께 동구가 미진이에게 두리와 화해하라고 알려줬거든. 그런데 두리가 미진이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던가 봐. 그래서 미진이가 집에서 더 힘들어했던가 보더라고. 우리가 화해시켜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무래도 둘 사이에 중재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화해하기 좋지 않을까 해서. 물론 동구는 지금 두리한테 전화하고 있을 거야.”
“저기~ 동구 내려온다.”
성진이가 동구네 집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동구가 손을 크게 흔들며 오는 중이다.
“다들 일찍 나왔네?”
동구가 독수리들과 모이자 말했다.
“누구 분부신데 늦게 나왔겠습니까? 1호님~”
의진이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데 동구야. 미진이하고 두리 화해시키는 데 우리 다섯 명이 다 가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석천이의 말이다. 독수리들 모두 석천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생각엔 우리 모습을 보면 충분히 마음을 열 거라고 생각해. 우리 대부분 학교에서 친구도 없이 왕따로 살았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고 게다가 우린 최고의 우정을 만들었잖아. 난 친구란 싸워도 친구고, 헤어져 있어도 친구라고 생각해. 오해는 꼭 풀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 어제 미진이 전화를 받고 그런 생각을 했어. 초록바위행성과 큰나무가득행성 사람들이 전쟁을 하게 된 이유는 일단 중재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었다는 것과 서로 친구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아서였던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가 미진이하고 두리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좀 해 주면 이미 친구 사이인 그 애들 둘이 화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지금 당장은 오해도 있고 기분도 나쁘니까 대화가 잘 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면 친구 사이가 멀어지게 되고 영원히 만나지 않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럼 우리가 뭘 해야 할까?”
석천이는 이미 적극적으로 도울 자세로 말했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너희들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소문난 왕따였잖아. 그런 너희들과 우리가 모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걸 보여주고 그 이유를 알려주면 돼. 그게 진심이니까. 진심은 통할 거니까.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도 대화가 없고 서로 계속 모른 척하고 관심도 가지지 않고 쭉 피하고만 살았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기나 하겠어?”
동구의 말에 독수리들의 눈빛에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어때? 시작해볼까?”
“응!”
“그럼. 당연하지!”
독수리들의 호응에 동구는 얼굴 가득 미소를 새기며 시계를 찬 왼손에 주먹을 쥐어 내밀려 소리쳤다. 펜타! 독수리들의 다섯 손이 모두 모여 다시 한번 소리쳤다. 펜타! 그 순간 독수리들의 시계에서 형광 파랑의 빛이 새어 나와 환한 낮임에도 불구하고 더 환하게 빛을 내뿜었다. 독수리들의 마음에 번개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이 드디어 성공했구나! 이제 나와는 영원히 연결이 될 것이다. 너희들 성장 에너지가 활동을 멈출 때까지는 말이다. 축하한다. 독수리 오남매!”
운동장 철봉 아래에는 두리가 먼저 나와있다. 동구는 미진이보다 두리를 먼저 나오게 약속을 잡았다. 두리가 미진이를 보면 발을 돌려 가 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였다. 두리는 동구가 친구들을 여럿 데리고 나와서인지 마음이 편치 않은 표정이다.
“두리야. 안녕! 얘들 다 알지?”
“으~ 으응!”
동구의 인사에 두리가 머뭇거렸다.
“오늘 너희들 화해하는데 이 친구들이 도와줄 거야.”
“그런데 얘들은 왕…”
두리는 자신이 실언을 했다고 느꼈는지 말을 얼버무리며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왕따라구? 우리도 알고 있어. 하지만 예전에는 왕따였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야. 얘들은 내 둘도 없는 친구들이야. 평생 만날 내 친구들~”
“미안해. 얘들아!”
두리는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두리야. 아까 말한 것처럼 난~ 아니 우리들은 미진이하고 네가 오해 때문에 싸우고 멀어지는 걸 원치 않아. 예전처럼 친한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어. 자존심 때문에 싸우게 되고 멀어지는 거야. 화가 나더라도 잠시 참아봐. 화가 나는 건 잠깐이지만 헤어지는 건 영원할 수도 있는 거야. 그리고 요즘 교실에서 몇몇 아이들이 너를 도둑으로 지목하고 이상한 소문을 내는 애들이 있어서 화가 많이 날 거야. 너는 모르겠지만 미진이는 걔들한테 그러지 말라고 부탁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어. 미진이도 너한테 누명을 씌워서 너무 후회하고 있어. 어젯밤에 미진이 아이패드는 남동생이 몰래 책가방에서 빼갔다가 나쁜 형들한테 빼앗겼는데 요즘 미진이가 집에서 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밥도 안 먹고 괴로워하니까 자수했대. 물론 남동생도 미진이가 아이패드 때문에 그런 줄 알았겠지만 미진이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대.”
동구는 말을 하다 말고 두리의 어깨 뒤로 넘겨 보았다. 그새 미진이가 두리 뒤까지 와 있었다. 두리는 동구의 시선에서 미진이가 와 있음을 눈치채고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독수리들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어져 버렸다. 미진이와 두리는 서로를 얼싸안고서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우리가 할 일이 별로 없는걸?”
석천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독수리들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미진이와 두리는 펑펑 울었다. 한참 후 미진이가 훌쩍이며 말했다.
“정말 미안했어. 두리야. 나는 네가 내 옆에 있을 땐 전혀 몰랐었어. 네가 없으니까 모든 게 무서웠어.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인지 있을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것 같아. 네가 없는 빈자리,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 너는 모를 거야.”
미진이는 두리를 안은 팔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
“미진아. 나도 마찬가지였어. 네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이제야 알았어. 먼저 손을 내밀어줘서 고마워~”
“얘들아. 쟤들 사랑놀이 구경하는 거 보기 눈꼴이 시리고 징그럽다. 우리 그냥 가자. 이제 우리 할 일도 없으니까!”
동구가 독수리들에게 눈짓으로 신호했다.
“그래~ 가자!”
독수리들은 미진이와 두리의 고맙다는 인사를 뒤통수로 들으며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독수리들은 신이 나기도 했지만 마냥 뿌듯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남을 도와준다는 건 말이야~”
“그러게!”
“형! 나도 이제 사람들 도와줄 거야.”
일요일이지만 독수리들은 더 바쁘다. 이번에는 어떤 기억 여행을 하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에 매일매일 신이 났다. 방학 때는 밤낮없이 쏘다니며 시간을 보냈지만 개학을 하고 처음 맞는 주말은 월요일부터 기다려지고 있었다. 독수리들끼리는 이제 전화가 필요 없다. 토요일 석천이 집에서 “펜타!”를 외친 이후부터는 번개박사님 기억 속에서처럼 현실에서도 텔레파시가 통했다. 오전에는 독수리 비밀기지에서 숙제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맞춰 우박사 집으로 향했다. 우박사는 독수리들을 점심시간에 초대했던 것이다. 우박사의 집 거실에는 누군가의 생일인지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로 거나한 잔칫상이 차려져 있었다. 피자, 치킨, 탕수육, 팔보채, 족발이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모두 배달된 음식이다.
“우박사님. 언제 이런 걸 다 시켜놓으셨어요? 히히~”
동구는 벌써부터 입맛을 다지며 신이 나 있다.
“너무 조금 시켰나? 먹다가 부족하면 더 시키자. 일단 자리에 앉아. 컵에 음료수 따르고 우리 건배나 하고 시작하자.”
우박사는 먼저 맥주캔 하나를 따고 독수리들을 기다렸다.
“준비됐지? 건배하자. 독수리 오남매의 우정과 우주평화를 위해. 건배!”
우박사의 목소리에 이어 독수리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자! 일단 맛있게 먹자!”
“잘 먹겠습니다. 박사님.”
독수리들은 오랜만에 신나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독수리들의 표정은 마냥 행복하게만 보였다.
“얘들아. 독수리들아. 내가 오늘은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불렀다. 놀라지 말고 들어야 해.”
우박사는 약간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이 묻어났다. 독수리들은 이유 없이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 왔다.
“박사님. 무슨 중요한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갑자기 그런 표정을 하시니까 무서워요.”
의진이는 우박사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말했다.
“조금 섭섭한 소식이구나. 이런 소식을 갑자기 알려주게 되어 미안하지만 나 역시 어젯밤에야 알게 돼서 아침부터 연락을 한 거야.”
우박사는 독수리들을 돌아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독수리들. 잘 들어라. 그동안 짧았지만 우리~ 정이 많이 들었지? 나는 이제 영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내일 비행기니까 이따 저녁에 짐 싸서 서울로 올라갈 거야.”
우박사의 충격적인 말에 독수리들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박사는 다시 또 말을 이었다.
“그리고… 초록바위행성 사람들은 오늘 새벽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것 같더라. 내게도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고 번개박사님은 너희들과 정이 많이 들었는지 꼭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더구나. 꼭 좋은 지구인이 되기를 바란다고. 그들을 통해서 뭐라도 배운 게 있다면 좋겠다고, 더 많이 보여주고 알려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오히려 내가 더 섭섭할 정도로 너희들을 더 챙기시더구나. 나더러 너희를 잘 챙겨주라고 하시니 나도 약속은 지켜야겠구나.”
우박사의 말에 독수리들은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독수리들에게 번개박사와 총사령관 격인 우박사는 정신적인 지주이며 가장 큰 스승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두 사람 모두 떠나버린다고 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것이다.
“아! 그리고 만약에 또 오게 되면 지구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겠다고 하더구나.”
우박사는 번개박사의 마지막 소식을 전했다.
소장 할아버지는 모든 기억이 지워진 것인지 독수리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대신 할아버지는 원래의 수명 이상으로 천수를 누리실 것 같다. 독수리들은 천문대 창고를 찾아가 다시 바닥을 뒤져 입구를 찾아보았지만 역시 흔적조차 없었다. 물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일요일 저녁, 독수리들은 우박사의 집에서 우박사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이미 차는 보이지 않았지만 독수리들은 누구 하나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 말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절대 꿈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꿈같았기 때문에 꿈이 아닌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꿈이 아니라는 증거는 독수리들의 텔레파시와 시계가 증명해주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나 우박사는 다시 예천을 찾아왔다. 번개박사님의 부탁대로 독수리들의 공부를 위해 영국에서의 유학길을 열어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전부가 아닌 한 명만 가능했다. 물론, 전부 다 유학을 간다 해도 동구는 할머니를 혼자 두고서는 갈 생각이 없었다. 결국, 의진이가 영국 유학에 당첨되었다. 의진이 부모님은 의진이네 생활형편으로는 평생이 가도 그런 기회를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의진이의 유학 수속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우박사님은 영국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의진이를 왕따 놓던 아이들은 의진이를 끝도 없이 부러워했다. 이제는 의진이는 왕따가 아니라 왕이 되어버렸다.
진택이는 이제 행복하다. 일요일에 진택이를 만나기 위해 예천을 찾아온 엄마는 독수리들의 작전으로 진택이 아빠와 함께 점심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어색했던 부모님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서로의 잘못을 시인했다. 진택이 아빠는 용기 있는 분이셨다. 진택이 아빠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식당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사랑해! 다시 돌아와 줘!”라고 큰 소리로 말했고,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한참 동안 박수를 쳐 주었다.
독수리 오남매는 아직 그대로다.
녀석들은 번개처럼빠른머리 박사가 했던 말처럼 훌륭한 지구인이 되는 중이다.
우주의 평화를 위해!
좀 유치하긴 하지만 유치한 애들 보라고 쓴 거니까 용서해주세요. ^^